[조수빈의 독서 칼럼] 악의 평범성,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아이히만은 유죄일까, 무죄일까?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거라고 보장할 수 있는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신 이상의 사이코패스만이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우리 주변의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도 범죄를 저지르게 될 수 있다. 역사적인 악행을 저지른 나치는 과연 나쁜 사람들로만 구성된 단체일까? 혹은, 착한 시민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이 악의 없이 참여하기도 한 집단일까? 한나 아렌트의 도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이러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해준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돌프 아이히만은 독일 나치스 친위대 중령으로 수많은 유대인이 생을 마감했던 가스실이 설치된 열차를 고안해 낸 인물이다. 그는 1942년,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명령을 바탕으로 한 ‘반제 회의’에서 유대인 문제의 최종해결책을 결정하는 회의에 참여하였고 여기에서 서기와 비슷한 역할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아이히만은 하이드리히와 같은 상관들과 친해질 수 있게 되었고 자신들의 ‘최종해결책’을 공무원으로서 국가를 위해 행하는 행위일 뿐이라는 자기합리화를 하게 된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오히려 나라에서 떠나는 것이 모든 유대인에게 이익이고 자신은 이를 도와주는 것이기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기쁘게 일하고 있었다. 법정에 선 아돌프 아이히만은 15개의 혐의로 기소가 된 상태였지만 자신이 저지른 수많은 악행에 대하여 “나는 도덕과 양심 앞에서는 유죄일지 몰라도 법 앞에서는 무죄다”라는 주장을 한다. 자신은 남을 해치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자신이 맡은 일을 잘 해내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은 맡은 바를 다했을 뿐이기 때문에 죄가 없다고 말한다. 또한, 자신이 고안한 가스실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는 광경을 방관하였기 때문에 단 한 사람도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인 적이 없고 죽이라고 명령한 적도 없다고 말한다.1

 

그렇다면, 아이히만은 인격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준법정신이 투철한 모범적인 시민이다. 그런데, 아이히만은 왜 그토록 역사적인 악의 사건의 주요 인물 중 하나가 되었을까? 일단, 아이히만이 본질적으로 악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정신과 의사들의 분석에서 아이히만은 자신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지니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꺼내게 된다. 악의 평범성은 절대 악이 진부하거나 일반적이거나 평범하다는 것이 아니다. '악의 평범성'은 평범한 사람도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이히만은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수용소를 고안하고 유대인들을 여기로 이동시키는 엄청난 악행을 저질렀다. 심지어 아이히만과 같은 사람이 15명 있었다면 전쟁에서 독일이 승리했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아이히만의 악행은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멀쩡한 인격의 아이히만이 이러한 악행을 저지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어떤 것이 아이히만을 유대인 학살의 길로 이끈 것인가? 이의 정답은 '무사유'이다. '무사유'는 '생각의 무능'이라는 의미로, 자신이 받은 명령에 대한 독자적인 도덕 판단 없이 프로그래밍 된 기계처럼 명령을 수행하는 아이히만과 같은 상태를 의미한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이히만이 유죄인 이유를 '무사유'라고 하였다. 자신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무지했다는 점을 유죄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이러한 아이히만의 사례는 심신미약 처벌과 굉장히 유사한 양상을 띤다. 두 경우 모두 다 무죄라고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가해자의 행위에 대한 악의가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유죄라고 주장하는 경우에는 피해자가 받은 피해를 강조하게 된다.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심신미약 상태의 범죄 또한 유죄로 판정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아이히만의 경우에서는 과연 유죄일까, 무죄일까?

 

각주

1.참고:https://brunch.co.kr/@junki09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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