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있어요

새로운 색감, 새로운 형태, 새로운 방향 미지의 그곳으로

문신: 우주를 향하여 (국립 현대 미술관 덕수궁)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올림픽 공원에 전시된 조각작품 ‘올림픽 1988’로 가장 많이 알려진 조각가, 문신. 그러나 그는 조각가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서화가, 서예가이자 서양화가로 미술 전반에 걸쳐 다양한 분야에 끊임없이 도전했던 한 예술가이다. 작가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여러 나라를 오가며 인생의 많은 시간을 이방인으로서 보냈으며 이렇게 축적된 다양한 문화와 경험은 그가 어느 한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문신의 작품을 보면 무언가 규정짓기 어려운 특별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전시장은 ‘1. 파노라마 속으로, 2. 형태의 삶: 생명의 리듬, 3. 생각하는 손: 장인 정신, 4. 도시와 조각’까지 총 4개의 관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럼, 각 관을 하나씩 들여다보도록 하자. 

 

  

먼저, ‘1. 파노라마 속으로’에서는 문신의 초창기 작품부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추상적으로 변해가는 작품들까지 한 공간에서 확인할 수 있어 굉장히 알찬 구성을 가진다. 대중들에게는 조각가로서 많이 알려진 그이지만, 문신의 회화는 그가 형태와 질감 외에도 색에 대한 감각 또한 몹시 뛰어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란색과 맑은 하늘색이 주를 이뤄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의 작품들은 역시나 작가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형태와 색의 변화, 여러 재료를 사용해 그림마다 달라지는 마티에르(그림에서의 질감), 평면임에도 각종 도구를 붙여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시도까지 과감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어 그림 자체가 그의 삶 전반을 마치 ‘파노라마'처럼 나타내고 있다. 또한 명암까지 섬세하게 표현된 목판화부터, 그림의 틀을 감싸는 액자까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반영해 직접 제작했다고 하니 회화에서부터 그의 조각가적 면모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다음으로, ‘2. 형태의 삶: 생명의 리듬'에서는 비로소 형태에 더 집중하기 시작하는 그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다양한 이미지의 구성요소 중 ‘원'의 형태에 가장 주목했던 그는 원과 선을 이용해 형태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으며, 이는 펜을 이용한 채색 스케치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본격적인 조각에 앞서 드로잉을 하며 작품 제작의 방향을 계획했다는 그의 수많은 드로잉 작품에는 그가 작품에 느꼈던 애정과 치열한 고민의 흔적들이 담겨있어 관객으로 하여금 삶과 본인이 열정을 갖는 대상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세 번째인 ‘3. 생각하는 손: 장인 정신'에서는 조각에 대한 그의 예술관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작품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조각의 여러 요소 중 ‘대칭'에 주목했고 때문에 그의 작품들 대부분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또 전시실 중앙천장에는 커다란 거울 판이 있어 문신의 작품과 함께 전시를 관람하는 관객 역시 함께 비추고 있는데 이는 전시를 기획할 때 그가 주목했던 요소, 즉, ‘대칭'을 표현하기 위해 배치한 것이라고 하니 관람을 하게 되면, 이러한 전시의 구성 이유에 집중해 즐기는 것도 색다를 것 같다. 

 

  

마지막으로 ‘4. 도시와 조각'은 조각이라는 분야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건축까지 도전하는 그를 볼 수 있었다.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마음가짐답게 그는 어린이 도서관, 놀이터 등 다양한 건축 스케치를 남겼고, 이를 기반으로 미술관에서 입체로 구현한 작품을 볼 수 있으며 VR 체험도 준비되어 있어 다양한 경험이 가능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88올림픽 조각작품의 제작과정을 영상으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계획 단계의 스케치까지 전부 남아있기 때문에 익숙했던 ‘올림픽 1988’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력과 시간이 담겨있는지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1~4관을 돌며 그의 작품 세계를 소개해봤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생애 동안 이토록 많은 작품을 남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는 작품을 만드는 일이 자신의 전부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마음과 감정이 이끄는 대로 작업을 하다 섬세하고 신중하게 마무리하여 작품을 완성했다는 작가만의 작업 스타일이 가장 인상 깊었다. 많은 이들에게 영감이 될 만한 ‘문신'의 전시회는 덕수궁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2023년 1월 29일까지 계속된다고 하니 모두 한 번쯤 방문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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