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빈의 독서 칼럼] 패러다임 시프트

어린이라는 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패러다임
그리고 바뀔 우리의 패러다임

 

‘어린이’라는 존재는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소수자’로 인식이 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 인식이 맞는 것일까?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제목을 봤을 때부터 이 책을 기대하게 되었다. 어떤 내용이고 어떤 것을 전달하고자 이 책을 썼는지 궁금함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지만, 필자는 어린이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린이는 참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갔다. 그 이유는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할수록 교육, 생활 방식, 학생들의 사교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린이들도 변해갔다. 안타깝게도 그 변함은 좋지 않은 쪽이었다. 물론, 모든 어린이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으로, SNS로 접한 결과 어린이들의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 그렇게 변하고 있던 나의 시선이 이 책을 통해 바뀌었다. 그렇게 나의 패러다임은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가 달라졌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결같지 않다. 하나님 안에서는 가능하겠지만 세상에 속한다면 그건 불가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간에게는 ‘한결같음’이라는 것은 참 어렵다. 그런데 ‘어린이’라는 존재는 한결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말한 것과 달라 모순같이 느껴지지만 원래 어린이의 모습은 한결같기 때문이다. 한결같음의 기준이 조금은 다를 수 있는데 어린이들은 보는 시선, 좋아하는 것, 생각하는 게 참 한결같다. 그래서 그런지 고집이 세기도 하다. 한결같은 어린이의 모습이 가장 이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본 책은 에세이로 생활을 하면서 본인이 느낀 어린이를 그대로 적어 놓은 책이다. 어린이는 참 특이하면서도 신기한 존재다. 이 책에서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고 당황한 경험도 있고 기특한 적, 예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어린이를 대하고 있는 본인의 모습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어린이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대부분 좋지 않다. 귀찮아 하기도 하고 옆에서 졸졸 따라다니며 방해하는 존재라고도 한다. 그리고 느린 어린이를 답답해하기도 한다. 어린이는 어린이보다 큰 우리보다는 훨씬 느리다.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다 느리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어린이를 절대 이해하지 않는다. 그저 답답해한다. 자신도 똑같이 어린이였으면서도.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양심에 찔린 적이 많았다. 사람들을 비난하기 보다는 내 자신을 비난해야 하는 처지였다. 나도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게 컸기 때문이다. 괜히 미안해지는 나였다.

 

이해하는 게 느려서, 행동하는게 느려서, 호기심이 많아서 등 늘 답답한 존재였던 어린이. 그렇지만 이제 나에게 어린이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어린이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는 친구들이다. 이제는 어린이를 보면서 나의 어린이였던 시절을 돌아볼 것이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았었고 그래서 앞으로 내 옆에 있는 어린이를 어떤 어린이로 만들어줄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할 것이다.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다. 어린이를 만드는 사람은 바로 ‘나’다. 어린이라는 세계에 들어가자. 이해하고 기다리면 어린이는 어느 덧 성장해 있을 것이다. 어린이도 잠시잠깐의 시간이다. 어린이는 이제 곧 어린이가 아니다. 그 어린이의 때를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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