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인의 독서 칼럼]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최근 나는 역사시간에 제 1,2차 세계대전에 대해 배우며 '홀로코스트'라 불리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관심이 많아졌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도서들을 읽어보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라는 책이다. 대부분의 책들은 어려운 용어들과 함께 무거운 분위기여서 읽는 것이 약간 부담스럽고 지루하기도 했었는데 이 책은 소년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잘 읽히고 결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소설 속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와 읽으며 느꼈던 점을 말해보고자 한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는 반유대인 정책을 펼치며 약 600만명의 유대인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나치 장교 아버지를 둔 8살 소년 브루노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 소년 쉬미엘의 우정을 그려낸 소설이다. 

 

먼저 소설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기 전 소설에 담긴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자. 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시점 아돌프 히틀러 총리는 동맹국들과 함께 조직적으로 유대인들을 탄압하고 학살한다. 나치는 유대인들을 경제적, 정치적 위기와 전쟁의 패배 등을 모두 유대인 탓으로 돌리며 독일 전역에 반유대주의를 형성했고 강제노동과 수많은 제재와 차별로 그들을 압박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치즘은 계속해서 성행하였고 결국 집단 수용소 내 감금과 대량학살, 질병과 굶주림으로 인해 수많은 유대인들이 희생당했다. 

 

 

브루노는 아버지의 발령 때문에 아우비츠로 이사를 오게 되고 아우비츠 수용소 근처를 탐험하던 도중 철조망 안에 갇혀있는 유대인 소년 쉬미엘을 만난다. 둘은 거의 매일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며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지만 브루노가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면서 쉬미엘과 헤어져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아쉬운 브루노는 마지막으로 쉬미엘과 함께 아우비츠 수용소 내부를 탐험하는 동시에 실종된 쉬미엘의 아버지도 함께 찾기 위해 땅굴로 몰래 수용소 내부로 들어간다. 하지만 마침 유대인들의 학살이 이루어지는 때였고 그들은 가스실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흽쓸려 독가스실에 갇히며 죽음을 맞이한다.

 

브루노가 쉬미엘과 함께 가스실에서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브루노는 수용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며 독일인들이 유대인을 싫어한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렇기에 아무런 두려움 없이 수용소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곧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 채 해맑게 쉬미엘을 위로하는 모습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제 3자의 입장에서 아우비츠 수용소를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보다 사람들이 가스실로 들어가는 것을 사람들이 행진을 한다, 가스실의 문을 잠그는 이유는 떨어지는 빗물을 막기 위한 것이다 등 8살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표현들이 장면을 더 슬프게 만들었다.

 

나치는 아마 전쟁에 대한 불안감과 경제적 위기 등으로 인해 지친 국민들을 회유하기 위한 희생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유대인을 이용하며 그들을 무고한 피해자로 만들었다. 독일이 겪고 있는 위기, 걱정, 전쟁의 결과 등을 모두 유대인의 탓으로 돌린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방법은 매우 부당하며 잘못되었다. 하나의 민족을 차별하고 맘대로 이용한 것도 큰 잘못이지만 무엇보다 그들을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대우하고 학살하였던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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