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성의 서평 칼럼] '백신의 황제', 이종욱 박사를 아시나요

우리나라에도 WHO 사무총장의 자리에 올랐던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가? 그렇다면 "이종욱 박사"에 대해서는 들어봤는 가? 이 질문들에 대해 아마 많은 이들은 긴가민가하며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실제로 필자의 대부분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답하길, 꽤 '생소한' 이름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이종욱 박사"는 달성한 업적들에 비해 대중들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이번 칼럼의 목적은 내가 존경하는 "이종욱 박사"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는 것이며, 참고로 이 칼럼은 데스몬드 에버리의 저서 "이종욱 평전"을 기반으로 쓰여진 "서평 칼럼"이다. 

 

"이종욱 박사"는 1945년 4월 12일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는 꽤 유복한 삶을 살았다. 그 후, 그는 우여곡절 끝에 동기들보다 늦은 나이로 서울대 의예과에 입학했으며(그 전에 그는 한양대 공대에 재학했었다), 졸업 후 서울의 한 보건소에서 일하며 가끔 성 라자로 마을에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봉사자로서 다녀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는 "가부라키 레이코" 여사를 만나고 첫눈에 반해 끝내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 후, 그는 춘천도립 병원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등록금을 전액 지원 받으며 하와이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한다.1 

 

이 후 그는 사모아의 린든 B. 존슨 병원에서 일하다 WHO에서 한센병 담당 의무관으로서 근무를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피지에서, 그 후에는 마닐라에서, 그리고 드디어, 1994년, 그는 우여곡절 끝에 WHO 본부가 위치한 제네바에서 어린이 백신사업 국장으로서 부임한다. 이 때부터 그는 "백신의 황제"라고 불리기 시작하였으며, 자신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리기 시작할 때였다.2 

 

2003년, 드디어 그가 WHO 사무총장으로서 부임한다. 1998년, 그가 압도적인 선두였던 브룬트란트 전 사무총장에 밀려 출마포기를 선언한지 5년뒤의 일이었다. 그가 사무총장으로서 세운 업적 중 크게 2가지를 내세울 수 있다. 첫번째로는 3 by 5 캠페인으로, 이 사업의 의미는 2005년 까지 300만명에게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캠페인이 완벽한 성공으로 끝나지는 않았지만 무려 100만명에 달하는 환자들에게 치료를 제공했고 이는 분명 엄청난 성과였다. 두번째로는 전략보건운영센터를 만든 업적인데, 이는 갑작스러운 전염병과 같은 긴급사태를 최대한 빠르게 대처하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3

 

 

그러던 2006년 5월 14일, "이종욱 박사"가 세상을 떠난다. 그는 두통 등의 증상을 느끼다 갑작스럽게 쓰러졌는데, 이후 뇌혈전 제거 수술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다시 께어나지 못했다. 그의 나이 61세 때의 일이었다.4(참고: WHO 사무총장, 백신의 황제 이종욱 평전, 데스몬드 에버리 저, 출판사: 나무와 숲).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그의 지인들, 특히 그의 가족들은 큰 슬픔에 빠졌다. 그가 더 오래 이 세상에 남아 직무를 이어갔다면 얼마나 더 사회에 공헌 하였을까,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사실 난 그를 안지 얼마 되지 않았다. 1년전 학교 수업시간에 우연히 알게 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도덕 시간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워낙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에 가벼운 내용들은 한달도 안되어 잊혀지는 데, "이종욱 박사"에 관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떠오르고, 또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를 알기전 까지, 난 국제적인 무대에서 일하며 사는 삶은 나와 거리가 멀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난 그를 보며 희망을 얻었다. 노력한다면, 나의 꿈도 이루어질 것이라는 깨닳음을 얻은 것이다. 

 

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그의 천재적인 재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그가 이렇게 까지 우리 사회에 큰 업작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 때문만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는 천재와는 거리가 멀었던, 바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가 WHO 사무총장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바로 그의 "결단력"과 "행동력" 덕분 이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는 천재적인 재능만큼이나 중요하다. 

 

그의 유명한 칭호 중 "Man of Action", 즉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칭호가 있다. 사실 자신의 이상적인 "생각"을 "행동" 으로 옮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생각만 하며 행동하길 망설이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종욱 박사는 남들과 달랐다. 한국에 남았다면 의사로서 편안한 삶을 살았겠지만, 그는 그의 꿈을 위해 하와이로 떠났고, 이는 더 큰 성공으로 이어졌다. 사무총장 시절 그가 계획한 사업들의 내용만 봐도 그의 "행동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있는데, 그가 용기를 냈기에 그의 업적 또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의 그런 면모를 보다보면 자연스레 나를 돌아보게 한다.  실패할 확륙이 적은, 그런 안전하고 편안 길만을 찾아 해맸던 나의 과거들을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랬던 일들의 결과들은 모두 만족적이지 않고, 또 나로 하여금 후회하게 만들었던 것같다. 반면에, 나 또한 그처럼 어려운 길에 도전했던 과거들이 있었다. 그랬던 기억 중, 4학년 때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느 잡지사에 한 달마다 한 컷 만화를 그려 제출하는 공모전이 있었는데, 내가 그 공모전에서 1등을 한 것이다. 비록 한달마다 열리는, 잡지사의 작은 콘텐츠이기는 했지만, 그렇다 해도 그 작은 성공의 경험은 어린 나로 하여금 "행동하는 사람"만이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 또한 그를 닮아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불리우고 싶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에 맞게 행동하고 싶다는 것이다. 세상은 생각뿐인 사람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인재를 훨씬 필요로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하고, 또한 그들이 세상의 중심부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일상 사례만 놓고 보아도, 우리는 "말"만 거창하게 하는 사람 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을 더 좋아하고, 또 심지어 존경하기도 한다. 

 

난 그저 이 칼럼을 읽은 여러분이 이종욱 박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아가길 바란다. 아마 그의 이름정도는 들어본 사람이 있어도, 그의 생애에 대해 잘 알 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칼럼에도 정말 담고 싶은 내용들이 많았었는데, 분량상 대표적인 사건들만 다루어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끝으로, 혹시 이 칼럼을 통해 이종욱 박사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면, 정말로, "이종욱 평전"을 추천한다. 그에 대한 사소한 일화까지 담겨져 있어 나로서는 굉장히 재밌게 읽은 책이었던 것같다. 

 

참고 및 인용자료 출처

1,2,3,4,:참고: WHO 사무총장, 백신의 황제 이종욱 평전, 데스몬드 에버리 저, 출판사: 나무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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