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예은의 영화 칼럼] 모덤타임즈, 산업화의 시작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영화 모던 타임즈에 나오는 구절이다. 거의 90년이 되어가는 영화, 모던타임즈. 내가 처음으로 본 무성영화이다. 최근 가장 오래된 영화를 보고 싶어서 찾아 보았는데 바로 이 영화를 찾게 되었다. 찰리 채플린이 직접 연출하고 출연한 이 영화는 무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배경과 풍자요소가 잘 표현되었다. 한 장면 한 장면을 놓칠 수 없고 그 속에서 명장면이 탄생되었다. 그 장면의 의미와 산업시대의 풍자를 나타내는 장면을 찾아보길 바란다.  이처럼 나도 이 글을 읽는 학생들에게 산업혁명의 장점같지만 단점을 소개하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찰리 채플린은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한 첫 번째 유성과 무성을 넘나드는 영화를 제작했다. 바로 너무나 빠른 폭주 기관차 ‘근대’에 빨간 경고등과 같은 영화, 모던타임즈.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 같지만 편하게 웃을 수 없다. 영화 속 기계의 톱니바퀴에 끼어있는 우스꽝스러운 그의 모습은 제2혁명으로 불리는 산업 혁명이 남겨 준 빛과 그림자이다. 이 영화 속에는 찰리 채플린이 꿈꾸는 세상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과연 무엇일까?

 

영화는 돌아가는 시계로부터 시작된다. 중간의 프레스기에 눌려 납작해져 버린 시계도 볼 수 있다. 왜 찰리 채플린이 계속해 시계를 등장시켰을까? 시계는 근대화의 상징이다. 진보를 추진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시침에 찔릴 수 있고 정확한 속도에 따라잡지 못하면 결국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다. 즉, 기계와 규칙적인 삶 속에 살아가는 노예가 된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바로 영화 속 찰리처럼 말이다. 찰리는 벨트 공장에서 일하고 하루종일 나사를 조이는 일을 한다. 찰리는 너무 빠른 작업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낙오된다. 공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오작동을 일으키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나타낸다. 이 부분에서 생산량을 극대화하며 인간과 기계의 부조화를 풍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급기야는 '밥 먹여 주는 기계' 때문에 고초를 겪기도 한다. 결국, 강제 해고되고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그 후 조선소에 취직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해고되고 빵을 훔친 것으로 감옥에 간다. 하지만 오해가 풀리면서 석방되고 결국 백화점에 취직했다.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해고되었고 술집에서 일하게 된다. 이렇게 찰리는 공장, 정신병원, 조선소, 감옥, 백화점, 술집에서 머물렀다. 이 공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이곳들은 모두 ‘부적응자들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떠돌이 찰리의 아웃사이더의 불안정한 삶의 장소가 잘 표현되어 있다.

 

비록 신분제 사회였으나 근대 이전은 인간이 삶을 지배하는 시대였다. 그러나 산업 혁명은 인간이 아닌 기계가 삶의 자리를 대신한다. 예를 들어 절대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시계, 노동자들의 작업 장면을 점검하는 CCTV, 기계의 속도, 또 점심시간마저 쉬지 못하게 하는 밥 먹여 주는 기계처럼 말이다. 우리는 첫 장면에 쏟아져 나오는 양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엄청난 마리의 양들은 공장으로 향하는 노동자를 말하고 그중 까만 양은 정체성이 없고 우매한 대중이 아닌 휩쓸리고 싶지 않은 찰리 자신을 의미한다. 백화점 안에서 눈을 가리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던 찰리가 인상 깊었다.

 

옆에는 DANGER이라는 표지판도 눈에 띄었다. 아슬아슬 매우 위태로워 보이는 공간이 마치 “대량생산, 기계주의로 인한 물질적 풍요가 안겨주는 자본주의사회가 언제 인간을 피폐 시킬지 모른다.”라고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길을 떠나기 전에 찰리는 소녀에게 웃으라고 조언하고, 그들은 동틀 무렵을 배경으로 길을 걸어갔다. 해맑은 웃음과 함께 불확실하지만 희망찬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두 명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을 머금게 된다. 원래는 해 질 녘을 배경으로 계획했지만, 마지막에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동틀 무렵으로 수정했다고 한다.

 

이렇게 인간의 마지막 무성영화가 막을 내렸다. 이처럼 찰리는 시대의 아픔을 웃음을 통해 승화시켜 표현할 수 있는 정말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다. 찰리는 인간의 따뜻함을 놓치지 않는 사람 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통해 찰리 채플린이 꿈꾸고 있는 시대는 바로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 친화적인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계가 우리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닌 우리가 기계를 끌 수 있는 삶처럼 말이다. 21세기의 화려한 영화보다 메시지와 울림이 있는 명작, 모던타임즈를 보며 시대의 아픔을 끊임없이 표현하려고 했던 찰리 채플린의 멋진 예술 정신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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