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채현의 시사 칼럼] 언론은 정치 기관이다

이제는 언론의 정파성을 그 자체로 인정할 때

언론은 정치적이다. 저마다 지지하는 세력이 있고, 그 입장에 맞추어 보도한다.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과 한경(한겨레, 경향신문)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한쪽에 치우친 정치 성향을 ‘정파성’이라 한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언론은 단어 선택, 보도 내용, 칼럼 등을 통해 정치색을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언론은 분명 정치적이다.

 

사람들은 이들의 정파성을 비판한다. 언론은 공정해야 하며, 정치색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 언론의 정파성을 문제 삼는 연구도 많다. 정파성이 오보를 낳는다1)고 주장하거나, 정파성이 문제라는 전제하에 그 연구를 출발2)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생기는 의문이 있다. 정파적인 언론은 과연 그 자체로 문제냐는 것이다.

 

 

사실 정파적인 언론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그것을 부정하는 데에 있다. 모든 사람은 편향적이다. 모두가 각자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언론사도 그들의 관점에서 사회를 분석하고 보도한다. 정치적 관점은 기사에 자연스럽게 녹아날 수밖에 없다. 그런 정파성을 부정하는 것은 인간 사회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파적인 언론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 저마다 다른 정치관을 가진 여러 언론을 생각해보자. 대중은 여러 기사를 읽으면서 다양한 해석을 접하고, 어떤 것이 합당한지 판단한다. 그 판단을 토대로 대중은 더 나은 관점을 채택하게 된다. 결국 정파적 언론은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물론 양극화 현상을 우려할 수도 있다. 자신이 선호하는 입장에만 선택적으로 노출되어, 그 극단으로 향하게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문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언론은 극단적인 사람을 ‘생산’하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각 언론사는 합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사회 현상을 분석할 뿐이다.

 

심지어 한 언론사에만 선택적으로 노출되는 경우 자체도 드물다. 한국 시민들은 주로 포털을 이용해 뉴스를 보기 때문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시행한 '2021 언론수용자 조사'에서, 언론 수용자 중 79.2%는 포털을 통해 뉴스를 시청한다고 응답3)했다. 이때 포털은 한 언론사만 독자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사람들의 참여 빈도가 높은 뉴스, 분야별 최신 기사 등 언론사와 무관한 여러 기사를 보여준다. 애초에 선택적 노출 자체가 우리나라 뉴스 생태계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1859년 출간된 밀의 ≪자유론≫ 중 핵심이 되는 문장이다. 밀이 말한 자유는 개인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언론의 자유는 이 문장에 따라 완전히 보장된다. 언론도 정치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이제는 언론을 정치 기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파적 언론이 존재하고, 할 수 있다는 합의가 필요하다. 그 합의 내에서 역할을 한정할 때, 더 건강한 언론 문화가 싹틀 것이다.

 

참고

1) 상업성, 정파성이 난무하는 언론 보도 (김서중, 2021)

2) 대통령 관련 보도의 감성 분석과 정파성의 지형 (최창식∙임영호, 2021)

3) 2021 언론수용자조사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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