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채현의 시사 칼럼] 되갚음의 미학

얼마 전 흥미로운 설문 하나를 봤다. 우리나라 국민의 복수 심리가 전 세계에서 손에 꼽는단다1. 그러니까 이런 거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교복을 바꿀 예정이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재학생을 대상으로 어떤 교복을 선정할지 의견을 묻는다. 이때 대다수 학생은 제일 못생긴 교복을 고른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안 입을 거니까! 이렇게 내가 겪은 부정적인 일을 남에게도 되돌려 주려는 성향을 음의 호혜성negative reciprocity이라고 한다. 일명 "나만 당할 수 없지" 성향이다.

 

그렇다면 양의 호혜성postive reciprocity, 즉 호의를 되갚는 성향은 어떨까? 수치 자체도 낮고, 순위 역시 조사 대상인 77개국 중 55위다2. 호의는 그다지 되갚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뜻이다. 나쁜 것은 반드시 복수해야 하지만, 좋은 것은 받으면 그만이다.

 

나는 이런 심리를 없애자고 제안하고 싶다. 안 좋은 일은 조금 참고, 좋은 일은 나누자고 말이다. 호구가 되는 거 아니냐고. 전혀. 며칠만 해봐도 당신은 깨닫게 된다, 이런 삶이 바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나는 이것을 ‘되갚음의 미학’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지금부터 이런 삶이 어떻게 미학이 되는지, 그러니까 왜 이런 삶이 더 나은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예컨대 친구랑 의견이 다르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이렇게 하고 싶은데, 친구는 저렇게 하는 게 옳다고 주장한다. 처음에는 차분히 얘기했지만, 점점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결국 친구가 당신에게 “너 왜 그런 식으로 하려고 해? 그렇게 하니까 네가 그 모양이지! 넌 틀렸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당신은 화가 난다. 여기서 당신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화를 내며 친구를 비난하기, 혹은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차분히 이야기하기. 다수가 전자를 선택하고 친구와 크게 싸운다.

 

만약 후자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당장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친구도 말이 심했다고 사과할 확률이 높다. 친구가 사과하지 않더라도 큰 상관은 없다. 어차피 실컷 화를 내봤자 마음만 불편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잠깐 참는 호의가 당신에게 훨씬 이득이다. 음의 호혜성을 실현하지 않을 때 결과가 더 좋은 셈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되갚음의 미학’이다. 이런 태도가 우리 사회 전체로 확장되면 어떨까? 분명히 지금보다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악을 되갚고 있다.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가? 왜 내가 겪은 악의와 고통을 다른 사람도 겪어야 하는가? 결국 쓸모없는 되갚음일 뿐인데.

 

사람은 살면서 무수한 잘못을 한다. 이는 자명한 진리다. 우리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애써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나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타인도 나에게 피해를 준다. 그런 수많은 잘못을 굳이 되갚는 사회가 바로 우리 사회다. 온갖 악의와 불신만 가득한 사회. 고통의 총합만 늘어나는 사회.

 

이제는 이런 행위를 멈춰야 한다. 악의는 조금 참고, 대신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 그런 선순환이 실현될 때, 기쁨의 총합은 늘어난다. 이 사회가 바로 내가 꿈꾸는 이상 사회이며, 지금 당장도 실현할 수 있는 현실 사회이다.

 

참고

1)  Country-level estimates of negative reciprocity

2)  Country-level estimates of positive recipro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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