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민의 독서 칼럼] '자식보다 아버지가 중요하다'는 생각

다자이 오사무의 '앵두'를 읽고

‘자식보다 아버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짧았기에 더욱 빛나는’ 작가와 비평 p.160 인용)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앵두’에 쓰인 문장이다. 이 문장을 몇 번씩 읽어 봤지만 그 의미를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부족한 것인지, 작가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나의 고정된 관념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앵두’는 다자이 오사무가 생을 마감한 1948년에 쓰인 작품 중 하나다. 당시, 작가의 생각과 정서가 작품에 어떤 모습으로 녹아 있는지 궁금했다. 무엇보다 같은 해에 쓰인 ‘인간 실격’을 읽고 난 후, 그 여운이 남아 ‘앵두’를 읽게 되었다. 여전히 그의 갈등하는 마음이 그 안에 짙게 깔려 있었다.

 

화자이자 장애아를 둔 아버지는 마치 성인군자처럼 자식 앞에서 허세를 연출하기도 하고 자식을 안고 물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경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식이 멀쩡해지기를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그만의 생각일 뿐 그는 어떤 결정도 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아이와 동반자살을 생각했던 아버지를 바라보자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로 나 자신을 던져버리는 듯해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때에 따라 가장이란 자리가 더 부담스러웠을 아버지, 그러나 벗어날 수 없다. 현실에서 도망쳐 술을 마시러 가지만 그래도 자식에 대한 마음은 지울 수 없다. 자식들의 기침 소리에도 민감할 만큼 자식들을 외면할 수 없는 주인공 아버지. 그는 반복된 자신의 생활 속에서 자기와 아버지 사이에 고민하지만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하며 술에 그 마음을 달랜다. 주인공 아버지는 가장이란 책임이 너무 버거웠던 것일까, 아니면 인간으로 나를 잃어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일까.

 

부모라면 조건이 없이 자식에게 사랑을 주어야 한다는 세상의 기대. 세상은 부성과 모성은 당연한 것으로 헌신을 암묵적으로 강요한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산다는 건 힘든 일이다. 여기저기 쇠사슬이 휘감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피가 뿜어져 나온다.’ (짧았기에 더욱 빛나는’ 작가와 비평 p.169 인용) 는 인간으로서 개인의 절규 같았다. 그래도 부모로 살아가며 버틸 수 있는 그 경계가 무너질까 불안한 마음에 서로의 어려움을 애써 외면하는 부부가 위태롭게 보인다.

 

 

 

 

‘자식보다 아버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싶다’는 소심하게 정당화는 모습은 주인공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것 같다. ‘부모가 더 소중하니까’가 아니라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싶다’라는 말은 결국 ‘자식이 더 소중하다’고 고백하는 듯하다. 아버지는 인간으로서 자기와 아버지 사이에서 갈등으로 불안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앵두를 맛없이 먹고 뱉는 모습은 이러한 그의 불안정한 마음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다. 귀한 앵두를 처음 먹을 수 있는 자기로 한 개인으로 존중받길 바라는 그의 욕구가 엿보인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기로 인정받기보다 먼저 아버지로 인정된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귀한 ‘앵두’와 ‘자기’를 동일화하며 자기 스스로 그 존재를 인정하고 싶었던 거 같다.

 

이 작품을 통하여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부모님을 바라보게 된다. 나 또한 그동안 ‘부모는 자신의 정체성을 희생하고 부모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 살짝 부끄럽다. 여기에 ‘고3 학생은 부모님에게 당연히 이해받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 부모님에게 꽤 요구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이해해 주실 부모님 생각에 미안함을 느끼는 오늘이다.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