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채현의 시사 칼럼] 이념적 양극화를 극복하는 길

기성 언론은 우리 국민의 양극화를 책임져야 한다

5월 10일, 제20대 대통령 당선인 윤석열은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제20대 대선에서는 이념적 양극화가 유달리 눈에 띄었다. 개표 결과,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득표율은 고작 0.73% 차에 불과했다. 우리 국민이 두 갈래로 완전히 분열되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지금, 이념 차이와 관계없이 수많은 사람이 20대 대통령의 최대 과제가 ‘국민 통합’이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회의 양극화가 가속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우리 국민이 양분화되는 현실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이런 사회를 바라보면 자연스레 미디어 현실을 개탄하게 된다. 그간 미디어는 개인별 맞춤 콘텐츠를 추천하여, 나와 다른 생각은 접할 수 없게 만들었다. 분명히 미디어는 이념적 양극화를 가속한 장본인이다. 따라서 오늘은 이념적 양극화와 이에 대한 미디어의 책임을 논해보고자 한다.

 

먼저 이념적 양극화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이념적 양극화는 ‘정치적 양극화’라는 용어로 치환할 수 있다. 사람들이 정치적 의견에 있어 극단적인 두 갈래로 양분된다는 의미다. 진보-보수 간 갈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진보-보수 간 갈등은 무척 심각하다. 2019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1에 따르면 ‘진보와 보수 집단 간 갈등이 어느 정도인가?’라는 질문에 무려 91.9%(매우 그렇다 56.6%, 그렇다35.3%)가 큰 편이라고 답했다. 다른 예시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집에서 정치 얘기만 하면 부모님과 다툰다는 친구, 명절에 정치 얘기는 언급 금지라는 지인, 포털사이트 기사 댓글 속 격렬히 다투는 시민들. 이렇듯 이념적 양극화는 우리 삶에 녹아 있다.

 

그렇다면 이념적 양극화는 왜 발생할까? 한국정치연구 제29집 제3호(2020)2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위 그림은 제21대 총선에서 검찰개혁을 고려한 정도를 수치화한 그래프이다. 수가 클수록 검찰개혁을 중요시한다는 뜻이다. 그래프를 살펴보면, 지지 정당에 따른 정도와 주로 시청하는 뉴스에 따른 정도가 거의 같다. 단순히 이념에 따른 차이라고 보기엔 그래프 모양새가 지나치게 비슷하다. 이러한 결과는 검찰 신뢰도나 일명 ‘조국 사태’를 고려하는 정도에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이를 통해 유권자들은 언론 매체를 통해 정파적 지식을 습득하며, 이것이 양극화 현상으로 이어진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념적 양극화로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미디어가 있다. 미디어가 이렇게 타락한 데에는 기성 언론의 잘못이 크다. 언론은 그동안 상업적인 정파성을 띠며 서로 다른 사실을 보도해왔다. 언론이 본인들 입맛에 맞는 사실만 보도하는 동안, 대중은 언론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져버렸다. 그 결과 이념적 양극화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이제 언론은 단독이나 최초 보도 타이틀은 물론, 명목적인 팩트체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진실한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 이는 이념적 양극화를 야기한 언론의 책무다.

 

앞으로 5년, 윤석열 정부는 선거 과정에서 두드러진 이념적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양극화는 전 세계의 유구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수십 년 수백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손을 놓을 수는 없다. 조금이라도 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반드시 노력해야 한다. 끝도 없이 노력한 후에, 우리는 이념적 양극화를 극복한 정의로운 사회를 맞이할 것이다.

 

참고 1: 2019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 결과보고서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참고 2: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살펴본 미디어의 정치적 편향성 및 선택적 미디어 노출로 인한 정치적 양극화: ‘검찰개혁’을 바라보는 상반된 인식을 중심으로 (박지영,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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