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연의 사회 칼럼] 근로기준법으로 보는 법 변화의 원동력

 

2022학년도 수능특강 영어독해연습 2강 8번 지문에서는 법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강력한 이익이 뒷받침 될 때 법이 변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강조하는데, 역사 학자나 사회 과학자들이 법의 변화에 대한 설명을 찾을 때 법 체제의 원칙이나 원리, 혹은 내부 구조에서가 아닌 사회적 이익, 영향력, 요구에 대한 연구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1) 법은 사회권력자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은 상태로 계속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 법이 권력자 집단에 의해 조종된다는 부정적인 비판을 무의식 중에 담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법이 과연 권력층의 이익에 의해서만 변화하는 것인지 고민한 결과, 노동법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이 글을 작성한다.

 

노동법이 일상에 스며들게 된 변화 양상을 살펴보자. 1970년대와 1980년대, 인권에 대한 고민보다는 나라 경제의 부흥이 더 중요했을 당시, 집안의 생계를 짊어진 방직공들이 있었다. 방직공들이 모여있는 평화시장을 포함하여 모든 근로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하루 15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은 기본으로, 1976년 당시 대한민국 산업재해율이 미국과 영국의 5배였으며 일본의 15배였을 만큼 열악했던 노동 환경 속에서 전태일이라는 한 청년이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 전문을 해석한 끝에 그가 마주한 것은 현실과의 괴리감과 절망이었다. 당시 노동법이 지금의 노동법과 다를 것 없을 정도로 노동자들의 처우를 존중하고 있었기 떄문이다.

 

법이 있었으나,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시행되지도 않아 법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곧바로 평화시장 최초의 노조 바보회를 창설하고 노동 실태 조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근로개선 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현실을 바꾸기는 어려웠다. 노동하여 조국의 발전에 힘쓰라는 것이 전체적인 사회분위기였던 만큼 정부는 오히려 회사를 지지한다. 노동청에 얘기해도 언론에 얘기해도 노동자의 환경은 개선되지 않았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전태일은 결국 분신자살을 하며 사회에 노동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을 남겼다. 이후 사회에 노동조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이 사회 문제로 크게 부각되며 결국 근로기준법이 실질적으로 시행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선진국의 법을 그대로 따오기만 해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모르고 법과 현실의 괴리만 거대했던 현실을 노동자들의 사회적 이익을 위한 투쟁으로 변화시킬 수 있던 것이다. 허황되게 이상적인 존재이기만 했던 법을 실질적인 법으로 변화시키는 데 일조한 것은 권력집단이 아닌 그 당시 사회적 약자, 노동자들이었다.

 

이 사례를 통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법이 사회적 이익에 의해 변화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나쁘다고 보면 안된다는 것이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과거에는 생각없이 지나쳤던 것들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 인식의 변화가 존재함을 떠올려보면 정의는 부동의 존재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 법은 끊임없이 진리와 정의를 추구해야 하며 줏대 없이 마구잡이로 변화하지는 않되, 옳은 것에 대한 고찰 후 쇄신하는 과정은 담아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즉, 노동법이 확립되는 과정에서도 볼 수 있듯 아무리 사회 권력층이 탄압하고 있더라도 언젠가는 투쟁하는 사람들이 승리하고, 법이 변화한다. 권력층의 이익이 지지하고 있어 법이 변화하지 않는 현상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지만 적어도 법의 변화는 결국 사회 구조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얻는 사회적 이익에 의해 생긴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 점을 유념하여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법이 있다면 우리의 순수하고 의로운 ‘이익’을 위해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각주

1)인용: 2022학년도 수능특강 영어독해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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