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은의 시사 칼럼] 안락사 허용해야 하는가

한때 논란이 되었던 안락사. 안락사란 환자의 고통을 덜기 위해 인위적, 의료적인 행위를 통해 강제적으로 끝맺음을 하게 되는 말한다.1 비슷한 것에는 존엄사가 있다. 존엄사는 사망을 하는 사람의 존엄서의 보존 목적으로 스스로의 결정권을 강조하는 것이다. 안락사는 인간의 목숨을 가져가는 무서운 도구이다. 그럼 이런 안락사를 없애는 것만이 맞는 걸일까? 현재 한국에서는 존엄사만 허용되었고 안락사는 불법이다. 나는 그 이유로 악용에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악용한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때문에 나는 안락사에 동의하는 바이다.

 

 

첫 번째,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한 생병 유지는 막대한 비용 부담을 준다. 환자를 돌보기 위해서는 치료, 입원, 장치비용의 막대한 금액이 소요된다. 이러한 금액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부담하기 어려운 높은 금액이다. 만약 안락사가 없다면 환자의 가족들은 막대한 금액이 소요되기 때문에 형편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장기를 이식하여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은 장기가 없어 돼지의 장기를 이식한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돼지 장기를 이식한 환자는 1년도 못산다고 한다. 하루에 장기가 필요하지만 이식하지 못하여 죽는 환자는 많다. 하지만 안락사로 인하여 건강한 장기를 장기가 필요한 사람에게 이식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세 번째, 안락사 악용 소지를 막을 방법은 만들면 된다. 안락사 반대 측 의견에 41.6%가 악용소지를 근거로 내놓았다.2 안락사를 악용한 사례는 해외에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일어난 ALS(루게릭병) 병을 앓고 있는 여성에게 안락사로 촉탁살인을 한 의사가 안락사 악용 사건 중 하나이다.3 하지만 이런 것은 충분히 법으로 악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안락사를 허용시키면 불법적으로 안락사를 사드리는 행위나, 악의적인 일 저지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네 번째, 고통으로 죽는 것보다는 평온한 죽음이 생명에 대한 존엄이라 할 수 있다. 존엄이란 무엇일까?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인물 또는 지위 따위가 감히 범할 수 없을 만큼의 높고 엄숙함’ 이라 표기되어 있다. 말을 풀어보자면 개인은 존중받아야 하고 가치가 있으며 윤리적인 대우를 받을 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럼 과연 고통스럽게 죽는 것이 존엄일까? 아니면 평온하게 죽는 것이 존엄일까? 고통과 존중, 윤리적 대우는 거리가 아주 멀다고 생각한다. 고통은 아픔을 말한다. 고통이 존중받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평온은 어떨까? 평온은 존중받는 것 같다. 평온이 고통보다 존중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안락사를 허용하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고,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 가족들에 경제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게 할 수 있다. 모든 물건은 본래 사용법에 맞게 사용하면 좋은 물건이 되는 것이다. 안락사도 편안하게 생을 마감했으면 하는 좋은 마음으로 좋은 곳, 좋은 일에 사용하면 충분히 인상 깊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안락사가 허락되어 더 좋은 미래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각주

인용-1 https://dict.naver.com/search.nhn?dicQuery=안락사&query=안락사&target=dic&query_utf=&isOnlyViewEE

인용-2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308005004

인용-3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7241132000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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