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드림의 사회학 칼럼] 방관의 윤리

우리 사회 속 방관에 대한 분석

 

 

미얀마 쿠데타 이후의 자국민 학살 사건, 정인이 양모 장하영에게 사형 구형, 평택항 대학생 사망 사고,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 김홍빈 대장 사망 사건,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사건의 진행 과정에서 ‘방관’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방관은 어찌 보면 매우 일상적인 행동이다. 길거리에 나뒹구는 쓰레기를 일일이 다 주우며 다니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미 길거리의 쓰레기에 대한 방관을 한 셈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지닌 보편적 특성인 ‘방관’ 중 어떤 상황의, 어떤 종류의 방관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상기된 안타까운 사건들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을까? 때로는 실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는 방관은 과연 윤리적으로 생각해볼 때 선한 것인가, 악한 것인가? 궁금증이 들지 않는가? 필자도 이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며칠 동안 '방관'에 대한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져보았고 그 생각의 결과를 경기도의 여러 청소년과 나누기 위해 이 칼럼을 작성하게 되었다.

 

- 사회적 맥락, 종류, 과정

 

‘국숫집 사회로의 이행’에서 다룬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적 가치관, 사회적 소외, 경쟁 심화에 대한 이야기가 ‘방관의 맥락 및 상황’에 대한 이야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방관’은 사회적 맥락과 별개로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무던히 ‘사회적’인 현상이다. 사회의 구조 및 문화는 우리들의 방관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자유 경쟁 체제가 발달하여 있으며 이로 인해 각자도생의 개인주의적 경쟁 풍토가 점차 심화하고 있다. (개인주의와 경쟁의 풍토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을수록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 속 개인들은 비교적 많은 방관을 저지르게 된다. 우리 사회 속에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문화가 자리 잡아야 사회적 맥락에 의해 점점 증

가하는 방관을 점차 줄여갈 수 있다는 말을 먼저 해두고 싶다)

 

이번엔 방관의 종류에 대해 고민해보자 나는 방관을 2가지 기준에 따라 각각 2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기준에 따라 방관을 나누면 ‘무관심의 방관’과 ‘관심의 방관’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관심의 방관’은 아까 예시로 든 것처럼 길거리의 쓰레기를 보고 줍지 않는 방관과 같이 어떤 문제 상황에 대해 상관하지 않고 무시하고 방관이다. 김홍빈 대장의 사건에서 여러 산악인이 김홍빈 대장의 구조 요청을 무시한 것도 ‘무관심의 방관’의 예시로 볼 수 있다. 험난한 상황에서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크레바스 속의 김홍빈 대장을 구하는 것은 자신에게 해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사고의 저변에 깔려있었을 것이다.  반면 ‘관심의 방관’은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부대 관계자와 가해자는 신고를 무마하고 회유하기 위해 군 부사관인 남자친구에게까지 연락하고 다른 부대로 전출 간 피해자를 관심 간부로 낙인찍어 부조리한 대우를 받도록 하는 것을 ‘관심의 방관’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의 범죄를 덮기 위해 명백한 성범죄가 발생하였으며 피해자가 그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이를 무시하고 많은 관심을 기울여 가며 자신뿐만 아니라 관계자들 전부가 방관하도록 노력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기준에 따라 방관을 나눠보면 ‘개인적 방관’과 ‘사회적 방관’으로 나눌 수 있다.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방관처럼 개인이 주체가 되어 이루어지는 방관은 ‘개인적 방관’이고 코로나 19로 점점 형편이 어려워지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은 저소득층 계층들이 힘든 삶을 외면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사회적 방관’이라고 볼 수 있다. 거의 날마다 발생하는 산업 재해 문제에 대해 ‘효율’, ‘생산성’, ‘비용 절감’을 이유로 방관하는 고용주들과 기업들의 모습도 ‘사회적 방관’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사회적 방관의 결과 평택항에서 대학생이 컨테이너에 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럼 이제 방관의 과정에 대해 살펴보자. 방관은 관찰-가치판단을 거쳐 일어난다. 방관하기 위해선 먼저 어떤 방관의 대상을 관찰해야 한다. 그 대상에 대한 관찰을 통해 우리는 가치 판단을 하기 위한 정보를 얻는다. 충분한 정보를 얻은 후에는 내가 이 사건을 방관했을 때 나에게 올 이익과 피해를 가늠한다. 이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가치 판단이 일어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가치 판단의 기준에서 ‘인간에 대한 존중’, ‘인간에 대한 사랑’을 차순위로 밀어두고 우리의 경제적 이익, 금전적 손해, 체면 등 물질적 기준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물질주의적인 사고가 널리 퍼진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우리들의 이런 경향을 성찰할 때 불현듯 칸트의 ‘목적의 정식’이 떠올랐다.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을 단지 수단으로만 대우하지 말고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하도록 행위를 하여라’는 칸트의 정언 명령은 평소 우리의 일상적 가치 판단의 과정에 인간의 인격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으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에 대한 개요를 대략 소개하자면 이렇다. 2021년 5월 22일 대한민국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이었던 공군 여성 부사관 이 모 중사가 남성 상관인 장 모 중사에게 달리는 자동차의 뒷좌석에서 성추행을 당해 여러 차례 신고하였으나 모두 묵살되었고, 2차 가해에까지 시달리다가 자살을 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특히 국민들의 공분을 산 이유는 가해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상관, 가해자의 아버지, 군 양성평등위원회, 전출 간 부대의 간부들, 부사관의 성추행 사건을 맡은 국선 변호사, 부사관의 사망 사건을 조사간 군검찰, 성추행 발생 당시 운전을 했던 후임 부사관까지 수많은 사람과 기관들이 지독하게도 피해자를 방관했다는 점이다. 피해자가 4번이나 신고를 했음에도 이 예 사건이 접수되질 않았고 5번째에 피해자의 가족이 강력하게 항의하며 신고 했을 때에서야 사건을 접수했다. 공군 양성평등센터장은 성추행 사흘 뒤 관련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원칙을 어기고 국방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국선 변호사로 선임된 군법무관은 선임된 지 50일 후에야 전화로 연락을 했으며 2회의 전화상담 이외엔 다른 업무를 거부하였다. 피해자가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부대는 국방부에 피해자의 사망 이유가 뚜렷하지 않다며 ‘변사자’로 보고하였다.1 

정말 나열하면서도 마음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른다. 조직 전체가 가해자를 두둔하는 이 역겨운 상황이 2021년에도 발생했다는 점이 정말 사회학도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안타깝다. 폐쇄적인 군대 문화가 유발한 이 지독한 ‘방관’의 사건을 분석해보자면 ‘개인적 방관’ 들이 모여 일어난 ‘사회적 방관’이라고 할 수 있고 명백한 ‘관심의 방관’이라고 볼 수 있다. 

 

- 우리 사회 속 차별과의 관련성

 

방관은 이런 성추행 범죄 무마 사건같이 안타까운 사건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 전체의 ‘차별’ 문화를 유지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 속 대표적 차별인 장애인 차별과 여성차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유럽의 선진국들에 비해 장애인들을 배려한 공공시설이 아직 많이 부족한 실정인데도 불구하고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이 겪는 고충에 대해 ‘무관심의 방관’을 하고 있다. 또한 지하철 역내 엘리베이터 설치, 장애인 학교 설치가 제안될 때마다 비장애인들은 왜 쓸데없이 예산을 쓰냐, 우리 집값 내려가는데 왜 장애인 학교를 짓냐 같은 금전적 이유를 바탕으로 ‘관심의 방관’을 저지르기도 한다.

 

여성 차별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 책 ‘여성의 종속’(존 스튜어트 밀, 책세상)과 ‘완벽한 아내 만들기’(웬디 무어, 글항아리)를 읽어보면 과거에 이루어진 여성 차별에 대한 방관에 대해 잘 알 수 있다. 필자는 1800년대의 남성들이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혀 여성과 남성의 동등함을 파악할 수 없었다고 생각하며 시대에 따른 당시 남성들의 한계를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성의 종속을 읽고 존 스튜어트 밀처럼 1800년대의 남자라도 성찰을 통해서 충분히 여성 차별에 대한 부조리함을 밝혀낼 수 있으며 당시 대부분의 남자는 단지 자신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성이 처한 불평등한 현실을 개선하는 것에 방관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실화 소설인 ‘완벽한 아내 만들기’에서는 ‘관심의 방관’에 대한 예시를 찾을 수 있었다. 완벽한 아내 만들기는 한 영국 신사가 완벽한 부인을 얻기 위해 보육원에서 12살의 여자아이 2명을 입양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키워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인데(물론 나중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내게 충격이었던 점은 당시 가정을 꾸리고 있었던 주인공의 친구가 부인이 없어서 여자아이를 입양할 자격이 되지 않는 사정을 듣고 주인공의 부인 길러내기 계획까지 듣고 나서 기꺼이 자신의 이름으로 입양을 받아주었다는 점이었다. 친구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보육원의 여자아이를 고통의 수렁으로 보내는 주인공 친구의 행위가 정말 안타까웠다.

여성차별에 대한 방관은 현대에 와서도 계속되고 있다. 2019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 가사노동 시간은 남편이 아내의 3.5분의 1 수준이고 아내만 취업한 경우에도 아내의 가사 노동 시간이 50분 가량 많았다.2 또한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2018~ 2020년) 동안 전체 육아휴직자 31만6431명 중 34.1%에 달하는 10만7894명이 복직 후 6개월이 지나야 수령할 수 있는 육아휴직 사후지급금을 받지 못했으며3 2019년 기준 30대 여성 3분의 1이 경력 단절 여성이다.4 이런 여성 차별 사회에서 남성들은 요즘 여자들이 자신들보다 더 많은 혜택과 이점을 누리고 산다는 이기적 주장을 반복하며 ‘관심의 방관’과 ‘무관심의 방관’을 일삼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 방관의 윤리

 

두 가지 방관의 윤리를 제안하는 형식으로 칼럼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먼저 ‘방관=방조’의 윤리를 제안하고 싶다. 학교폭력, 군 내부 부조리 등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방관으로 인한 해악이 유지되는 이유는 대다수의 사람이 방관에 대해 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방관 역시 피해자에게는 큰 심리적 피해를 주고 아무도 내 문제에 공감해주지 않는다는 절망에 빠지게 하는 ‘악행’임은 분명하다. 방관할 때 뭔가 살짝 찜찜한 우리 양심을 무시하지 말자. 방조란 남의 범죄 수행에 편의를 주는 모든 행위. 정범(正犯)의 범죄 행위에 대한 조언, 격려, 범행 도구의 대여, 범행 장소 및 범행 자금의 제공을 일컫는 말이다.5 방관이란 남의 범죄 수행에 제약을 가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에게 편의를 주는 행위이고 무언의 동조가 되기 때문에 방관 역시 방조의 한 종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방관=방조라는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더 이상의 방관을 중단하길 촉구한다.

 

두 번째 방관의 윤리는 정의론(존 롤스, 이학사)과 연관된 윤리이다.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주장한 롤스는 절차가 공정하다면 결과가 공정하다고 주장하면서 ‘무지의 베일’을 쓴 상황에서는 모든 사람이 정의의 제1, 2원칙에 합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무지의 베일’을 통해 방관에 대한 윤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해관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개인적 정보를 마치 베일을 씌우는 것처럼 없애고 심리학과 경제학의 일반적 지식만을 가지고 있는 상태의 개인은 자신도 방관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방관’의 해악성과 절대 어떤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방관’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이런 무지의 베일을 통한 논증을 가치관 속에 담고 생활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의 ‘방관’을 중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인용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8/0004944167?sid=100
2.인용 : https://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3027
3.인용 : joongang.co.kr/article/25013482
4.인용 : http://www.segye.com/newsView/20191126513439?OutUrl=naver

5.인용 : https://ko.dict.naver.com/#/entry/koko/daf37a37b8de4a648a265f184ee9ef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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