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원의 문화재 칼럼] 먹을 아십니까

초등학교 때 일주일에 꼭 한 번 정도 있던 서예 시간은 다른 수업보다 더 조용하고 붓과 종이에 집중할 수 있어서 나에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대신 먹을 벼루에 가는 일이 귀찮았다. 나중에는 공장에서 만든 먹물을 사용하기도 했다. 심지어 옷에 튀면 세탁하기도 까다로웠다. 반면에 잉크를 주로 사용하는 지금은 먹보다는 지우기가 쉽다. 그렇다면 먹은 대체 어떻게 만들었길래 잘 지워지지도 않을까? 이 사실이 궁금했던 예전의 나와 모든 사람을 위해 칼럼을 작성한다.

 

 

먹은 벼루, 화선지, 붓과 함께 글을 쓸 때면 꼭 필요한 문구들이라고 하는 ‘문방사우’로 불린다.1 주로 서예에서 많이 쓰이고 그림을 그리는 데에 사용되기도 한다. 사용 방법은 벼루에 물을 넣고 갈면 흑백의 먹물이 나오는데, 이 먹물을 붓에 묻혀 사용한다. 겉모습은 검은색이 네모나게 생겨서 투박해 보이지만 세상 정성스럽게 만든다. 원래는 소나무를 태워서 얻는 그을음에 민어의 부레를 이용해서 만든 부레풀인 아교를 섞어서 만들지만, 지금은 주로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하므로 국내에서는 석유 화학 제품인 카본과 아교 성분을 지닌 젤라틴을 혼합해 만든다.2

 

잉크는 인쇄나 필기에 사용되는 액체이고, 먹보다는 더 많은 색깔을 낼 수 있다. 제형도 여러 종류이고 용도에 따라 다르다.3 잉크도 먹처럼 아교를 사용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화학 물질을 주재료로 사용했다.

 

먹과 잉크에 대해 알아보았다면 의문점이 들 것이다. 성분도 같고 차이점이 없어 보이는데 왜 각각 다른 것을 사용했는가. 그 이유에는 동/서양의 차이점이 관련되어 있다. 먹은 물을 섞어서 사용하기 때문에 잉크에 비해 점성이 덜 하고 묽다. 동양은 붓을 사용하면서 동물 털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먹물이 묽어도 잘 묻었다. 서양은 대체로 펜을 사용해 농도가 진하고 점성이 있는 잉크가 금속이나 철필과 잘 맞았던 것이다.

 

또한, 동양은 주로 수묵화나 한국화처럼 붓과 먹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고 서양은 서양화처럼 유화나 수채 물감을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 동양화는 선이 뭉툭하거나 날카롭고 거친 느낌이 강하고 한지 자체에 물들게 표현하는 게 특징이다. 색채도 물과 먹 하나만을 사용해 농담을 조절하였다. 서양화는 어떠한 사물을 나타내는 것에 집중하거나 화가만의 특징을 잘 살리기 위해 여러 색상의 물감을 사용하고 덧칠하여 정밀하고 확실하게 표현한다.

 

 

이렇듯 미술에서까지도 차이점이 드러나면서 먹과 잉크를 사용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같은 재료를 사용할 수 있음에도 사고방식이나 생활의 차이가 생겨 당연하게 재료의 구분이 나뉘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다른 재료를 사용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재료를 자연스럽게 주고받으며 더 다양한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편하게 볼펜과 같은 서양의 재료를 사용하고 서양은 동양의 붓을 경험하게 되면서 미술의 폭을 넓혀주었다.

 

마지막으로 먹을 사용한 서예에 관해 얘기하고 싶다. 사실 서예는 처음부터 있었던 말이 아니다. 생겨난 지 75년이 조금 되었고, 그전에는 일본식인 서도, 중국식인 서법을 사용했다. ‘서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예가인 손재형 선생에 의해서 만들어진 말이다.4 손재형 서예가는 일제강점기 때 서예를 금지하고 글씨를 읽고 배우는 것만 가능하게 했던 일제의 교육 방식을 단호하게 잘라내면서 서예라는 말을 창안했다. 만약 서예라는 말을 만들지 않았다면, 글씨를 쓸 필요가 없어 결국 먹은 우리나라에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먹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목숨보다 서예를 지키려는 손재형 선생의 노력 덕분임을 알 수 있다.

 

각주

1. 참고 : https://ko.wikipedia.org/wiki/먹
2. 인용 : https://ko.wikipedia.org/wiki/먹 
3. 참고 : https://ko.wikipedia.org/wiki/잉크 
4. 참고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0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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