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영의 영화 칼럼 XI] 흥행해도 실패한 영화가 있다 "피치 퍼펙트1"

흥행에는 성공해놓고, 전하려던 메시지는 짓밟은 영화가 있을까? 그 영화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피치 퍼펙트" 속편인 2,3편까지 나왔지만 정작 영화의 감동을 반감시키는 '피치 퍼펙트'의 요소는 무엇일까?

 

PC, 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요즘 여러 가지 인권 운동이 발생하며 마치 밈처럼 쓰이게 된 용어의 일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PC한 영화에 대한 대중의 의견이 분분하다. 모든 창작자가 PC한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비난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PC한 이야기를 썼다고 비난 받아야 하는 것 또한 아니다. 다만, '실패한' PC 작품은 비난을 피해갈 수 없다. 그리고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실패한 PC 영화, '피치 퍼펙트1' 이다.

 

왜 실패한 PC 영화는 비난 받아야 하는가? 여기서 실패란 흥행에 성공했냐, 실패했냐가 아니다. 만약 이걸 흥행의 척도로 따지자면 피치 퍼펙트는 아마도 100% 성공한 영화일 테다. 그도 그럴 것이, 후편까지 제작된 높은 평점의 시리즈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PC 영화의 실패는 그런 식으로 따지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표현하는가이다. 그리고 대부분, 실패한 PC 영화의 참패 요인은 단 하나다.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가 올바르다고 여기며 남들에게 선구적인 영화를 만들려고 하지만, 정작 시대를 쫓지 못하는 본인 - 감독이다. 감독이 영화의 참패 요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가 추구하는 가치가 오히려 우스꽝스러워진다.
 

 

 

피치 퍼펙트는 여성들의 연대를 그린 영화다. 인종에 관계 없이, 몸매에 관계 없이, 같은 흥미를 쫓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면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가치를 전하려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감독은 중요한 걸 깜빡한 모양이다. 유색인종 캐릭터를 넣고, 영화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중년의 남성에게 “여성혐오주의자” 라는 코멘트를 붙이기만 하는 걸로 영화가 ‘피씨’해지지는 않는다. 사실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다. 그 동시에 대학을 배경으로 한 소녀들의 성장물이다.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치트키란 치트키는 모두 다 써놓고도 이런 혹평을 받는 이유가 있다.

 

감독은, 아마도, 유색 인종에 다양한 몸매를 가진 여자들이 나오면 의미 있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째서 주인공의 룸메이트 '키미 진' 을 등장 시켰는가? 키미 진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주인공과의 대화를 단절한 채 다른 캐릭터에게 맥락 없는 혐오를 내보인다. 키미 진은 자신의 한국인 친구들과만 어울리며 다른 인종과의 대화를 철저히 거부하고 폐쇄적인 모습을 보인다. 키미 진은 왜 이렇게 됐을까? 알 수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영화를 수 백 번 돌려보더라도 키미 진이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시안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말 그대로 불필요하다. 그럼에도 감독은 이 캐릭터를 왜 만들어냈는가? 웃음을 주기 위해서이다. 웃기지 않은가, 아웃사이더였던 주인공이 마음을 열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는데 이 안타까운 캐릭터는 영화가 끝나기 전 딱 한 마디 ('방학 잘 보내') 를 빼고는 계속해서 주인공을 쳐낸다는 게 감독의 눈에는 웃겨 보였을 것이다. 정말 재미있는 일이다. 외형에 관계없이 모두가 하나가 되자는 메시지를 보내는 영화에서 굳이 배제되는 캐릭터를, 그것도 전형적인 아시안 캐릭터의 모습으로 보여준다는 사실이 굉장히 편협하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다양한 인종을 넣어 달래서 넣어줬더니, 이젠 또 그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고 난리야!" 간단한 방법이 있다. 이런 식으로 표현할 거면 차라리 백인으로 가득 찬 영화를 만드는 것이 낫다. 하나의 인종만 캐스팅 하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다. 물론, 특정 장르에서 백인만을 캐스팅 하거나 원래 다른 인종이었던 캐릭터를 굳이 백인으로 욱여넣는다거나, 이 거대한 영화 산업 자체에서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척 당하는 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유색인종 배우를 캐스팅 해놓고서 현실 세계에서 차별받는 이들의 스테레오 타입 캐릭터를 왜 굳이 재생산 해내는가? 스토리의 진행상 꼭 필요하지도, 그렇다고 교훈적이지도 않은 방식으로 어째서 굳이 그러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가? 

 

단연 키미 진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인공이 소속해있는 동아리는 여성 아카펠라 합창단 '바든 벨라스'로, 매년 대회에 출전한다. 이때 항상 대회를 심사하는 남녀 심사위원이 있는데, 성차별적이고 다소 무례한 언사를 일삼는다. 예를 들면, '여자가 의사가 되지 못하는 것과 여성 아카펠라가 인기 없는 건 비슷한 원리다' 라거나, '섹시한 의상을 입고 나와 보기 좋다' 거나- 등등. 영화 내내 그러한 농담을 일삼으며 깔깔거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영화 말미에 도달해서 여성 심사위원은 남성 심사위원에게 "여성혐오주의자" 라고 말한다. 남성 심사위원이 성차별적인 대사를 하면 옆에서 한술 더 뜨던 여성 심사위원이 갑자기 저런 대사를 왜 하는가? 개연성이 떨어진다. 영화 진행 상 잘못된 말을 하는 캐릭터는 존재할 수 있다. 그렇지만 pc함을 추구하기 위해 갑작스레 캐릭터 설정을 꼬는 건, 그럴 수 없다. 영화 내내 바든 벨라스에 대해 막말을 하던 캐릭터가 왜 그 남성 심사위원에게 '한 방 먹이는' 말을 하는가? 단지 그녀가 여자이기 때문에? 사실은 바든 벨라스를 눈 여겨보고 있었기 때문에? 여성 합창단을 폄하하는 말에 화가 났기 때문에? 글쎄, 아마도 단지 그날 먹은 저녁이 맛이 없어서 화가 난 것일 수도 있고, 뭔가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캐릭터의 변화에는 계기가 필요하다. 그 캐릭터로 하여금 누군가에게 깨달음을 주고 싶다면 더더욱 명확한 계기와 개연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피치 퍼펙트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막무가내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던 캐릭터가 갑자기 '걸크러쉬' '사이다' 캐릭터로 둔갑되는 것이다. 이런 식의 변화는 감동은 당연히 없을 뿐더러 흥미도 없다.

피치 퍼펙트는 성공한 뮤지컬 영화다. 성공한 하이틴 영화이자, 주인공 안나 켄드릭을 스타덤에 띄웠다. 그렇지만,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전송에 실패했다. 왜냐하면, 영화에서는 계속 '우린 할 수 있어 - 그런데 너만 빼고!' 라고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우리들 또한 단순히 겉으로만 보이는 메시지에 속아 넘어가지 말고, 그것에 가려진 잘못된 PC함에 대해 찾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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