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인의 언어 칼럼] 지켜야 할 우리의 문자, 한글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친구와의 대화, 인터넷 매체 등에서 처음 보는 단어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신조어’이다. 어느 순간부터 만들어지고 사용하기 시작한 이 단어들은 이미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여러 새로운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늘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 해?’라고 말한다. 우리는 왜 ‘신조어’를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일까.

 

유튜브, SNS와 같은 미디어 매체를 통해 새롭게 나타난 단어들은 빠르게, 젊은 세대에서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나간 단어는 심지어 어학 사전에 실리고 해외에서도 관심을 파급력이 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언어를 파괴하고 있지는 않은가?’이다. 신조어와 같은 단어들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세대만이 이해할 수 있어 소통의 문제점을 일으킨다. 즉, 사람 간의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언어의 취지와는 벗어나게 된 것이다.

 

언어는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목적으로 하는데 언어의 형식과 내용에는 필연성이 없어서 그 언어 사용자만이 이해할 수 있다는 자의성을 지닌다. 이는 예를 들어, ‘줄기나 가지가 목질로 된 여러해살이 식물’을 한국어로 ‘나무’라고 말하고 영어로 ‘Tree’라고 말하는 것을 들 수 있다.1 이러한 자의성은 다른 언어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 방언에서도 드러났었다. 그런데 ‘신조어’의 생성으로 이제는 세대 간, 그 매체의 이용자 등 언어의 자의성이 더욱 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더 사용하는 단어의 차이가 생기고 있다.

 

프랑스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자국어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나라이다. 과거 16세기 프랑스 왕실은 언어를 왕국의 통합 수단으로 보아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하게 하여 소속감과 정체성을 형성했다. 즉, 언어는 단지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정서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2 그렇기에 ‘신조어’는 사용자와 비사용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저하하고 공감 등을 이끌기 힘들다. 그래서 현재, 언어의 순기능은 점점 있는 것이다.

 

우리의 언어, 한글은 다른 언어들과 다르게 과학적 원리에 기반을 둔, 발음 기관의 모습을 본뜬 문자이다. 그런데 이러한 한글의 가치를 우리는 파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 우리가 매일 보는 뉴스 기사, 예능 프로그램, 유튜브, 그리고 SNS 등에서 ‘신조어’를 사용하고 이를 통해 알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신조어를 무슨 뜻인지 모르고 사용하고 다음 세대도 배워 올바른 언어 사용이 힘들어지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이를 계속 심화시키는 게 바로 ‘미디어 매체 속 콘텐츠’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고유한 언어인 한글의 과학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새로운 언어를 알게 되는 ‘콘텐츠’에서부터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고 우리의 언어 의식을 새로운 방향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각주

1.인용: https://ko.dict.naver.com/#/entry/koko/62447e17a5eb482a9331c78dc71968af

2.참고: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incheonmoo&logNo=221140965247&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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