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아의 문화 칼럼] 21세기 감성 신드롬, 공감보단 반감

 

“여자일 땐 안 울었는데 엄마 되고 웁니다”

 

삼성카드 베이비스토리 편 카피 문구이다. 그런데 광고 대상이 카드라고 하기엔 내용과의 상관관계가 다소 비약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이 낯선 감각은 ‘감성 마케팅’에서 출발한다. 소비자의 감성적 동인을 자극해 판매를 촉진 시키는 마케팅 기법을 영상 광고에 적용한 사례이다.1 즉, 평면적인 형식으로 단순 브랜드만 홍보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일종의 스토리텔링 식 구조를 차용해 친근한 가족 이야기로 변주를 준 것이다.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 주안점을 두는 이 감성 광고는 기존의 상술 식 경영보단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4차원 경영시대에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대중이 익히 알고 있는 박카스 광고나 초코파이 광고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정서적 유대는 소비자들에게 가장 친근하게 접근할 방법인 동시에 판매를 위한 전략이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감성을 전달하는 방식이 감성을 이용하기만 하는 데에서 그친다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우려가 크다.

 

필자가 서두에 인용한 문장을 보자. 언뜻 넘길 수도 있으나 다시 한번 짚어보면 성차별적 요소가 다분하다. 엄마가 아닌 여자는 울지 못할까? 여자와 엄마를 분리하는 것이 과연 마땅한 이분인가? 라는 의심이 든다. 또 영상 은연중에 여성의 육아 역할을 강조하고 모성애를 강요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착된 성 역할 고정관념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착오적 설정은 당시 여론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개중에는 '저출산 극복 캠페인'인 줄 알았다는 피드백까지 나오며 지나치게 스토리에 집중함으로써 정작 홍보대상의 요지를 흐리기만 했다는 지적도 속출했다.

 

현대차 광고도 비슷한 대목에서 감성전달에 실패했다. 더 뉴 싼타페 광고는 처음부터 아예 두 편의 광고를 분별 제작했다. 하나는 '엄마의 탄생' 편이고 다른 하나는 '끄떡없이 버틸게' 편이다. 제목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엄마의 탄생 편’에서는 종일 육아를 담당하는 여성의 시점에서, ‘끄떡없이 버틸게’ 편에서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직장생활을 하는 남성의 시점에서 서사가 진행된다. 각각 30초 남짓의 짧은 영상이지만 내레이션만 들어도 졸지에 모든 여성이 집에서 양육을 전담해야 하고 남성은 가장으로서 절대 울지 않아야 하며 항상 인내해야만 하는 전형적 인물로 전락해버린다.

 

아직 전통적 사고 회로가 지배적인 탓인지, 시의 적 의문이 여전히 미제상태로 남아있는 광고이다. 결국 감성과 마케팅,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놓친 셈이다. 만약 감성마케팅의 일환으로 대중의 감동을 끌어내기 위함이었다면 메시지 전달 방식에 더 신중했어야 한다.

 

국제 자선 캠페인 후원 광고에서도 안일한 방식으로 감정을 조장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모금을 위한 연민의 정서를 자극하기 위해 더 극단적인 추의 이미지를 가미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과장된 연출은 오로지 빈곤 조명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거짓 상황까지 의도한다. 실제로 에티오피아의 식수난을 촬영하기 위해 당나라 아이에게 가축이 이용하는 연못에서 강제로 물을 마시게 한 사례도 있었다. 소위 ‘빈곤 포르노’라고 지칭하는 이러한 작위적 설정은 시청자들을 기만하는 행위이며 해당 국가를 전형적인 가난의 범주 속에 규정해버리는 편견을 만든다. 따라서 끝내는 화면에 비친 부분적 모습만 보고 전체를 속단하는 현상이 번복되는 것이다. (아프리카 잠비아를 떠올리면 대개 빅토리아 폭포보단 기아가 먼저 떠오르는 것처럼)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는 차별의 시초이다. 과잉 동정도 폭력이라는 말을 명심하자.

 

 

그렇다면 감정 동요의 대상이 꼭 사람에게만 국한되어있는 것일까?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인 오늘날, 펫 관련 콘텐츠들이 매스컴의 인기 반열에 오르며 유기견 보호 산업에도 박차를 가하는 만큼 몇몇 프로그램에선 고통스러워하는 동물의 모습을 일부 각색하기도 한다. 극도로 악화한 육체 상태를 선정성의 통제 없이 방송에 직접 노출 시키는 형태이다. 이렇게 동정심에 호소하는 영상은 짐짓 병약한 소외 대상을 주 타깃으로 삼기 쉽다. 또 시청자들의 보호 심리를 부추겨 일시적인 유기동물 입양 증대에는 이점이 될 수 있어도 추후엔 본래 의도와는 상이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당장 내일이면 안락사를 당하는 동물들이 불쌍 하다는 식의 순간 정서에만 치우쳐 막상 한 생명의 보호자로서 요구되는 환경적 요건과 가중되는 책임감을 잠시 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대상의 취약점을 부각해 한시적 감정만 자극하는 것은 논리와 판단의 영역을 간과하기 때문에 늘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심지어 시, 소설과 같이 감정 배제가 어려운 문학 장르에서도 그간 전승된 개념들에 불필요한 신파성을 극대화해 문제시되는 작품들이 종종 발생한다. 한동안 근간의 화두로 떠올랐던 노동자 근로 환경 보편화 현상이 그렇다. 특정 직업군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 동정을 작품에 여실히 반영하는 것도 당사자에겐 불편함으로 다가갈 수 있다. 더욱이 주관적 개입은 의례 각인 되어왔던 직업 인식에 관한 오인을 재차 세뇌할 위험도 따른다. 그래서 작가와독자 모두 창작물이 한 방향 관점으로 계층을 표본화하지는 않는지 항상 주의가 필요하다.

 

‘지성이 아니고 감정이 결국 의견을 좌우한다.’라는 하버트 스펜서의 말처럼 원초적 내면은 인간의 모태 단면이다. 그 때문에 우리의 감각을 겨냥한 테마들이 공감대 형성에 더 주목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과도한 감정 소모가 더는 마케팅을 위한 기폭제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하자.

 

성별과 인종, 동물, 직업, 나중에는 사회적 약자까지 감성의 소재로 다룬 억지 제조를 통한 감동은 장기적으로 유효한가? 꽤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긴 하나 금방 휘발되는 감정이라면, 그건 단순 유희에 불과하다. 또 이를 통한 어설픈 대변은 누굴 위해 존재하나. 정서 산업의 활성화가 악의 부메랑이 될지, 이성의 변곡점이 될지는 절제된 표현 기법이 좌우할 것이다. 감성은 미끼가 아니다. 이제는 감성팔이식 차별 콘텐츠와 거리 두기를 할 때이다.

 

각주

1.인용: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2212670&cid=43667&categoryId=43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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