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의 사회 칼럼] 내가 아닌 ‘너’를 먼저 생각하는 사회

‘이기주의’, ‘개인주의’ 현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모두가 많이 들어보았을 단어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점점 ‘우리’라는 공동체에서 ‘너는 너, 나는 나’인 개인주의로 변화되고 있다. 이전에 당연했던 말들과 행동은 점점 사라지고 어느샌가 ‘너’를 위해 한다는 핑계 하에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비꼬는 말들만 생겨났다. ‘틀딱’, ‘꼰대’와 같은 말들도 이와 같다. 그러나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진심 어리게 해주는 말 또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자기 일에 상관하지 말라며 말이다.

 

필자는 현재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미디어의 부정적인 영향을 잘 받지 않는다. 그러나 소통의 문제가 존재한다. 하루는 대형 백화점에서 길을 잃어 전화하기 위해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휴대폰을 빌려줄 수 있는지 물었다. 몇 명의 사람에게 찾아갔으나 돌아온 대답은 모두 “NO”였다. 물론 내가 어른스러워 보여 더 꺼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불과 몇 달 전까지도 흔쾌히 빌려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필자가 점점 더 개인주의가 커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에는 충분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자 한다.

 

 

모두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공동체’가 기반인 나라다. 여느 동양이 그렇듯이 말이다. 이는 우리의 말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필자는 벌써 ‘우리’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했다. 그러나 영어의 경우 ‘My’를 사용한다. 말에서도 ‘우리’가 아닌 ‘나’가 된 것이다. 이 외에, 우리의 삶에서는 공동체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 시간이 지날수록 이는 더 심해지고 이기주의 또한 더욱 심해질 것이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심해진다면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를 위하여서 하는 행동은 사라질 것이다. 또한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이 사회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어떤 문제에 관해서 무조건 ‘너’를 탓하는 사람, 자신의 잘못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만이 존재하며 서로 간의 불신과 무시는 쌓여만 갈 것이다.

 

 

우리나라의 옛 모습을 생각해보자. 조선 시대로 갈 필요도 없다. 1970년에서 1980년대에는 항상 반찬을 많이 하여 이웃들과 나누어 먹고, 이웃은 모두 함께하고 친하게 지냈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속담처럼 사람들은 이웃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냈다. 길을 가다가 어려운 사람을 보면 먼저 ‘도와드릴까요?’를 외치던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려운 사람이나 생명이 위급한 상황을 보아도 먼저 나서지 않고 지켜보거나 그냥 지나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필자는 학교에서 ‘너의 기준’으로 생각하기를 배운다. 어떤 상황에서 타인이 더 편해지고, ‘진짜’ 타인을 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배운다. 그리고 실천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 학교는 더 웃음이 넘치고 평화롭게 되었다. 몸이 조금 고생을 하기는 해도 싸움이나 다툼이 없기에 더 행복해졌다.

 

우리가 점점 더 ‘너’를 생각하지 않게 되면 이 사회는 통합될 수 없다. 약자는 더 약해지고, 강자는 더 강해지고, 싸움과 분열만이 존재한다. 그런 곳에는 행복과 평화가 존재할 수 없다. 앞으로 이 사회를 이끌 주인공은 청소년, 바로 우리이다. 우리는 공동체를 지향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먼저 우리가 변해야 한다. 오늘 하루, ‘나’를 먼저 생각하는 삶이 아닌 ‘너’를 먼저 생각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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