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이의 독서 칼럼] 시계방향과 반시계방향의 삶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지난 설날에 떡국을 먹었을 때 또 1년의 세월이 흘렀음을 새삼 재확인했다. 조금씩 나이가 드는 것을 깨닫는 우리는 이런 상상을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젊음 속에 항상 머무를 수는 없을까, 하며 이상적인 꿈을 꾸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우리에게, 인생 황혼의 나이로 태어나 인생 최초의 나이로 거슬러 오르는 삶은 어떨까?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는 "80세로 태어나서 18세를 향해 늙어 갈 수만 있다면 인생은 한없이 행복할 텐데."라는 마크 트웨인의 글귀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탄생한 이야기는 작가 자신이 가장 재미있다고 평가한 단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이다.

 

이 기묘한 이야기는 주인공 '벤자민'의 기묘한 출생 이력에서부터 시작한다. '버튼 일가'의 첫 번째 아이로 태어날 예정인 '벤자민'은 온갖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나, 병원에서 그가 태어났을 때,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한다. 보송보송하고 작은 아기들이 우렁차게 울며 요람에 누워있는 한편, 웬걸 어떤 주름투성이 백발의 노인이  '벤자민'이 누워있어야 할 요람에 있는 것이다. 악몽이라 생각하고 싶었지만 '로저 버튼'에게 쉰 목소리로  "아버지."라고 부르는 노인을 보며, '로저 버튼'은 끔찍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벤자민'이 할아버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담배를 태우는 모습이 어질어질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굽어 있던 그의 등은 조금씩 펴진다. 해가 지나며 서서히 백발이 흑발로 바뀌고 젊어지는 모습과 함께 어느덧 '벤자민'은 자신의 실제 나이와 엇비슷한 시점을 맞이한다. 젊은 육체에 도달했을 때 여러 가지 일에 전전하며 성공을 거머쥔 그였지만, 시간은 더 흘러서 자기 아들과 비슷한 정도의 나이로 보이게 된다. 점점 젊어지는 육체를 보면 아무도 그의 모습을 보고 노인이라 부를 수 없다.

 

언뜻 보면 '벤자민'의 인생이 꽤 부럽게 느껴진다. 자신과 동년배인 사람들이 서서히 늙어가며 주름과 흰머리를 쳐다볼 때 누구보다 탄력 있는 피부와 흑발로 젊음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다. 실제로 그의 인생을 보면 그러했다. 초반에는 끔찍한 대우를 받았지만, 인생의 중반에 가서 제 뜻을 펼쳐 성공을 이룩했다. 원래대로면 일흔 살 정도의 몸으로 살아갈 노년기를 어린아이의 몸으로 살아가는 그의 인생을, 여러분은 어떻게 바라보는가? 사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의미는 '벤자민'처럼 거꾸로 사는 인생이든 우리처럼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인생이든 인생 중반기에 접어드는 때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 둘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이야기에서 '벤자민'이 성공한 때는 자신의 신체나이와 실제 나이가 유사했던 인생 중반기였다. 원형 경기장을 시계방향으로 뛰는 사람과 반시계방향으로 뛰는 사람이 만나는 지점이 표현 방식은 달라도 동일한 위치라는 점에서 보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다른 부분'에서 이 이야기가 전하는 의미에 이의를 제기한다. 분명 '거꾸로의 삶'과 '순리대로의 삶'의 교점이 일치하지만, 그 과정에서 느낄 '고통' 또한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태어났을 때 '벤자민'처럼 노인의 몸을 가졌다고 혐오 받는 일, 대학 진학 때 나이 든 모습 때문에 거부당했던 일, 자식보다 신체가 어려져 남들 앞에서 자식에게 '삼촌'이라고 부르라는 부탁을 받은 일, 젊었을 때 이룬 군사적 업적을 어린 외모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는 일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삶에서 겪기 어려운 고통을 그는 겪었다. 그중 필자가 작품 속에서 가장 비극적이라고 생각한 장면은 영유아기 정도의 신체에 도달한 노인 '벤자민'이 그동안의 모든 기억이 퇴색하여 정말 영유아 정도의 사고밖에 할 수 없게 되는 부분이다. 처음부터 세상의 지식을 머리에 지니고 태어났다가 마지막에 가서 모두 잊어버리는 경험은 결코 우리가 겪을 수 없는 경험이며, 그에 따른 고통 또한 이해할 수 없다. 우리의 삶에서는 겪을 수 없을 고통을 추가로 겪게 되는 그의 인생을 보면 오히려 현재의 삶을 순리대로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며 우리의 뜻을 이룰 날을 기다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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