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백'을 읽고, 내 안의 가시를 뽑고 책임지는 삶

가시를 발견하고, 뽑아낼 수 있는 용기가 있기를

 

" · · · 어떤 행동이 싫었고, 어떤 사람이 싫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살아 보니 그런 일을 겪어서 참 다행이구나 싶은 겁니다. 생의 결이 좋은 추억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 · · 삶의 근육은 많은 추억과 경험으로 인해 쌓이는 것입니다. 뻔뻔함이 아닌 노련한 당당함으로 생과 마주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합니다. 살아 보니 미움보다는 사랑이 그래도 더 괜찮은 근육을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내가 아직 철이 덜 들어 미운 사람 여전히 미워하지만, 좋은 사람 그냥 떠나보내는 실수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 작가의 말 

 

가시를 고백한다는 것. 가시는 마음속 깊이 숨겨놓은 상처나 아픔, 비밀들을 뜻하고, 이를 고백하는 것은 가시를 빼내는, 용기와 책임이 필요한 작업이다. 당신의 가시는 무엇인가? 누구나 각자의 가시를 품고 살아간다. 책 『가시고백』에서는 이러한 현대인의 흔한 모습을 청소년기 아이들을 매개로 사뭇 낭만적이고 순수한 이미지를 그려낸다. 동시에 아이들의 성숙한 면모와 작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리고, 삶의 교훈을 주는 책이다.

 

먼저 '해일'의 가시는 도둑질이었다. 본인이 소개하길, "사실은 누구의 마음을 훔친 거였다는 낭만적 도둑도 아니며, 양심에는 걸리나 사정이 나빠 훔칠 수밖에 없었다는 생계형 도둑도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한 도둑"이라고 자평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해일은 손버릇이 나쁜 아이였다. 딱히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음에도 남들의 물건을 그냥 훔치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그 '예리한 손'이 무뎌지길 은근히 바라는 아이였다. 해일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천사와 악마처럼 자신은 악마 쪽이라고 여겼다. 어릴 적 유치원 선생님은 우는 해일을 교실에서 내쫓아 밖에서 홀로 울게 만들었고, 이는 해일에게 남들과 너무 다르다는, 틀리다는 말로 바뀌어 가시가 되었다. 잔인한 억압이었다. 그 이후로 해일은 철이 일찍 들어서, 아니, 성숙해 보이기 위해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았는데, 형 '해철'의 '남들과 똑같다'라는 말에 눈물을 머금고 가시를 고백하기로 결심한다. 결국 해일이는 친구들에게 용기 내어 솔직하게 고백한다. 

 

다음은 '지란'의 가시다. 지란의 가시의 원인은 가정이었다. 지란의 부모는 친아버지의 외도로 이혼했으며, 친어머니는 잦은 야근에, 새아버지와는 어색한 관계다. 안타깝게도 지란이는 건강하지 못한 가정의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지란은 이혼은 어른들의 일이기에, 자신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그저 부모의 결정을 따랐다. 친아버지 '허'가 다른 여자와 외도할 때, 지란을 돌보기 귀찮아 쥐여주던 '캐러멜'을 싫어했고,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함께 허의 집에 몰래 들어가 어머니와 함께 쓰던 물건들에 낙서를 하며 자신의 분노와 원망을 표출하고 복수하고자 하지만, 이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해일의 그 '예리한 손'이 작동했다. 해일은 허의 집에서 넷북을 훔쳤고, 그 속에서 허가 지란이의 어릴 적 필름 사진을 하나하나 스캔해서 보관해놓은 것을 발견한다. 훗날 해일은 가시를 고백하며 지란에게 넷북을 전해주고, 지란은 해일이를 용서함과 동시에 허에게도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로 한다. 지란도 자신의 가시를 뽑았다.

 

마지막으로 '진오'와 '다영'의 가시다. 다영이는 반장이라는 직업병에 관한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가시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진오에게도 가시가 있다는 건 의아할지도 모른다. 또 다영이에게도 직업병 외에 다른 가시가, 진오와 똑같은 가시가 있다. 바로 '짝사랑'이다. 다른 가시들에 비해 우습고 유치해 보일지 모르지만, 현대 10대들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흔한 가시이지 않은가? 진오는 지란을 좋아한다. 때문에 티격태격하면서도 지란이를 꾸준히 도와준 것이다. 또 다영이는 해일이를 좋아한다. 해일이가 지란의 전자수첩을 훔치는 것을 보고도 모른 척해주고, 작중 해일이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직 이들은 가시를 뽑지는 못했다. 작가도 우리가 쉽게 가시를 고백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있다. "고백 실패. 뽑아내지 못한 고백이 가시가 되어 더 깊이 박히고 말았다. 잘못 고백했다가 친구들을 잃을까 겁이 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개입을 통해 가시고백에 대한 생각을 바로잡는다. "고백하지 못하고 숨긴 일들이 예리한 가시가 되어 심장에 박혀 있다. 뽑자. 너무 늦어 곪아 터지기 전에. · · ·  저 가시고백이 쿡쿡 박힌 심장으로 평생을 살 수는 없었다."

 

작중 인물들은 어리지만 심오한 가시를 가지고 있었다. 당신이 마주한 가시는 무엇인가? 아마도 많은 종류의 가시가 현대인들을 괴롭히고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혹은 가정에서 많은 가시를 얻게 된다. 사회 구조 등 외적인 요소들 때문에, 혹은 타고난 성격이나 성향 때문에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가시들을 해결해내는 방법이다. 그 과정이 그 사람의 성숙도를 드러낸다. 아직 미숙한 사람은 가시를 뽑는 데 난항을 겪을 것이고, 성숙한 사람은 원만하게 가시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성숙은 똑똑하거나 울지 않는 것 따위가 아닌 스스로를 사랑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자신을 사랑해야 가시를 뽑을 수 있다. 뽑고자 하는 용기와 그 이후 어떤 일이 생겨도 책임지겠다는 자립심은 자존감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에서 '삶의 근육'은 결국 가시고백을 통해 삶을 더욱 단단하게 해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용기와 책임을 통해 이를 더욱 강화시킬 수 있으며, 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작가가 말하듯 우리의 삶에는 좋은 것들만 있을 수는 없다. 물론 좋은 일들이 많으면 더 행복할 수도 있겠지만 삶의 근육은 어떤 것이든 추억으로 여기고 지나 보내면서 성장한다. 당신이 어떤 일을 겪었든, 그것이 당신의 남은 삶을 망가뜨릴 만큼의 대단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고유의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삶의 지나가는 것들이 아닌 본래의 나를 사랑한다면, 모든 일들에 의연하고 노련하게 대처할 수 있다. 나 또한 아직 철이 덜 들어 지나가는 것들에 크게 반응하고 신경 쓰지만, 이를 추억과 경험으로 여기고 천천히 이겨내고자 노력할 것이다. 당신도 그러길 바란다.

 

끝으로, 만약 당신이 기독교인이라면, 당신의 가시를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고백하기를 조심스럽게 권면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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