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이의 독서 칼럼] 그리스 로마 신화, 인간적인 신들로부터 지혜를 배우다

지혜와 상상력이 풍부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며

 

 

비대면 시대에 외부 활동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힘든 시기를 겪으며 생긴 자신의 고민이나 무료함을 이겨내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책이다. 불안정하고 답답한 세상사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재미와 삶에 대한 진지한 조언을 줄 수 있는 책은 무엇보다 가치가 있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였을까, 반 아이들이 제우스, 헤라, 아프로디테, 디오니소스 등 어려운 이름을 읊어대며 희희낙락했었다. 당시에 얼핏 들어보니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곧잘 신화 이야기를 한 지도 거의 10년이 된 것 같다. 그러던 중 필자는 고등학교 세계사 수업에서 유럽의 고대사를  배우며 그때 그리스와 로마의 이름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동심과 상상력, 그리고 세계사의 심화 학습을 위한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하여 필자는 도서관에서 제목 그대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한 권 빌려 읽기 시작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 국가 그리스와 로마와 관련이 깊다. 처음에는 고대 그리스에서 발생한 신화이지만 로마인이 신들의 이름을 로마식으로 바꾸고 발전시킨 것이 이 신화이다. 재미있는 점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들이 인간의 모든 것을 초월한 완벽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이 가진 능력은 인간의 것과 가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 행동은 인간과 다를 바 없다. 신이라 하여 온갖 부정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이야기를 읽다 보면 신이 노여움을 느끼는 까닭은 인간이 자신을 숭상하지 않았거나 인간이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태도를 부렸기 때문이다. 지극히 평범한 이유에서 느끼는 분노가 인간에 대한 처벌로 이어지는데, 그 원인이 사소하고 지나치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올림포스 산에 사는 제우스를 필두로 그의 아내 헤라 밑으로 가족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신들의 모습을 볼 때, 그들도 하나의 '인간 가족'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고통, 시기, 배신, 사랑 등 인간적인 면모를 갖춘 신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책은 이해하기 쉽고 간결한 문장과 중간중간에 들어간 삽화 덕분에 읽기가 매우 수월한데, 대상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그래서인지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의 내용과 다소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아내를 되살리기 위해 하데스를 찾아간다. 그리고 절대로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하데스의 명령을 어겨서 아내는 저승으로 다시 끌려가고 만다. 이후 오르페우스는 슬픔에 빠져 하프만 주야장천 밤낮으로 쉬지 않고 잇달아서 함 연주하다가 물에 빠져 죽으며 이야기를 맺는다. 한편 일각에서는 오르페우스의 죽음을 자신들을 모욕했다고 생각한 처녀들이 사지를 찢어 죽였다고 묘사한다. 내용이 엇갈린 부분에 대해서 필자는 이 책을 읽는 대상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기 때문에 너무 폭력적이거나 잔인한 내용과 표현을 순화시킨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책을 덮고 나서 필자의 기억에 남은 설화는 가장 처음에 등장한 프로메테우스 편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반대를 무시하고 인간에게 불을 선물한 죄로 '카프카스 산꼭대기' 바위에 손발이 묶였고, 거대한 독수리에게 영원히 재생되는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았다. 인간에게 불을 건네면 인간이 신들의 능력을 무시할지도 모른다는 반대에도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이 할 일이 옳다고 생각하며 인간에게 불을 선물한 그의 모습에서는 숭고한 희생정신을 볼 수 있다. 특히 이 이야기는 윤동주 시인의 '간'의 중심 소재이자 상징으로써 암울한 식민지 시대에 당당히 맞서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인의 성찰의식과 조국을 위한 희생정신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에도 차용되고 있어서 더 흥미로웠다. 분명 윤동주 시인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통해 삶에 대해 여러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사랑에 빠지고, 칭찬에 쉽게 우쭐해지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질투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인간의 속성이다. 신들조차 그러한 감정을 느끼고 충동적으로 행동할 때가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아마 그리스인들은 인간미 있는 신들을 통해서 당연하지만 가장 중요한 "가난한 자에게 자비를 베풀어라", "스스로 겸손해라", "불의에 맞서라" 와 같은 교훈을 후대인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때때로 우리는 신화 속 비극을 통해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배울 수 있다. 만약 나르키소스가 자신의 외모를 너무 자부하지 않았다면, 만약 에리시톤이 탐욕에 사로잡혀 신을 모시는 나무를 베어버리지 않았다면 두 사람의 말로는 그리 비참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으로 오랜 시간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아온 그리스 로마 신화는 앞으로도 그 명맥을 이어갈 것이다. 우리도 고전 속 지혜를 통해 현재 상황의 해답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일부 단어는 책의 표기 방식을 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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