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서연의 독서 칼럼] 식민지 청년 이봉창의 고백

기노시타 쇼조, 이봉창. 이봉창은 누구로 살았던 것일까. 이봉창은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어릴 적 부유하게 살던 그는 아버지가 병을 앓아 생활이 어려워졌고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신일본인으로 살아갈 것을 선택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일을 하며 그저 '조선인' 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실에  매우 상심했다. 그래서 일본의 지배를 인정하는 황국 신민이 되려고 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차별은 그가 곧 일제의 천황에게로 칼을 돌리게 만들었다. 전차 회사에 취직하고자 갔던 상하이에서 김구를 만났고 그의 신임을 얻으며 비로소 진정한 삶의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이봉창과 김구가 만난 지 열달만에 일본 천황 살해를 목적으로 하는 무기와 자금이 확보되었고 이봉창은 천황이 탄 마차에 폭탄을 던져 폭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류탄이 강력하지 않았고 폭탄을 제대로 던지지 못해 천황 폭살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의 용기있는 행동은 임시정부를 재기시키는 데 성공하였다.1

 

 

내가 이 책을 읽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이봉창의 업적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다. 우선 첫 번째로 집단 행동의 힘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봉창은 홀로 일본에서 의거를 진행했다. 하지만 만약 그와 함께 폭탄을 던질  수 있는 인물이 한 명이라도 더 있었다면 천황 폭살이 처참한 실패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누군가는 희생 정신을 가져야 하고 그 희생 정신을 갖는 누군가는 대단한 위인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나라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는 시기에 나타난 이봉창은 우리 역사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는 이중적 정체성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다시 고려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중적인 정체성은 항상 좋은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봉창은 신일본인 기노시타 쇼조로써, 그리고 조선인 이봉창으로써의 삶을 모두 경험한 인물이다. 신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은 그의 어려운 현실과 어두운 조국 속에서 생계를 조금이나마 더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힘든 현실 속에서 도피할 수 있는 정체성을 하나 더 가진다는 것은 그의 차가운 현실에서 그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삶의 끝자락 이라도 붙잡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또한 이중적인 정체성을 가지며 결국 자신의 삶에 대한 인식을 확립하고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즉 이중적인 정체성이 오용된다면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지만 자신이 힘든 상황에 처해있을 때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도피처가 된다. 그렇기에 이중적 정체성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 알맞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는 준비성에 대해 논하고 싶다. 독립을 위한 의거 활동에서 수류탄이 제대로 터지지 않은 사례가 여러번 존재한다. 이는 책임을 가지고 거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준비성과 철저함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빨리빨리 문화'로 유명하다. 하지만 신중한 일을 할때에는 반드시 확실하게 일을 이행하고자 하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일을 신속하게 끝내고자 성급하게 일을 진행시키는 것은 그에 따른 대가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봉창은 나라를 뺏긴 설움보다 조선인 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에 더 억울해 한 인물이다. 황국신민이 되고자 했던 평범한 청년인 그가 천황을 향해 폭탄을 던지게 한 일제의 식민통치의 실패 이유를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번 책을 읽으며 일제가 그러한 의거 활동에 피해를 받은 것은 일제의 행동에 대응하는 합당한 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봉창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김구라는 지도자에게서 신임을 받고 독립 운동의 의지를 몸소 실천했다. 어쩌면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항상 독립에 대한 열정이 자리 잡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 열정은 결국 천황 폭살 시도를 통해 많은 조선 청년들의 독립에 대한 마음에 큰 불을 지폈다. 이후 윤봉길의 의거와 같은 항일 운동의 매개체가 된 인물이자 우리나라를 독립의 역사로 이끈 다리와 같은 인물이 된 이봉창. 우리는 그의 업적에 감사하고 안타까운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본받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지금까지도 그의 업적을 접하는 많은 이들의 마음에 열정을 심어주는, 따뜻한 불을 지펴주는 그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 

 

(1.참고 : 책 <식민지 청년 이봉창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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