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나의 교육 칼럼] 대안이란 무엇인가, 간단한 질문에서 찾은 대안적인 삶

“어쩌면 세상에서 진실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눈이 있어도 아름다운 걸 볼 줄 모르고, 귀가 있어도 음악을 듣지 않고, 또 마음이 있어도 참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감동하지 못하며 더구나 가슴속의 열정을 불사르지도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필자는 ‘창가의 토토’라는 책을 통해 대안학교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책의 주인공 ’토토‘는 또래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다. 순수하지만 복잡한 생각을 가진 그 아이는 대안학교에 입학하고, 자신과 비슷한 친구들과 이런 학생들을 이해하고 따라주는 선생님들을 만나 행복한 학교생활을 보낸다. 토토가 일반 학교에 갔다면 토토만의 맑지만 심오한 생각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을 것이다. 책 속 토토와 친구들의 대화와 선생님의 말씀을 읽으면 대안학교 학생들은 참 순수하고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큼을 알 수 있다.

 

현실에서도 이들은 맑고 열정적이다. 대안학교 졸업생들 기존에 존재하는 것을 거부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들은 대부분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커 다양한 직업 종에 속한다. 대부분이 예술이나 사회 분야에 속하며,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성향에 맞게 기획자나 창작자 또한 많이 배출한다. 게다가 그들은 불의를 참지 못한다. 맑고 순수한 마음이 불편한 상황을 참아내지 못하고 정의롭게 터뜨리기 때문이다. 대안학교는 이런 인재상을 분명 원했고 키워냈을 것이다. 이렇게 대안 교육은 우리 사회에서 세상의 불의와 불화하는 ‘프로불편러’를 만든 것이다.

 

‘대안’적인 교육 방식은 ‘대안’적인 삶에 대한 고뇌로 이어진다. ‘대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불투명한 삶의 본질을 깨우치고 일렁이는 시련 속에서 굳게 살아나가도록 한다. 그들은 항상 ‘대안적인 삶이란 뭘까?’라는 고민을 하고 산다. 필자는 그 고민이 중요한 의미가 있고, 새롭다고 느꼈다. 대안 교육에 완벽하게 알기 전에는 대안학교는 그저 순수하며 또래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 가는 줄 알았다. 그들이 졸업하고 나서 대안적인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니 ‘대안적인 교육’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이 그들의 순수함을 잃지 않고, 불의를 참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물론, “대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놓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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