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현의 의료/심리 칼럼] 청소년이었던 조선시대 왕들에게는 여드름이 났을까

중학생이 되고 이마에 뾰루지가 나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작게, 어떤 날은 커다랗게, 또 어떤 날은 여러 개가 한꺼번에 났다. 좁쌀만한 뾰루지였는데 언젠가부터 빨갛고 큰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고, 며칠을 그렇게 커지다가 완전히 익으면 세수를 하다 터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며칠이 지나면 또 사라지기도 했고, 또 그런 날들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항상 여드름이 나 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더 많은 여드름이 난다.

 

요즘은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 시기가 오면 여드름이란 것은, 호르몬의 변화로 생기는 당연한 증상처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여드름이 너무 심한 경우에도 피부과를 방문하면 해결이 되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땠을까? 조선 시대에는 여드름이라는 명칭이 있었을까?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부와 권력을 갖춘 왕들은 어땠을까? 어린 나이인 청소년기에 왕권을 이어 받았을 텐데 왕들은 어떻게 했을까?

 

 

여드름이라는 명칭은 조선 시대에서는 찾을 수 없었고, 종기로 인한 조선 시대 왕들의 질병에 관한 자료를 읽게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왕들이 종기로 인해 고통받았고 심지어는 죽기까지 했었다. 문종, 연산군, 중종, 효종, 현종, 정조 등이 모두 종기로 인해 아파한 왕들이다. 종기로 인한 통증도 만만치 않지만, 글을 읽다 보니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치료법들이 있었는데 문종의 경우 종기가 난 부위에 거머리를 붙여 피와 고름을 빨아먹게 했다고 한다. 문종은 종기를 자주 앓았던 왕으로 결국 종기로 인해 사망했다고 한다. 제 17대 왕인 효종은 조선 시대의 잘못된 치료로 사망했다. 효종은 41세 때에 머리 위에 난 작은 종기가 매우 커져 이후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종기가 난 부위의 나쁜 피를 빼내고자 침을 놓았으나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제 23대 왕인 순조는 45세 때 다리에 난 종기가 악화되어 사망했다고 한다.1 

 

그렇다면, 여드름과 종기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여드름은 막힌 털구멍(개방 면포와 폐쇄 면포), 뾰루지, 깊은 종기(낭종 또는 결절)들을 말하는 것으로 얼굴, 목 가슴, 등 심지어는 팔에도 발생할 수 있다. 종기는 모낭에 염증이 생겨 노란 고름이 잡히면 모낭염이라고 하는데, 모낭염이 심해지고 커져서 결절이 생긴 것을 종기라고 한다. 종기는 모낭이 있는 부위라면 어디든지 발생할 수 있지만 주로 얼굴, 목 겨드랑이, 엉덩이, 허벅지, 샅고랑 부분에 잘 발생한다. 종기의 초기증상은 초기에는 단단하고 만지면 아픈 붉은 결절로 시작하여 점차 커지면서 통증이 심해지고 고름이 잡힌다(화농). 후기에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눌러도 움푹 패일 정도로 물렁물렁해지고, 완전히 곪으면 고름이 터져 배출된다. 2~3주 후에 흉터나 색소 침착을 남기면서 치유가 되며, 색소 침착은 수개월에 걸쳐 옅어진다. 대부분 전신 증상은 없지만, 큰 종기의 경우에는 발열이나 오한, 몸살과 같은 전신 증상이 동반될 수도 있다.2

 

요즈음 종기나 여드름이라고 말하면 그저 피부에 나는 뾰루지 등과 비슷하게 취급된다. 집에서도 간단히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나와 있으며, 이중 심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피부과를 방문하면 쉽게 치료받고 흉터가 남지 않게 관리까지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문제가 되어 봐야 외관상의 문제인 여드름과 종기로 인해 죽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조선 시대의 왕들까지도 종기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받으며 심지어는 사망하기도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의 의료 기술에 감사할 따름이다.

 

참고 및 인용자료 출처

1.참고:  http://dcollection.snu.ac.kr/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0052438
2.참고: http://www.snu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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