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지의 독서 칼럼] 재즈 시대 속 개츠비의 이상주의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힌 개츠비>를 읽고.

저명한 명문대학을 졸업했으며 인품이 좋고 유머 있다 알려진 제이 개츠비 씨. 그는 엄청난 학력과 짐작조차 못 할 부를 가지고 매일 밤 자신의 저택에서 파티를 연다. 개츠비와 초면인 사람들도 개츠비의 파티에는 한 번씩 가보았을 만큼이나 그의 파티는 유명하지만 정작 손님들은 주최자인 개츠비에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한여름 밤의 꿈처럼 흥청망청하게 노는 것뿐. 덕분에 개츠비를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가 도대체 누구이길래 매일 파티를 열어대는지 의문이 쌓여간다. 마약 밀수업자? 희대의 살인마? 재벌가의 핏줄?

 

커지는 의혹에 무색하게도 사실 개츠비의 정체는 별 볼 일 없는 흔한 어부의 아들이었다. 청년 시절, 그는 지금은 톰 뷰캐넌의 아내가 된 데이지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가난한 개츠비의 집안을 보며 데이지는 그와 결혼할 마음을 접고 톰과 연애를 시작했고, 개츠비는 그녀의 마음을 잡기 위해 범죄까지 저지르며 큰 재산을 모으기로 다짐했다. 개츠비가 매일 밤 파티를 열기 시작한 것도 전부 데이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 있는 데이지였지만 그래도 개츠비는 데이지를 찾은 것에 행복감을 느꼈다. 결국 그는 마지막까지도 데이지가 술에 취해 저지른 교통사고를 변호하다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어찌 보면 한 남자의 바보 같은 순정이라고 느낄 수도 있는 이 이야기는 약 1920~30년대에 미국에서 일어난 찬란한 경제 성장, 재즈 시대를 바탕으로 쓰였다. 재즈 시대는 독일의 항복으로 끝난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열렸는데, 매일 옛 관습은 없어지고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세상이 빠르게 변화되었던 미국 경제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었다. 젊은 사업가들은 술술 벌리는 돈에 열광하여 물질주의와 이상주의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그중 개츠비도 이들과 같이 이상주의에 빠진 한 남성으로 묘사되었다. 데이지와 함께하고 싶다는 그의 기묘한 열정과 사랑의 이상이 개츠비 자신을 완벽에 가까운 '신의 아들'로 묘사되도록 만들었다. 결국 개츠비는 그 욕망 하나만으로 자신이 원했던 목표를 반쯤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학벌, 핏줄, 인품, 재력 등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제이 개츠비'를 보고 동경이나 질투를 하게 만들 정도로 자신을 철저히 변화시켰으니까.

 

한편 그의 이상주의 목표가 어느 정도 실현되었든 간에, 우리는 개츠비가 사랑했던 여성인 데이지도 주목해볼 수 있다. 사실 데이지는 현명하고 자애로운 성격과는 거리가 먼 여자였다. 그녀는 순수했고, 책임감도 없었으며 물질만능주의 사고방식을 가진 속물적인 사람이었다.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이 되는 재즈 시대에서도 이런 여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예쁘지만 멍청하고 사치가 심했다. 실제로도 재즈 시대에선 이 여성들을 칭하는 플래퍼(flapper)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또한 책 속에서도 데이지와 개츠비의 재회 후, 데이지는 오로지 개츠비의 부에만 관심이 있다고 그려졌는데 이는 그녀의 물질주의 사상과 어린아이 같은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 중 하나이다. 곱씹을수록 개츠비의 데이지를 향한 사랑이 굉장히 어이없고 순수했던 것이었다는 걸 체감할 수 있다. 개츠비 자신도 다시 만난 데이지를 보며 짙은 허무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한 남자의 바보같이 열정적이었던 사랑 이야기는 허무하게 끝이 났지만, 당시를 배경으로 한 사회나 개츠비의 이상주의적 사고방식을 보면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개츠비의 장례식 때는 화자이자 개츠비의 말동무인 닉과 개츠비의 어부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참석해주지 않았다. 그 많던 사람들이 매일같이 개츠비의 파티에 참석했음에도 말이다. 화려한 황금기였지만 끝은 쓸쓸한 몰락. 저자는 개츠비의 인생을 재즈 시대에 빗대어 표현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독특한 재즈 시대가 가지고 오는 허무감에서 밀려오는 카타르시스가 <위대한 개츠비>를 더욱 빛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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