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빈의 사회 칼럼] 새로운 이기적 유전자

이기적 유전자로 바라본 저출산 문제

 

'우리 모두는 같은 종류의 자기 복제자, 즉 DNA라고 불리는 분자를 위한 생존 기계다.'1 너무나도 유명한 도서인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속 구절이다. 그는 생명체들이 생존을 위해 애쓰고 자손 번식의 욕구를 품는 것이 단지 본능에 국한한 행동이 아닌, 모두 우리 유전자의 조종이라고 주장했다.2  예를 들어보자면, 동물들이 번식기가 되면 짝짓기를 해 자신의 자손을 많이 남기려고 하는 것이나 그 새끼 중 강하고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자식을 선택해 키우는 것이 전부 유전자의 명령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이성과 판단력이 있지만, 위의 가설에 따르면 생물의 한 종류에 속하는 인간도 유전자의 지배 아래에 있게 된다. 리처드는 심지어 부모의 부성애나 모성애조차 전부 궁극적으로 자손 번식을 위한 유전자의 계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인간에게 유전자의 완전한 지배가 통했더라면 인간이 고등 생물이라는 통념이 무색할 정도로 사회는 무법지대가 될 것이다. 이 부분에서, 리처드는 인간에게만 있는 것들을 언급한다. 바로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인간에게는 생각하는 힘이 존재해 인간이 타 생물과 차별화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생존과 번식을 목표로 하는 '이기적 유전자'에 완전히 잠식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런데 만약, 이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으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본다면 어떻게 해석될까? 세계적으로, 특히 우리나라에 국면 한 사회 문제 중 심각한 것을 꼽아 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저출산 문제를 꼽을 것이다. 먼저 사회적, 경제적 측면으로 저출산 문제의 원인을 해석해 보자면 그 원인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현세대를 한 단어로 압축하자면 곧장 'YOLO'(개별 삶) 라는 말을 사용할 정도로, 현재 세대는 예전보다 출산과 안정적인 가정 꾸리기보다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온전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인생에 집중하기 위해 심리적, 시간적, 그리고 경제적 지출이 큰 출산과 육아는 고려 대상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현재 문제에 대한 사회적 측면에서의 해석이고, 이 '이기적 유전자'의 측면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책 속에서 꾸준히 강조하듯, 인간도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다. 하지만 리처드가 덧붙였듯이, 인간은 상상력과 창의력이라는 방어 기제로 유전자에 반기를 든다. 필자는 바로 이것으로 인해 현 사회가 저출산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사회적 측면과도 접점이 있다. 인간들의 생각하는 힘이 여러 새 직업들과 문화, 그리고 콘텐츠를 생산해 내며 출산에 대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생각에 차이가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인간 개인으로 보자면 자신의 인생에 집중하는 것은 유익하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저출산이 여러 방면으로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선, 출산은 명백한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무조건 출산을 비판하는 것은 양쪽 모두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하지만, 저출산이라는 정상 궤도에서 벗어난 상황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이 명백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육아를 동반한 삶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자유에 집중하는 신세대의 생각은 또 다른 이기적인 성격의 유전자라고 해석해 볼 수 있겠다. 즉, 우리의 내면에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내재하던 생존과 번식의 이기적 유전자를 이긴, 신세대의 이기적 유전자가 생겨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이를 '새로운 이기적 유전자'라고 부르고 싶다.


물론 이 새로운 이기적 유전자는 모두에게 생겨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유전 정보를 지니고 있어 모두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시대가 변하며 추구하는 인생 상이 위와 같은 신세대의 비율이 높아져 예를 든 것뿐, 이는 절대로 일반화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기성세대에도 출산에 반대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고, 신세대에도 출산을 인생의 커다란 행복이자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처럼 '새로운 이기적 유전자'는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한 이기적 유전자보다 상대적이며 개인 차에 따르지만, 이 유전자를 가진 신세대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 새로운 이기적 유전자가 실존하고, 이것이 인간의 문화적 변동과 맞물려 저출산이 심화한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출생부터 내재한 생존의 유전자는 여러 생물 중 이성과 상상력이 있는 인간만이 저항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이기적 유전자'를 타파하기 위해서도 특정한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개인의 내면에서 이 유전자의 단점을 극복할 수 없다면, 적극적인 지원과 복지가 그 조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동물도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동물에게 인간이 가진 것과 같은 고급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없어 유전자의 본능을 극복하지 못했듯이, 이 '새로운 이기적 유전자'에 저항하기 위해서도 더 양질의 복지정책과 혜택이 있지 않고서는 절대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인간의 지성이 유전자의 조종을 이겨냈듯, 인간의 현명한 판단만이 새로운 유전자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및 인용자료 출처

1.인용: 도서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저, 079p
2.참고: 도서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저, 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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