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서의 심리 칼럼] 제정신으로 정신병원 들어가기

데이비드 로젠한의 정신 진단 타당성에 관한 실험

얼마 전 학교에서 진행된 독서 특강에 참여했는데, 선정된 책은 로렌 슬레이터의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였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심리 실험 10가지를 소개하며 실험 결과가 가져온 사회 변화에 관해 설명하는 책인데,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처럼 누구나 들어본 적 있을 법한 심리 실험을 다루고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생소한 심리 실험들 역시 소개되어 있었는데, 그 중 데이비드 로젠한 박사의 실험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로젠한의 실험은 인간의 정신 상태를 진단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또 얼마나 타당한지를 알아보고자 하는 실험이다. '제정신으로 정신병원 들어가기'라는, 다소 과격한 부제가 붙은 이 실험에 호기심이 갔고, 특히 로젠한의 주장과 내 관점이 어긋나는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책을 다 읽은 뒤 이 실험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972년,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였던 데이비드 로젠한은 대학원생, 화가, 주부, 심리학자 등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던 사람들을 모집해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처럼 보이도록 몇 가지 증상을 교육했고, 이들은 각기 다른 정신 병원으로 가서 정신 질환자인 척 하며 입원을 시도해 보았다. 정신과 의사들이 일반인과 정신질환자를 실제로 구분할 수 있을지를 시험함으로써 정신의학에 도전한 것이다. 이들은 입원 뒤에는 모두 정상인처럼 행동했으나 이들이 정상인임을 알아챈 병원은 단 한 곳도 없었다. 1

 

로젠한은 참가자들의 진술과 경험을 정리해서 사이언스 지에 ‘제정신으로 정신병원 들어가기’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그는 '정신과 의사들의 진단체계가 객관적인 기준이나 검증체계 없이 비과학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환자의 말만 믿고 자의적으로 진단해 버린다'며 통렬히 비판했다. 의사가 병원을 찾아온 사람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면서 면담을 한다면 의사의 선입견이 개입하게 되어 왜곡된 진단을 내릴 수 있으며, 정신 의학은 다른 의학 분야와는 달리 정확한 수치화나 측정이 가능한 물질을 토대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신 의학계의 큰 반발을 일으켰지만, 결과적으로는 정신의학의 진단체계 발전을 위한 자극제가 되었다. 정신 진단을 위한 더욱 정교한 방법론을 갖추고 다양한 종류의 심리검사와 행동관찰을 진행하며객관성을 위해 노력한 것이다. 2

 

그러나, 로젠한 박사의 주장은 ‘의사는 환자가 진실을 얘기한다고 믿는다’는 의학 진단의 기본적인 토대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실험 결과만 보고 정신 의학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과 의사들은 알코올이나 마약 등에 의한 중독, 혹은 뇌 손상처럼 객관적이고 확연하게 드러나는 문제가 아닌 한,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환자의 행동을 관찰하고, 환자의 말을 기록하며 그동안 보고되었던 정신질환의 증상과 비교한 내용 등을 종합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는 기본적으로 환자가 진실을 말한다는 가정하에 환자를 대하게 되는데, 이를 놓고 정신의학은 주관적이고 비전문적인 의학 분야라며 비판하는 것은 다소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2010년 우리나라에서는, 남성 9명이 치밀한 계획을 세워 정신질환을 앓는 것처럼 위장해 병역을 면제받았다가 경찰 조사로 들통 나 결국 현역 입대한 사건이 있었다. 한 달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2년간 꾸준히 통원 치료를 받으며 의사를 속였고, 병무청 징병 전담 의사까지 속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로젠한 박사 때보다 훨씬 길고 복잡하고 검증과정을 모두 통과한 것인데, 만일 공익 제보가 없었다면 경찰도 알아챌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3 이는 의사가 환자와의 신뢰 관계를 위해 환자의 말이 사실일 거라 가정하고 있으므로 환자의 거짓말을 구분하기 어려우며, 이를 정신 의학의 진단 시스템 자체의 문제로 보기에는 비약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진단하는 것은 물리적인 몸의 질환처럼 확연히 드러나거나 절대적인 수치로 환산할 수 없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객관적인 검사를 통해 진단을 내릴 수 있도록 정신의학계에서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완전무결한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로젠한 박사의 실험은 정신 의학이 가진 문제점을 공개하며 우리가 언제나 의학을 맹목적으로 신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의학 진단의 기본적인 토대인 의사와 환자의 상호 신뢰 자체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로젠한 박사의 실험 결과만 놓고 정신 의학 자체를 비난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와 환자가 서로 신뢰하며 의사는 환자의 고통을 충분히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인용 및 참고 자료 출처]

1. 인용: 로렌 슬레이터,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에코의 서재, 2005, p.181~189

2. 참고: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7956&cid=59041&categoryId=59041

3. 인용: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2134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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