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지의 독서 칼럼] 계획적 진부화, 성장을 위한 성장으로 나아가는 사회

세르주 라투슈의 <낭비 사회를 넘어서>를 읽고.

요즘 따라 내 스마트폰이 말썽이다. 사용한 지 겨우 1년 남짓 한 것 같은데,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재생할 때 화면이 끊기거나 열지도 않은 앱이 작동하는 일이 왕왕 일어난다.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휴대폰의 수명이 다 되었을 수도 있다며 조만간 AS를 받거나 새 기종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었을 땐 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는데, 침대에 누워 동영상 재생이 드문드문 끊기는 내 스마트폰을 보고 있자니 억울한 마음이 들면서 어떠한 의구심이 생겼다. 왜 내 스마트폰은 이렇게 단기간에 고장이 난 걸까? 4차 산업혁명이라는 눈부신 수준의 발전을 거듭한 기업들이 고작 전자기기의 '수명'을 늘리는 기술을 생활에 도입하지 못할까? 정말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탈성장 이론가 세르주 라투슈가 지은 <낭비 사회를 넘어서>를 읽고 내 의문은 해결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두고 '계획적 진부화'라고 칭하며 이것이 주는 문제점들에 대해 비판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계획적 진부화'란, 인위적으로 공산품의 수명을 단축해 새로운 소비를 자극하기 위해 사용되는 모든 기술을 말한다. 앞서 말한 정의에 따른다면, 그동안 내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전자기기, 의류, 식품, 가구 등 실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제품이 계획적 진부화 속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계획적 진부화의 시작은 어디에서부터였을까. 단순 '진부화'의 시작은 그 역사가 매우 길다. 문자 시대의 초기부터 발견된 여러 유물을 보면 알 수 있듯 우리의 먼 조상에서부터 '유행'이라는 심리적 진부화 시대가 존재했었다. 신석기 시대의 토기 무늬 같은 원시적인 형태부터, 중세 시대의 의복이 주는 유행,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SNS 등을 매개체로 퍼지는 다양한 문화적 유행들까지. 그러나 계획적 진부화는 비교적 최근에서야 그 실태가 드러났다. 19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해 세계 각 나라가 저마다의 황금기를 맞이하고 안정을 찾아갈 때, 바로 그때부터 내구성이 좋고 튼튼한 제품들을 추구하는 절약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고방식의 전환이 주어졌을 것이다. 유행이든 고장이든 다른 이유든 간에 기업들은 끝없는 소비의 길로 사람들을 유혹했고, 그 결과 일회용 제품을 중심으로 점차 불필요한 소비를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를 만들었다.

 

계획적 진부화를 몇몇 부도덕한 기업이 경제적 성장을 위해 사용하는 단순한 수법이라고 치부해선 안 된다. 처음 내가 예로 들었던 내 스마트폰처럼, 이미 계획적 진부화는 자본주의 사회의 전반적 생활양식을 주도하는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플라스틱 용기와 빨대, 비닐봉지 같은 일회용품을 생산하기 위해 석유 등의 지하자원을 아낌없이 사용하고, 집이나 가구, 종이 등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나무들을 베어내고, 크고 부드러운 고기를 얻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크고 지방이 많은 닭이나 소, 돼지 등을 그릇된 방법으로 기르고, 도살하는 것 등 말이다. 계획적 진부화가 계속된다면 환경 문제는 물론이고 사람들은 이 그릇된 사고방식을 더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이와 같은 삶에 스며들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의 저자는 계획적 진부화의 해답은 '탈성장 사회'에 있다고 말한다. 성장을 위한 성장을 멈춰 기술적인 조그만 불편을 인내하고 환경친화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계획적 진부화로 인해 만들어진 제품을 사용하기보단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재활용 가능한 제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환경을 생각하고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내가 오늘 하루 동안이라도 환경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자.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내가 오늘 환경보호를 위해 노력한 일이라고는 기껏해야 다 마신 우유 팩을 씻고 말려 재활용을 했다던가, 양치할 때 양치 컵을 사용한 것 등 사소하고도 흔한 일 몇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조그마한 행동들도 분명 계획적 진부화를 막을 해결책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환경에 도움 되는 일이라고 내가 한 것들은 물론 지구에게 티끌만큼의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지만 이 일들을 실천하게 된 계기를 주목해보면 분명 나름의 가치가 증명될 것이다. 바로 내가 계획적 진부화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된 것, 이 작은 계기가 앞서 말한 일들의 가치를 채워주고도 남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계획적 진부화가 만연한 부패한 자본주의 사회를 바꿀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자 먼저 생각할 것은 '인지하는 것'이다. 환경 보호를 하기에 앞서 왜 우리가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고찰하는 것처럼, 아직 계획적 진부화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 속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계획적 진부화의 존재와 부패한 성장사회를 스스로 알아차려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진부화가 진행되는지도 알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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