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석의 음식 칼럼] 명절 제사 전통인가

명절이라함은 쉬는날이자 멀리살아 못 보던 가족들을 보는 날일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전 민족대명절 중 하나인 추석이 지나갔는데요 명절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명절제사라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게된 까닭은 올해 추석은 코로나로 인해서 움직이지 않는 각자의 집에서 보내는 추석 연휴를 보냈을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을 겪으면서 어쩌면 불합리했던 일에 대해 알릴 수 있을 기회라 생각했고 추석과 설 중간 쯤인 지금 이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명절 차례로 갈등이 빚어지거나 속앓이를 하는 가정이 많을 것입니다. 많은 제사 음식,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柿), 어동육서(魚東肉西), 좌포우혜(左脯右醯), 두동미서(頭東尾西) 등 이런 제사 예절들을 많은 사람은 이것이 조선 시대의 전통이자 허례허식으로 알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조선 시대의 제사와 차례는 이러지  않았습니다.

 

서술한 격몽요결을 보면 [제사를 지낼 땐 사랑하고 공경하면 된다. 가난하면 형편에 어울리게 병이 났다면 컨디션에 맞게 제사를 지내도록 하자]라면 서술되어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남자만 절을 하거나 하지도 않았고 많은 가정에서 딸과 함께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윤회봉사(아들딸이 번갈아 가면서 제사를 맡는 것)부터 외손봉사(딸이 제사를 모두 맡는 것)까지있었다고 합니다. 이때 외선봉사는외손봉사는 딸이 음식만 차리는 것이 아니라 집에 딸밖에 없어 딸이 음식과 절 등 제사의 모든 것을 맡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격몽요결 참고)

 

조선의 대다수의 예절 예의는 중국의 학자 주자가 저술한 책인 주자가례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주자가례는 조선에 그대로 적용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고 심지어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도 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예송논쟁의 발단도 주자가례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갑자기 주자가례에 대해 얘기를 왜 할까요? 이렇게 모순적이고 정확하지 않았지만 조선에서 제일 권위있었던 책에 홍동백서(이하생략)이 적혀있어서일까요? 아니요 조선시대에 권위있었던 모든 예법책에는 홍동백서(이하생략)은 적혀있지 않았고 조선시대 학자 송시열조차 "바다가 동쪽이니 생선인가?"라고 추측만 했다고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현재 제사음식은 대체로 사람들은 다다익선 즉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시는데요 생활예법책으로 사랑받은 상례비요에 따르면 제사상에는 밥, 국(국수), 고기, 꼬치, 생선, 나물. 간장, 젓갈, 김치/제철과일이 올라간다고 되어있는데요 쉽게 설명하면 불고기정식 1인분에 고등어 자반 + 디저트 정도인데요 중요한 점은 이러한 메뉴는 제사상차림입니다. 추석에 하는 차례상같은 경우에는 훨씬 간소하게 한다고 합니다. 집안에 따라서 술 한 잔, 과일 두어개, 송편만 올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위에 제사상 차림 또한 필수가 아니라 저렇게 하면 좋겠다정도이고 정해진 것이 없다고 합니다. 과일도 제철 맛있는 것을 올리면 되었고  음식도 귀하고 좋은 것이면 되었기에 얼음을 올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주자가례 조선왕조실록(예송논쟁)참고)

 

 

요새 제사상이나 차례상에도 변화가 있기는 하다고 합니다 고인(古人)분께서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을 올리기도 하고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올리는 등 심지어는 배달음식을 올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즉 제사상에 치킨이나 피자가 올라가기도 하고 어느 집에는 반드시 수박을 올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결혼하면 여자는 출가외인이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다 하는 문화, 제사나 차례 때 여자가 음식을 하고 남자는 가만히 있다가 음식을 나르고 절만 하는 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죽었을 때 기일이나 명절같이 가족들이 모이는 날 불만이나 갈등이 쌓이는 날이기보다 서로 근황을 물어보고 음식이 남지 않게 먹을만큼의 양만 만들고 다같이 쉬는 날이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