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영의 영화 칼럼 VIII] 사랑에도 Ctrl + Z가 있나요? 'n번째 이별 중'

연애 과정에서 '되돌리기' 기능을 쓸 수 있다면?

 

n번째 이별중 (2018) / 한국 2020 개봉

 

물리학 천재 스틸먼과 자유로운 영혼 데비, 언뜻 상극으로 보이는 둘은 연인 관계였다. 그러나 그와의 연애에서 더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데비는 스틸먼에게 이별을 고하고, 단호하게 차인 스틸먼은 이대로 그녀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일념으로 계획을 세운다. 그 방법은 바로, '타임머신'! 세상과 단절한 채 개발에 매달린 후, 마침내 그는 드디어 과거 회귀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것에 성공하고, 데비와 사귀는 나날 동안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던 모든 날짜로 돌아가 과거를 수정한 뒤 현재로 돌아온다.
 

 

다행히도 데비와 이별하던 날은 새로운 데이트 약속으로 바뀌어 있었고, 스틸먼은 자신이 드디어 해냈다는 생각에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러나 고통은 이제 시작일 뿐, 자신이 조금이라도 실수를 할 때마다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시간을 되돌리고 완벽한 하루를 만들어내는 것에 집착하게 된 스틸먼은 점차 지치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데비도 원인 모를 공허감을 느끼며 자신과 스틸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한다. 둘의 사랑, 과연 어떻게 끝나게 될까? 
 

 

사랑에 되돌리기, 새로 고침이 있다니 애플리케이션을 공개했다면 스틸먼은 일약 스타가 됐을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언제나 실수를 저지르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라면 그 행동을 고치고 싶은 게 당연하니까. 스틸먼도 처음에는 그저 '관계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다' 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도합 몇십 년이 되는 매 순간을 하나하나 자르고 재단하려던 것이 아니었지만 눈을 떠보니 그는 데비보다 70년의 세월을 더 산채로 인생을 전전긍긍 보내고 있었다. 데비 또한 단 한 번도 의견 불합치가 일어난 적 없는 스틸먼과의 연애에 기묘함을 느낀다. 결국 그녀는 스틸먼에게 극심한 우울감을 토로하고, 자신이 데비의 인생을 완전히 망쳤다는 것을 깨달은 스틸먼은 과거로 돌아가 타임머신을 부숴버리고자 한다.

 

'n번째 이별중'은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아니다. "완전함"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인간이 완벽해질 수 있을까? 완벽함을 만들어내면, 인생이 완벽해질까? 불만스러운 순간들을 수정하면 내 인생이 보다 나아질까? 영화에서는 스틸먼과 함께 서서히 '되돌리기'에 중독이 되어가는 친구 에반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개발자 스틸먼의 옆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본 에반은 몰래 기구를 쓰며 자신의 인생을 바꿔가는데,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스틸먼과 달리에반은 상황 자체를 부정하며 그를 방해한다. 우리는 이들을 보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실수는 어느 순간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리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오히려 과거의 일에 얽매여 현재의 할 일, 그리고 바뀌지 않는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 건 현명치 못한 일이다. '수정하기' 기능이란 선물이 아닌 오히려 저주일 것이다. 잘못된 행동을 했다면 털어버리면 된다. 털고 나서 그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성찰하고 반성하며 인생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연휴를 맞아 가벼운 연출을 통해 깊은 여운을 남기는 'n번째 이별중' 을 보는 건 어떨까, 모든 일에 완벽하게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이들의 숨통을 틔워줄 만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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