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소윤의 시사 칼럼] 두 얼굴의 디지털 교도소

디지털 교도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디지털 교도소는 악성범죄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웹사이트로 성범죄와 같은 악성 범죄마저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부당한 현실에 대응하고자 함이 설립 취지다. 그러나 최근 디지털 교도소는 이런 본래적 목적과는 다르게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어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 6월 카톨릭 의대의 채정호 교수는 디지털 교도소에서 성착취물 구매자로 신상이 모두 공개되었다. 그러나 그는 경찰 조사 끝에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자신이 무혐의임이 확인되기 전까지 사이트에 공개된 전화번호로 많은 욕설과 협박 문자 등에 시달려야 했다며 그동안의 시간을 죽음과도 같았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단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최근 고려대학교의 한 학생 또한 지인을 음란물과 함께 합성했다는 혐의에 대해 결백을 호소하다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고 말았다.

 

성범죄라는 것은 엄격하게 응징해야 할 범죄 중 하나이다. 또한 사회에서 성범죄자라는 프레임이 쓰이는 순간 얻는 피해가 상당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범죄 혐의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여론과 공식적인 의논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 교도소는 오직 여론에만 의존하여 운영되고 있다. 단지 익명의 제보에 의해 전문성 없는 소수의 운영진들은 제보된 사람을 성범죄자로 인정하고 아무런 절차도 없이 신상을 공개한다. 과연 이것이 합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엄밀히 따져보자면 이러한 신상 공개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 여기서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혐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완전히 입증되기 전까지는 해당 혐의자가 무죄라고 판단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르면 그 어떤 억울한 피해자도 생겨나서는 안 된다. 범죄자를 잡기 위해 희생자가 생겨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디지털 교도소는 한 명의 범죄자를 밝히기 위해 열 명의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어도 괜찮다는 입장을 기본으로 취하고 있다.  이를 보았을 때 디지털 교도소가 과연 우리 사회에서 순기능을 담당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디지털 교도소를 보면 ‘다크나이트’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이 영화에서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으로 위장해 고담시티를 지키는 인물로 나온다. 그를 얼핏 보아서는 용감하고 대범한 도시 영웅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는 영웅이기 전 굉장히 신중한 사람이다. 자신이 배트맨으로 활동하면서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힘썼으며 만에 하나 피해가 발생했더라면 자신의 기업을 이용해 그 피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해주었다. 그런데 디지털 교도소의 모습은 어떠한가? 혹시 배트맨을 어설프게 따라하는 자경단원의 모습과 유사하지는 않은가?

 

물론 우리는 디지털 교도소의 문제에 대해서만 질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성범죄에 대해서 별도의 사회적 심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현실을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피해자의 고통과 아픔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최근 아동 및 청소년 성착취물 사이트 ‘월컴투비디오’를 운영했던 손정우는 고작 1년 6개월이라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앞으로 성범죄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심각하고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특히 새로운 범죄의 형태인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는 더 많은 피해자들이 광범위한 피해를 입게 할 것이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처럼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해를 입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형사사법체계를 새롭게 정비하고 신상공개 기준을 더 강화하는 등 무고한 시민들이 다치지 않을 수 있도록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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