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현의 시사 칼럼] 코로나 바이러스와 동물 시국 선언

201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감염병 예방 행동을 위한 연구개발 청사진(R&D Blueprint)’의 연구대상 질병 목록 끝에 미지의 감염병 '질병 X'를 추가했다. 그리고 2020년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가 바로 미지의 질병 X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미 질병 X의 시대가 우리 앞에 도래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 등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일상을 일컫는 단어들이 생겨나고 있고, 더 이상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생각해보면, 에볼라바이러스나 메르스 등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감염병들을 겪어 왔다. 그런데 WHO는 왜 굳이 2018년에 미지의 질병 X라는 이름을 새로 만들어야 했을까? 왜 많은 과학자들은 머지않아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감염병이 또다시 퍼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걸까? '코로나19'라고 하면 '박쥐에서 시작된 질병' 정도로만 생각했던 나는 8월에 열린 '동물 시국 선언'을 보고 지금의 코로나 시국과 동물권 문제를 연결짓게 되었다.

 

'절멸-질병X시대, 동물 시국 선언'은 창작 집단 '이야기와 동물과 시'의 활동가들이 8월 20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진행한 퍼포먼스이다.  퍼포먼스에 참가한 예술인들은 뱀, 돼지, 멧돼지 등 각자 다른 동물로 변장한 상태로 사전에 작성한 선언문을 낭독하고는 그 자리에 쓰러지며 '절멸'을 선언했다. 이들은 각각 맡은 동물들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경고이자 유언 열 가지를 남겼다. 이 '유언'은 동물 서식지 파괴를 중단할 것, 탈성장, 탈개발, 탈육식을 시도할 것, 기후위기를 진짜 위기로 대할 것, 도굴을 삼갈 것 등이었다.  

 

뉴스로 '동물 시국 선언'을 처음 접하고, 우리에게 고통받는 동물들의 현실을 알리고 경각심을 주려는 퍼포먼스의 목적은 이해가 갔지만, 왜 이 퍼포먼스의 이름에 '질병X시대'가 붙었는지는 계속 궁금했다.  '질병 X'라는 용어는 이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미지의 질병 X와 현재의 코로나19, 그리고 동물 학대 문제가 어떤 연관이 있다는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인이자 숙주로 지목되었던 박쥐와 천산갑 등의 동물로 분한 예술가들의 시국 선언을 들으며 많은 것을 깨닫고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니파,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인간에게 다가간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나에게로 왔다."1

"니파 바이러스 때는 110만 마리의 돼지가 사살되었다. 사스 때는 사향고양이를 끓는 물에 던졌고, 코로나 때는 밍크와 천산갑을 죽였다.” 1

박쥐로서 선언문을 낭독한 정혜윤 PD의 말이다.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박쥐로부터 시작되었고, 메르스는 낙타 때문에 발생한 질병이라고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박쥐와 낙타가 우리에게 전염병을 옮긴 것이 아니다. 자원 개발과 동물 가죽 확보, 식량 생산을 목적으로 수많은 야생 동물들의 생태계를 파괴해 온 것은 바로 인간이다.

 

실제로, UN에서는 새로 창궐하는 전염병의 75%, 이미 알려진 전염병의 60%가 동물에서 유래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지난 7월 하버드 공중보건대학 연구진은 코로나19의 원인을 ‘동물 서식지 파괴 및 야생 동물 거래’로 규정했으며, 세계보건기구 연구팀도 질병X를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산업 활동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또는 ‘기후 변화’를 꼽았다고 한다.2  2000년대 들어 메르스, 사스, 코로나 등 치명적인 인수공통전염병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야생동물 생태계 파괴 문제가 가속화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숙주로 지목된 동물을 혐오하고 사살하는 일을 반복한다. 코로나 시국에 동물 산업의 미래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주최 측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때이다.

 

참고 및 인용자료 출처

1.인용:  한겨레신문, “이대로는 모두 절멸” 동물들의 코로나 시국선언, 2020.08.21
2.인용: 매일경제, 코로나19와 야생 동물-“감염병이 우리 동물 때문이라고요?”, 2020.09.03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