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있어요

심화되는 한(恨)의 정서, 그리고 부모의 낡음

21세기 대한민국, 우울감에 빠진 우리

 

한국인의 대표적인 정서는 흔히 ‘한(恨)의 정서’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한(恨)’이란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외세의 침략이 잦았고 일제강점기, 군사 독재, 무리한 산업화·도시화 등 암울하고 억압받는 현실 속에 살아왔다. 이는 당시 시대 상황을 비판한 「태평천하」, 「원미동 사람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의 작품들과 「진달래꽃」, 「가시리」, 「서경별곡」 등 ‘이별의 정한’을 주제로 다룬 작품들에서 잘 드러난다. 이러한 정서는 한국 문학의 역사에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1세기가 된 지금, 한국인의 한(恨)의 정서는 점점 심화되어 가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출산율은 거의 최저이며, 자살률은 OECD에 속한 국가의 평균의 2배를 이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 2017년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진료받은 환자가 전년보다 6% 증가해 170만 명을 넘어섰으며, 특히 우울증이 51만 명으로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과거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먹고 살기 쉬워진 요즘에도, 한국인의 한(恨)의 정서는 여전하다. 무엇 때문일까? 만약 이를 단순히 젊은이들만의 탓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대는 ‘꼰대’다.

 

본 필자는 앞서 제목에서부터 이러한 한(恨)의 정서의 심화의 원인을 부모의 낡음이라고 제시했다. 다소 표현이 지나치지만, 가치관의 낡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것은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자존감이 낮으며 지나친 우울감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무리 멋진 친구라도 자존감이 낮은 경우가 상당하다. 밖에서는 밝게 다니고, 집에 들어오면 우울해하는 그들의 이면성을 부모들은 모르는 것인가, 모른척하는 것인가.

 

많은 심리학자들은 한 사람의 성격을 결정짓는 데에는 어린 시절 가정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특히 부모에게 얼마나 사랑받았는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부모들은 자식들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 아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

 

그들이 살아온 환경과 지금의 시대는 많이 변했다. 한국인의 정서는 점차 우울해져 한(恨)의 정서가 심화되고 있고, 우울감과 공허함을 달래주는 글귀가 유행이며, 이 또한 마케팅으로 활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글귀들이 상업적인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잔인하고 거북한 일이지만, 덕분에 젊은 세대 사람들은 사람의 심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다. 본인이 경험해봤거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기에 더욱 쉬운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들은 어떨까? 보수적인 시대 속에서 살던 이들이 변화한 시대를 마주하는 자세는 어떻겠는가? 당연하게도 쉽게 공감해 주고, 달래주고, 젊은 세대의 관점으로 대해주기는 참 어려울 것이다.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게 당연하지 않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도 부모가 처음이니까.”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딜레마가 생기기 때문이다. “비록 엄마, 아빠가 부모가 처음이라고 해도, 누군가의 딸과 아들이었는데, 그때 자신을 생각하면서 날 대해 줄 수는 없는 걸까?”

 

부모들은 책이나 TV 프로그램에서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을 배우고, 결심한다. 하지만 정작 뒤돌아서면 내면에 실재하는 자식에 대한 욕심, 기대, 열망을 버리지 못한다. 때문에 그것들이 부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앞서 부모들의 가치관을 낡았다고 표현했지만, 그들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그리고 존경한다. 부모들은 너무 큰 온도차의 시대를 겪어왔고, 겪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기에 지근 이 시대가 혼란스러울 것이다. 너무 빠른 변화가 그들에게 주어졌고, 그 변화에 그들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었을 것이다. 시대는 너무 급성장해버렸고 그들은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대를 탓하기엔 모두가 공평하다. 모두가 시대의 변화를 탓한다면 무엇이 나아지겠는가? 적어도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지난날들의 한국 교육이 잘못해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교육의 시초는 부모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는, 자식을 감싸 안아야 한다. 아이들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며, 때로는 좋은 조언도 해주며 자식을 어르고 달래야 한다. 아이들이 아무리 부모들이 원하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 해도, 마음이 무너져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이들은 사랑받아야 할 존재들이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으며, 사랑받을 가치 또한 있다. 부모가 그들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주길 바란다. 너무 부모 탓만 하진 않았나 하는 걱정이 들지만, 이 시대의 부모들이 자신의 욕심으로 자식을 괴롭히기보다 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주는 부모가 되길 바라면서. 꺼져 가는 촛불과 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어루만져 주지 못하는 현 시대의 어른들을 규탄하며, 글을 맺는다.

 

또 아버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에베소서 6:4)

 

어버이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을 격분하게 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의기를 꺾지 않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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