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도현의 정치/시사 칼럼 10] 누군가 지켜보고있다

 

 

“인쇄술의 발명으로 여론조작이 쉬워졌고, 영화와 라디오는 이것을 더욱 발전시켰으며, 텔레비전이 발전하고 기계가 송수신을 동시에 가능케 해줌에 따라 사생활은 끝났다.” 소설 「1984」의 저자인 조지 오웰(혹은 에릭 아서 블레어)은 소설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정보통신기술이 나날이 발전했다. 그리고 그 발전에 발맞추어 계속해서 벌어지는 정보의 격차는 지식의 격차, 권력의 격차를 일으켰다.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감시와 통제는 권력 관계를 만들어냈고, 우리의 사생활은 철저히 침해받았다. 결국, 정보사회는 감시사회가 되었고, 우리 시대의 파놉티콘이 형성되었다.

 

파놉티콘(panopticon)은 본래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인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교도소의 한 형태를 의미했다. 파놉티콘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의미하는 ‘pan’과 ‘보다’를 의미하는 ‘opticon’을 합성하여 만든 단어이다. 파놉티콘은 흔히 ‘원형 감옥’ 또는 ‘일망 감시시설’이라고도 불린다. 중앙의 감시탑을 중심으로 수감자들의 독방을 원형으로 둘러싸듯 배치하여 최소한의 비용과 관리만을 취하도록 감시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구조이다. 감시자들이 교도소의 중심에 위치하여 외곽에 둘러싸여 있는 죄수들을 감시하지만, 죄수들은 결코 자신의 감시 여부를 알 수 없다. ‘역광선’의 효과로 인해 중앙의 탑에 있을 감시자의 존재 여부를 판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희진(2012). 미셸 푸코의 파놉티시즘에서 인식, 권력, 윤리의 관계. 의철학연구(한국의철학회), 13, 75-104. 참조)

 

철학자 미셸 푸코는 벤담의 파놉티콘 개념을 단순한 건축 구조에서 철학의 한 개념으로 확장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확장한 파놉티콘의 개념을 통해 권력과 인식(지식)의 상관관계를 규명했다. 먼저, 그는 ‘사회적 관계 속에 분산되어있는 것’으로 권력을 재정의했다. ‘소유’되는 권력이라는 기존의 관점에서 탈피하여 ‘행사’되는 권력이라는 관점을 피력한 것이다. 그리고 그 권력은 지식을 통해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생각은 푸코에 의해 계승된다. 그는 ‘권력이 지식(인식)을 창출한다.’라고 생각했는데, 권력은 인식(지식)이 전제하는 원인이며 반대로 권력은 자신이 실현되기 위해 반드시 지식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푸코는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파놉티콘에 적용하여 구체화했다. 역광선의 효과로 인해 죄수는 간수를 언제나 인식할 수 없지만, 간수는 언제라도 죄수를 인식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인식(지식)의 격차는 결국 권력의 격차로 귀결되었다. 즉, 권력과 인식(지식)은 서로의 존재 이유(정당화하는 순환적 관계)가 되었고,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그 상관관계가 더욱 깊어졌다고 정리할 수 있다. (박수영(2014). 이청준 소설 잔인한 도시에 나타난 권력의 이중성; 미셸 푸코의 권력이론을 중심으로. 한국현대문학연구(한국현대문학회), 43, 439-462. /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감시와 처벌; 형벌의 역사. 나남출판(1994). 58 참조.)

 

앞선 논의에서 감시사회로서의 정보사회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리 사회의 한계를 극복한 ‘우리 시대의 유토피아’는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감시와 통제의 사회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세기의 러다이트운동을 반복함으로써 이 유토피아를 달성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현존하는 정보기술과 그 기술을 통한 혁신, 성장, 발전 등 우리 사회의 성취를 파괴하고 없앨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유토피아를 이룩할 수 있을까.

 

먼저, 감시의 헌법상 한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현재의 규제를 강화하고,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통신 등 사생활 보호에 대한 기본권을 더욱 강력히 보장해야 한다. 두 번째로, 강화된 기본권 침해 기준에 의해 침해 가부의 여부를 결정하는 별도의 심사기구를 마련해야 한다.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한 기존의 방침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국가기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권력에 의한 허가와 집행에서 벗어나, 진정한 심의와 논의를 거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민 자체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국가는 사회의 혼란과 불안을 통치에 이용한다. 스스로 만들어낸 불확실성을 ‘감시와 통제’를 통해 스스로 해소함으로써 국민 위에 군림한다. 그 과정에서 국민은 감시사회의 속박에 매인다. 따라서 국민 스스로 자신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흥신소’로 전락한 국가기관에 대응하기 위해서, 정보공개청구제도, 공개질의, 헌법소원 등 헌법과 법률이 허락한 국민의 무기를 통해 대처해야 한다. (권기옥(2016). 유비쿼터스 감시에 대한 비판적 분석: 감시의 사회적 배경과 작동원리를 중심으로.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보(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회), 33, 79-106 / 대한민국 법제처(2010). 대한민국 헌법 주석서, 1, 590-628 참조.)

 

지금까지, 현대 사회의 문제 상황인 파놉티콘의 개념부터 유토피아의 도래를 위한 여러 실현 방안까지 살펴보았다. 이러한 논의의 끝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우리의 노력을 통해 현재의 문제 상황을 타파하고 유토피아를 이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을 통해 헌법을 개정하고, 하위 법령과 시행세칙을 제정하고, 국민 스스로 인식을 바꿈으로써 ‘감시사회로서의 정보사회’라는 오명을 벗고, 온전한 자유를 향유하며 삶을 지속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며 이 글을 맺는다.

 

 

 

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