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있어요

문학에 정답이 있을까

문학교육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누구나 이런 시험문제를 만날 것이다. '이 시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 '저자가 이 시를 통해 비판하는 현실은?' 그리고 한번쯤 내가 생각한 정답과 실제 정답이 다른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무리 생각해도 실제 정답 외의 다른 선지도 답이 될 수 있지 않나 싶어서 선생님께 질문을 드렸지만 풀리지 않은 경험이 있다. 왜 문학시험에 정답이 하나여야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지만 시험이라는 현실에 적응하기위해 그 고민을 잠시 미뤄둔채 시험공부에 매달렸다. 그러던 중 고3이 되어 롤랑 바르트를 만났고, 그의 저작을 읽으며 우리 문학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저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

우리는 흔히 저자를 문학작품에 의미를 불어넣는 창조자로 여긴다. 그러다보니 문학시험 역시 작품 속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문제가 출제된다. 그러나 프랑스의 기호학자인 롤랑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 이란 저작을 통해 저자는 창조자가 아니라 언어라는 사전에서 단어를 인용하는 필사자에 불과하며, 텍스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존재는 독자라고 말한다. 저자의 죽음을 통해 독자가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하나의 저작물을 읽고 수많은 저마다의 해석을 하는 독자가 태어난다. 어떤 해석은 옳고 어떤 해석은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텍스트를 쓰면서 저자는 죽고 독자만 남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문학작품 읽기 동아리를 하면서 같은 작품을 읽고 친구들마다 다른 해석을 하는 모습을 경험했다.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연한 모습이었다.

 

저자의 의도를 묻는 문학시험은 타당할까?

국어교육학 논문을 찾아봤다. 아주대 국어국문학과 조하연 교수가 쓴 '문학교육 평가의 쟁점과 과제' (국어교육학회 제58회 전국학술대회 자료집) 에서는 감상자의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문학교육의 목적과 객관화된 수치로 줄을 세우는 평가의 목적이 서로 모순된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소설가 김영하 작가는 '알쓸신잡' 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좀더 구체적으로 자기 생각을 밝혔다.
 

 

"다른게 정상이예요. 똑같은 작품을 읽어도 천 명이 읽으면 감상이 천 개가 나와야돼요. 그런 다양성의 세계를 받아들이기 위해 문학이 존재하는건데 한국의 국어교육은 정답은 정해져있고 너네들은 그 정답을 빨리 찾아내야 똑똑한 학생이라고 하는거죠. 그런데 그럴 수는 없어요."(출처 : JTBC 알쓸신잡 시즌1, 2017.7.8 방송분 영상에서 김영하 소설가의 발언을 노혜원 녹취, https://youtu.be/D1FxsoV_nts)


배우는 문학이 아니라 즐기는 문학이었으면

문학작품을 저자중심으로 읽고 하나의 답을 찾는 평가방식은 문학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프랑스에서는 작품을 읽고 에세이를 쓰게 하는 시험방식을 쓴다고 한다. 우리도 최소한 학교시험에서는 이런 방식이 도입되면 좋을 것 같다. 나는 평소에 시나 소설을 읽고 즐겨하던 학생들까지도 문학에 흥미를 잃는 모습을 보면서 문학교육의 문제점을 느꼈다. 문학을 '배운다'고 한다. 문학은 즐기는 것이 아닐까? 문학을 자유롭게 감상하고 각자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토론하는 수업방식과 에세이 평가방식을 도입한다면 더 많은 친구들이 문학과 친해질 것 같다. 학교수업을 통해 문학이라는 좋은 문화를 즐기는 청소년들이 좀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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