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의 문화 칼럼] 지나친 한자어 사용, 이대로 괜찮은가?

유튜브에서 게임 영상을 보던 중이었다. 시청자 중 한 명이 게임 내내 외래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후원을 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한글날에 웃자고 내건 미션이었겠지만 문득 진지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자어는 중국의 글자를 빌려 만든 단어인데, 한자어를 외래어로 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루라도, 아니 한 시간만이라도 한자어를 사용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을까? 매우 어려울 것이다. 삶 속에서 사용하는 기본 회화마저도 대부분이 한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안녕’은 편안할 안安과 편안할 녕寧의 조합이고, ‘감사’는 느낄 감感과 사례할 사謝의 조합이다. 뿐만이 아니다. ‘미안’은 아닐 미未와 ‘편안할 안安의, ‘죄송’은 허물 죄罪와 두려울 송悚의 조합이다. 이름의 경우에도 순우리말 이름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드물다. 제목에서부터 한자어의 지나친 사용을 경계하는 이 길지 않은 글에서조차 불필요한 한자어가 많이 사용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말의 70% 이상이 한자어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다면 중국의 글자인 한자로 이루어진 단어들이 어떻게 우리말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일까? 한반도에서 한자를 사용한 역사를 살펴보자면 삼한 때 중국에서 들여온 동전에 한자가 새겨져 있기는 했으나 삼한에서 한자를 사용했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실제로 한자를 들여와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삼국 시대 때부터이다. 이후 한자는 1443년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에도 식자층의 표기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근대에 이르러 서구로부터 수용한 문물과 사상의 내용을 옮겨 적는 과정에서 청과 일본 양쪽에서 한자어를 수용하며 한자어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참고 :  천재교육 동아시아사 교과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말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한자어는 학술용어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교과서에도 높은 빈도로 등장한다. 그런데 상당수의 한자어 용어는 그 뜻을 찾아보지 않으면 정확한 의미를 추측하여 이해하기 어렵다. 나의 경우에는 한국지리 과목을 공부하며 ‘하안단구’라는 용어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의미가 전혀 와닿지 않아 ‘공부할 맛’이 도통 나지 않았다. 그러나 강 하河 낭떠러지 안岸 층계 단段 언덕 구丘라는 한자와 그 뜻을 알았다면 ‘강가 낭떠러지에 있는 계단 모양의 언덕’이라는 의미를 훨씬 더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20년 넘게 학생들에게 지리 과목을 가르쳐온 이기상 강사는 학생들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교과목에서 사용되는 과도한 한자 용어를 이해하지 못해서이며, 이것이 학생들 간 성적 양극화로까지 이어지는 원인이 된다는 견해를 강의 중 여러 차례 밝히며 이러한 실태의 개선을 촉구한 바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한자어와 이별할 수는 없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결재決裁와 결제決濟, 중개仲介와 중계中繼, 타개打開와 타계他界 등 헷갈리는 한자어를 자주 마주치게 된다. 경제 분야의 경우 사전을 찾아보지 않으면 의미를 짐작조차 하기 힘든 변제辨濟, 재무제표財務諸表, 경상수지經常收支, 대차대조표貸借對照表 등의 용어가 난무하기도 한다. 법 분야의 경우 법조계에서의 한자어 남용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하였다. 송희복 진주교대 국어교육과 교수에 따르면 헌법에서조차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하나하나 늘어놓지 않는다고 해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쯤으로 쉽게 고칠 수 있는 문장이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이유로 경시되지 않는다.’라는 어려운 문장으로 표현되고 있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표의문자인 한자는 짧은 단어로도 의미전달이 가능하고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또 혹자는 이미 널리 쓰이는 한자어를 굳이 우리말로 바꿔 혼동을 빚을 필요가 있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자어의 남용이 언어적 장벽을 쌓게 되면 일종의 정보격차가 발생하여 사회 문제에 무관심해지는 사람들도 생기게 될 것이다. “언어의 독점은 권력의 독점을 낳는다”라는 미셸 푸코의 경고를 생각해본다면, 미래에는 한자어가 우리말을 거의 잠식하여 조선 초기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 한문을 모르는 백성들이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었던 상황이 다시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공기관마저도 한자어를 오남용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데, 팽철호 국민대학교 교수는 “순우리말이 먼저이고, 그것이 부족할 때 한자의 힘을 빌리고, 그래도 안 될 때 외래어를 끌어오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다. 그것이 민족적 자긍심을 지키는 일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자어의 남용을 막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에 혼선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점진적으로 한자어를 순우리말로 순화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의 역할은 한자어 남용 현상을 비판하여 개선을 촉구하고 순화된 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론 스스로가 불필요한 한자어를 지나치게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는 것 또한 필요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과서에 낯선 한자어 용어에 대한 한자 설명을 보충하고 정규교육과정에 한자 교육을 강화하는 등의 교육 차원에서의 정책도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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