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종백의 축구 르네상스] 축구 사용 설명서② - 명백한 득점 기회의 저지(DOGSO)

명백한 득점 기회의 저지(DOGSO, Denial of an Obious Goal-Scoring Opportunity)와 유망한 득점 기회의 저지(SPA, Stopping a Promising Attack)

'축구를 그냥 22명이 공 굴러다니는 거 따라 뛰다가 골네트 몇 번 흔들리면 누가 이기고 지는지 결정나는 스포츠 정도로 보지 말고 전문적으로 자세하게 보는 건 어떨까?'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류축르]의 『축구 사용 설명서』입니다.

 

토너먼트 경기를 보는 데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어웨이 골(Away Goal Rule)'을 논한게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교복 입고 보내는 마지막 해의 한 가운데에 있으니 정말이지 시간이 조여오기는 하더군요.

 

거두절미하고 오늘의 주제입니다. 흔히 '독소(DOGSO, Denial of an Obious Goal-Scoring Opportunity / 이하. DOGSO)'라고 하죠. '명백한 득점 기회의 저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DOGSO란?

네 개의 영국 내 축구 협회(The FA, Scottish FA, FA of Wales, Irish FA)가 설립하고 FIFA(국제축구연맹)이 참여한 국제 축구 평의회(The IFAB / 이하. IFAB)는 경기 규칙서(Laws of the Game) 제12조를 통해 DOGSO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득점 또는 명백한 득점 기회의 저지

선수가  핸드볼 반칙으로 상대팀의 득점 또는 명백한 득점 기회를 저지했을 때에는 반칙이 어디에서 일어났는지에 상관없이 그 선수는 퇴장을 당한다.

선수가 자신의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상대 선수의 명백한 득점 기회를 저지하는 반칙을 하여 주심이 페널티킥을 선언했을 경우, 그 반칙이 볼을 플레이하려는 의도였다면 반칙한 선수에게 경고가 주어진다.

출전 선수, 퇴장당한 선수, 교체 대기 선수 또는 교체 아웃된 선수가 주심의 허락 없이 필드에 들어와 플레이를 방해하거나 상대 선수를 방해함으로써 상대팀의 득점 또는 명백한 득점 기회를 저지하는 것은 퇴장성 반칙이다.

다음 조건들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 
반칙과 골문 사이의 거리
전체적인 플레이 방향
볼의 컨트롤을 유지하거나 획득할 가능성
수비수들의 위치와 숫자

 

다시 말해 DOGSO는 공격수의 명백한 득점 기회를 파울성 반칙으로 저지하는 즉시 수비수는 해당 반칙의 위치와 상관없이 퇴장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 '명백한 득점 기회의 저지'는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 것일까요? 위에 첨부해둔 것과 같이 IFAB은 네 가지 조건을 내세워 모두 충족시키는 경우에 한해 DOGSO 판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자, 지금부터 DOGSO의 조건에 대해 굉장히 상세한(a.k.a.중구난방의 두서 없는)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세 줄 이상 읽는게 버겁다거나 글만 봐도 머리가 다 띵해오신다 하는 분은 한문단 건너 뛰고 세줄 요약을 참고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진짜 길고 정신 없을껍니다. 물론 머리에서 상황이 막 떠오르는 미친 가정은 보실 수 있겠지만요. 잘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반칙과 골문 사이의 거리'입니다. 명백한 득점 기회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반칙이 일어난 지점은 상대팀 골문과 가까워야 할 것입니다. 물론 예외적인 사례도 존재하겠지만 우리 팀 페널티 에이리어 근처에서 일어난 반칙을 명백한 득점 기회의 저지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얼마나 있을까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 내용과 연관된 맥락에서 '전체적인 플레이의 방향' 역시 상당히 중요하게 고려됩니다. 단편적인 예로 첫 번째 조건인 '반칙과 골문 사이의 거리'가 충분히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공격팀의 플레이 방향이 공격 숫자를 늘려 확실한 공격을 이어나가겠다는 등의 이유로 공격 전개를 지연하여 골문을 등지게 된다면 이는 공격수의 의도가 다분히 반영된 플레이로 간주될 것입니다. 공격수의 의도가 반영된 플레이니 이러한 상황에서 수비팀 반칙 행위가 '명백한' 득점 기회를 '명백히' 저지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와 더불어 '볼의 컨트롤을 유지하거나 획득할 가능성'도 위 두 조건 못지않게 중요시됩니다. 이 내용은 간단히 '공격수 몸에 볼이 얼마나 붙어 있었는가?' 정도로 확인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누가 봐도 큰 이견이 없는 한 공격수가 볼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상황에서야 DOGSO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격수와 수비수 사이에서 공의 소유가 애매할 때 심판이 DOGSO 판정을 내린다면 수비수 입장에서는 억울하기에 짝이 없겠죠?

마지막은 '수비수들의 위치와 숫자'입니다. 공격팀이 빠른 역습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시다. 편한 이해를 위해 공격수는 골문과 가까운 오른쪽으로 파고드는데 수비수는 왼쪽 한참 구석에, 공격수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왜인지는 모릅니다. 하나 남은 수비수가 그 구석에 하여튼 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수비수가 공격수 커버를 정상적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요? 역습 과정에서 하프라인을 넘어온 공격수가 정상적인 플레이를 이어 나간다면 통계적으로 3~4초 만에 상대편 골문 앞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이 짧은 찰나에 수비수가 정상적인 클리어링을 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겠죠. 사실상 공격수는 골키퍼와 1:1 상황, 다시 말해 명백한 득점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세줄 요약하겠습니다. 규칙서라는 틀에서 벗어나 경기규칙에 입문하는 팬들이 이해하게 쉽게 바꿔 설명드리겠습니다. 팬심 싹 빼고 라이브로 경기를 보는데 "아 이거 되겠다", "그대로 계속 뛰어라", "좋다 끌고 가라", "저 수비는 저기서 뭐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그 짧은 순간에 여러분의 뇌리를 스친다면 반은 된 것이고 수비팀 선수가 반칙 하나 딱 해주면 비로소 DOGSO 판정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예외 사례도 있습니다. 만약 선수가 자신의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상대 선수의 명백한 득점 기회를 저지하는 반칙을 하여 주심이 페널티킥을 선언했다면, 그 반칙이 볼을 플레이하려는 의도의 일환이었다는 전제 하에 반칙한 선수에게는 퇴장이 아닌 경고가 주어집니다. 이를 규칙서 외의 말로 다시 해석해보겠습니다. DOGSO 판정으로 퇴장 조치를 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주심의 페널티킥 선언이 공격팀으로 하여금 득점과 직접 연결할 수 있는 경기 내 최대의 보상인 만큼 수비수를 퇴장시키기까지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파울을 범한 선수는 퇴장을 '경고 하나 + 페널티킥 헌납'과 맞바꾼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 그럼 SPA란?

이번에는 DOGSO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유망한 득점 기회의 저지', 바로 스파(SPA, Stopping a Promising Attack / 이하. SPA)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DOGSO가 주어진 네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 것이라면 SPA는 그중 한 가지 조건이라도 빠지게 되었을 때 성립됩니다. DOGSO의 국문 표현이 '명백한 득점 기회의 저지'인 것에 반해 SPA의 국문 표현이 '유망한 득점 기회의 저지'인 것이 바로 명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공격 맥락에 대한 반칙을 처벌하는 판정으로 해석되는 것이죠.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IFAB이 발행한 경기 규칙서는 제12조 '파울과 불법 행위'에서 '득점 또는 명백한 득점 기회의 저지'라는 이름으로 서두에서 제시한 DOGSO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DOGSO는 경기 규칙서 상에 네 조건과 함께 정확히 명시되어 있다는 것이죠. 한편 SPA는 경기 규칙서에 언급된 바가 없습니다. 그저 현직 심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교육 등을 통해 DOGSO의 네 조건 중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를 '명백한'에 조금 못 미치는 '유망한'으로 치부하여 SPA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말입니다.

 

SPA가 DOGSO에 비해 약한 처벌을 내린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지니기는 하지만 결국 공격수의 '명백한' 혹은 '유망한' 공격 기회를 보장하여 박진감 넘치는 공격 축구의 재미를 극대화 하는데에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듯 합니다.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남녀노소의 사람들이 축구를 즐기고 있고 그 경기의 규칙은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부터 외딴 마을 어린이들의 동네 축구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똑같이 적용됩니다.

 

IFAB의 경기 규칙서는 서두에서 축구를 지구 최고의 스포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축구는 그 경기규칙의 고결함과 함께 선수와 심판, 지도자는 물론, 팬과 행정가 등 모든 축구 가족에게 매력적이고 즐거운 존재여야 합니다.  눈이 즐거우면 일단 그만이겠지만 좀 더 지적인 사고를 통하여 축구를 단순한 스포츠 엔터테이먼트(sports entertainment) 이상의 수준으로 사랑하는 것을 어떨까요? 경기 규칙서를 공부하고 예시를 떠올리고 경기장에서 규칙서와 생생한 장면을 연관시키다 보면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분명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FIFA의 슬로건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의 넓고 깊은 축구 지식 함양을 기대하며 두번째 [류축르]의 『축구 사용 설명서』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For the Game, For the World.'

 

 

*IFAB이 개정하여 발표하고 대한축구협회(KFA)가 발행한 [2019/20 경기규칙(Laws of the Game)]의 국문판은 KFA 자료실(www.kfa.or.kr/kfa/data_room.php?act=rule)에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바쁜 와중에도 비디오 분석과 검토를 함께해주신 호남대학교 축구학과 이승준 님에게 각별한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 사진 제공 : (사)한국프로축구연맹

 

[류종백의 축구 르네상스]는 경기와 관련된 내용은 물론 축구계의 트렌드를 알기 쉽게 읽어주는 축구 전문 칼럼입니다.

글솜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센스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발전하기 위해 저자세로 배워나가고자 합니다. 읽으면서 불편하셨던 부분이나 잘못된 내용, 다음 주제 추천 등을 메일(vamos_2002@daum.net)로 주시면 적극적으로 반영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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