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빈의 영화 칼럼] 봉구는 배달 중

요즈음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여러 가지 모양의 짐을 들고 이동하시는 노인분들이 많이 계신다. 다름이 아닌 실버 택배원들이시다. 교통비가 무료인 65세 이상 노인분들께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물건을 전달해주는 일을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보게 된 단편영화 중 새로 생겨난 이 문화를 소재로 하여 현대 사회를 유쾌하고도 감동적으로 그려낸 영화를 보았는데, 바로 <봉구는 배달 중>이다. 사회적 약자들 사이에 가슴 따뜻한 유대를 보여주고 현대인들의 잘못된 생각을 꼬집어주는 이 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봉구는 배달 중>은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두 계층, 노인과 어린이 사이에 일어나는 유대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 속 ‘봉구’는 어르신 택배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노인인데, 딸이 미국으로 간 후 연락이 닿지 않자 본인이 직접 미국을 가기 위해 열심히 일하며 복권도 꾸준히 사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홀로 유치원 버스에 탑승하지 못한 어린이 ‘행운이’를 만나게 된다. 행운이는 이혼 가정에 있으면서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을 갈구하고 있는 아이이다. 이 영화는 봉구가 행운이를 안전하게 데려다주기 위한 여정이 담겨있다.

 

 

 

행운이가 문신을 하고 있고 덥수룩한 차림의 낯선 할아버지를 선뜻 따르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악어’에 있다. 아버지와 악어를 보러 가기로 한 약속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행운이는 봉구의 용 문신을 악어로 착각한다. 악어는 행운이에게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하는데, 할아버지 몸에 있는 악어에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행운이를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과정에서 봉구는 나름 아버지 역할을 수행하면서 행운이의 옆을 지켜준다. 그리고 문신이 멋있다는 행운이의 등에 컴퓨터 사인펜을 이용하여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그려주는데, 이것을 본 행운이의 엄마는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하는 자리를 만든다. 봉구가 행운이에게 아버지와의 시간을 선물해준 것이다. 또한 행운이는 봉구와 함께하면서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봉구에게 글 읽는 법을, 문자 메세지를 읽는 법을 가르쳐준다. 이를 통해 봉구는 오랫동안 읽지 못하던, 딸에게서 온 문자 메세지들을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다. 행운이는 봉구와 딸 사이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며 봉구에게 가족을 다시 만날 기회를 선물해준다. 행운이는 봉구에게 ‘행운’ 그 자체였다.

 

봉구와 행운이가 만나게 되는 극적인 상황 속에서 숫자 ’37’ 자주 등장한다. 봉구가 꿈속에서 보았던 복권 1등의 마지막 숫자 ’37’과 봉구가 택배 일을 하는 중에 꼭 환승을 하여야 하는 ’37’번 버스, 마지막으로 행운이가 입고 있는 윗도리 등판에 쓰여 있는 숫자 ’37’. 이 3개의 37번이 등장하지만 끝내 봉구가 복권 1등도 놓치고 환승도 포기하며 선택하는 37은 행운이이다. 모두 봉구에게 중요한 37이었지만 행운이가 봉구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운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봉구가 그토록 바라던 딸아이와의 연락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봉구는 배달 중>을 보고 있자면 현대인들의 노인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보인다. 글자를 모르는 몇몇 노인들을 배려하지 않는 환경과 ‘할 짓 없는 노인네' 하며 노인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들, ‘치매인가 봅니다.’하며 노인에 대한 거부감부터 드러내는 경찰들, ’실버 택배 사업’으로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좋은 이미지를 챙기고 있지만 제때 버스 환승을 하지 못하면 압박에 들어가는 회사 사람들까지. 노인을 생각해주지는 않을망정 멋대로 짐처럼 취급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봉구의 상황이 더 악화하게 부추긴다. 행운이를 도와주려는 봉구가 납치법으로 오해받고 고생하게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공사를 위해 존재하는 사회 시스템을 대표하는 경찰까지도 봉구를 곡해하니 현대 사회 속 노인의 처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 영화를 보면 사회적 약자들 사이의 유대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다시금 마음속에서 자라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들의 근거 없는 색안경으로 인해 누군가는 오해받고 소외당한다는 것을 유념하자. 터무니없는 편견들은 떨쳐낸 채, 우리가 먼저 어린이들에게, 노인들에게 세심히 귀를 기울이자. 우리도 어렸고, 우리도 늙는다. 너무 당연하게 사회적 약자들이 위축되는 사회가 이제는 사라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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