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이의 독서 칼럼] 완고하던 兄(형)을 부르고 싶다

시인 윤동주의 이야기

불과 몇 년 전, 필자는 문학 작품들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을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해준 고마운 존재들이 있었다. 하나는 외국의 한 소설이었고, 다른 하나는 영화 '동주'였다. 영화를 보면서 필자는 자연스럽게 '윤동주'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졌고, 그의 작품들을 하나씩 찾아보기에 이르렀다. 감동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 시대에 저항하려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필자는 곧 윤동주를 존경하게 되었고, 그의 완고한 삶을 자신의 인생관으로 삼았다. 특히 '서시'를 삶의 방향으로 설정했는데, 가장 많이 읽은 시이며, 가장 자신 있게 외울 수 있는 시가 되었다. 존경하는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서 글이 길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제목은 윤동주의 시 '이런 날'의 일부분이다. 윤동주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아는 시인 중 한 명이다. 1910년 주권을 상실한 이후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찾아오기 이전까지는 흔히 암울한 시대라 불리는 일제강점기이다. 윤동주 또한 그 시대 속에서 살았던 인물이다. 우리말이 금지되어 국어가 일본어가 되었을 때, 꿋꿋하게 한글로 시를 써갔던 청년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시인 동주'는 윤동주의 생애를 다룬 소설이다. 특히 윤동주가 고향인 북간도 용정에서부터 연희 전문학교(현재의 연세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경성에 올라온 시점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때가 1938년도 봄이었다. 연전에서 만난 김삼불, 강처중, 허웅 등 관심사가 비슷한 문학도들과 어울리며 평화로운 나날이 이루어졌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시간은 금방 깨어졌다. 그들이 졸업할 나이가 되었을 즈음에는 일본의 전쟁이 확대되어 자칫 조선인들을 강제로 징용, 또는 징병에 동원될 상황이 찾아왔다. 점차 조선어의 입지가 줄어들어 일본어가 '국어'가 되어버린 그때, 그들은 겨우 남아있던 한글로 적힌 이름마저 강제 동원을 회피할 유학의 길로 접어들기 위해 일본식 이름, 즉 창씨개명을 해야만 했다. 릿쿄 대학과 도시샤 대학을 다니며 영문학을 공부하던 윤동주에게 일본 유학은 큰 문제 없이 진행되나 싶었지만, 1943년 특별고등경찰에 의해 붙잡혀 치안 유지법 위반을 이유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어 옥살이하던 중, 윤동주는 식염수를 이용한 생체실험에 이용되었었고, 광복을 맞이하기 전인 1945년 2월, 안타깝게도 윤동주는 옥 중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 책은 시대 상황과 윤동주의 생애를 이어주면서 시인의 삶의 일부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해주는 점도 장점이지만, 또 다른 장점이 있다. 바로 시가 쓰였던 배경에 대한 서술이다. 예를 들어 윤동주가 쓴 시 중 '참회록'은 조선인 징병을 피하는 일본 유학길로 오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창씨개명을 하였던 때 적었던 시이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서시'는 연희전문을 졸업하기 전, 지금까지 써왔던 자신의 시들을 정리하여 엮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두에 적은 일종의 머리말이었으며, '쉽게 씌어진 시'는 일본에서 유학하던 상황 속에서 적은 시였다. 즉, 시인이 시를 창작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고 따라갈 수 있어서 시를 더 많이 공감할 수 있다. 육 첩 다다미가 놓인 남의 나라에서 슬픈 시인의 천명을 생각하며 의지를 다잡았던 시인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다. 

 

독자들은 학교에서 때때로 윤동주의 시를 접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에 관한 공부가 항상 시험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작품 자체를 마주하기보다는 작품의 분석과 주제 의식 정도만을 외우고 넘어갈 것이다. 슬프게도 문학 작품을 감상하는 여유가 결여되어 있다. 시의 내용에 더 공감하고, 해설지가 아닌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는 일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작품에 관해 관심이 깊어지고, 작가에 대해 궁금해질 것이다. 한 번 찾아보자. 윤동주 시인을 예로 들자면 '시인 동주'도 좋은 책이지만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있고,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 '동주'도 있다. 작품과 작가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공부할 때 느껴지던 바가 달라질 수 있다. 적어도 문학 작품이 분석하고 외워야 할 대상으로만 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칸트가 인간을 수단만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우리도 문학작품을 시험을 치르기 위한 수단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대우해야 한다면 어떨까.

 

송몽규 못지않은 강인한 정신으로 손에 펜을 쥐고 자신의 완고함을 관철했던 사람, 그런 윤동주의 삶을 존경한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삶도 되돌아보고 싶어질 것이다. 끝으로 그의 75주기를 추모하며, 윤동주의 '서시'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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