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의 인문학 칼럼] 마음 인테리어, 적극적으로 병든 사회와 예술치료

만다라를 이용한 마음의 안정 찾기

 

 

최근에 병원에 가신 적이 있습니까? 필자는 최근에 위가 너무 아파서 내과를 찾았던 적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잘못 먹었겠거니, 했는데 의사 선생님은 바로 이 말부터 해주셨습니다. “최근에 신경 쓰이거나 스트레스받는 일 없었니?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푹 쉬렴” 불규칙한 생활 습관도 한몫했겠지만 의외의 처방을 들으니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마음이 아프고 힘들어할 때 어떻게 했는가.' 주로 스트레스받을 때 시험 기간이나 과제가 밀렸을 때 그냥 침대에 누워버리곤 했습니다. 잔다고 해결될 일은 없겠지만 한숨 푹 자면 머리가 좀 맑아지고 적어도 문제 상황을 잠시나마 외면할 수 있었습니다. 혹은 다 먹지도 못할 양의 음식을 주문시켜놓고 막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맛있는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이 아플 때 어떻게 행동하셨습니까? '아픈 마음'에 대해서는 마땅한 치료법도 없고, 병명도 없고, 당사자도 모르는 채 방치해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술치료’를 주제로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예술치료'를 마음 치료의 한 가지 방법으로 가져오기 전에 우선 필자는 '예술'에 관한 필자만의 철학을 정립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제 예술철학자들의 관점을 빌려 예술에 관한 몇 가지 필자만의 정의를 먼저 내려보려고 합니다.

 

 

예술과 인간 사회는 밀접한 관계입니다. 아도르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술이 사회문제를 보란 듯이 내세우고 언급하면 오히려 역효과다. 사람들이 자신을 비판하는 줄 알고 저항감을 가지기 때문이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슬금슬금 다가가 사회문제와 무관한 얘기를 하는 채 해야 한다. 그게 더 효과적이다. 예술은 오로지 예술의 법칙을 따라서 표현하면 되고, 그런 표현 속에서 이미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예술은 무엇을 하든 이미 사회에서 태어났고 사회 속에 있고 사회에 참여 중이다.” 그는 사회와 아무 연관 없는 순수 예술은 없는 것이라고 보는데, 아도르노에 따르면 사회와 예술은 불가분리입니다. 엄격하게 미적으로만 지각된, 순수하게 자율적인 예술은 올바로 지각된 것이 아니며 예술의 자율성은 상대적이고 자율성이란 사회로부터 상대적인 독립성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사회와 작가를 분리하여 오직 작품 자체로만 감상해야 더 좋은 감상자가 될 수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회를 배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참고: 『한 권으로 보는 예술철학·예술치료 이야기(조정옥 저)』, 3장 '아드르노' 편)

 

더불어 철학자 니체는 “예술은 살기 위해 진실을 감추는 거짓말”이라고 말합니다. 예술은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술치료는 예술 매체를 통하여 은유적으로 인간 정신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언어가 가지는 위협감을 감소시킵니다. 예술치료는 치료의 효율성을 위하여 언어, 미술, 음악, 놀이, 동작, 무용, 연극 등 다양한 매체를 폭넓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예술이 인간 상호 간 교류수단이라고 말합니다. 작품을 만든 사람과 감상하는 사람 간,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에 걸친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입니다.

 

예술의 폭이 넓어진 만큼 현대 사회에는 다양한 형태의 예술치료가 존재합니다. 건축부터 조각, 회화, 음악, 문학, 춤, 그리고 가장 뒤늦게 탄생한 영화 예술치료, 사이코드라마 치료, 동물 매개 치료, 원예치료, 숲 치료까지 말이죠. 'OO치료'라고 했을 때 사실 우리에게 더 익숙한 표현은 ‘심리치료’입니다. 심리치료와 예술치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심리치료는 인간 심리의 원리와 인간관계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심리적 고통의 해결을 목표로 하는 활동입니다. (참고: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27816&cid=51007&categoryId=51007, 한국표현예술심리협회(KEAPA) 발췌) 즉, 행복을 목표로 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치료는 심리치료의 한 종류인데, 심리치료가 우울과 분노 불안 등 부정적 감정의 변화를 유도하여 인간을 보다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예술치료는 색과 형태와 음과 같은 감각적인 매체의 이용으로 더욱 효과적인 감정표출과 감정 해소, 감정수정을 가능하게 합니다. (참고: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73237&cid=62841&categoryId=62841, 한국표현예술심리협회(KEAPA) 발췌) 일반적으로 심리치료가 상담자와 내담자의 대화를 매개체로 한다면 예술치료는 다양한 종류에 따라 여러 매체가 감상과 같은 수동적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고 창작과 같은 능동적 도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앞서 말했듯 여러 종류의 예술 치료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여러분께 ‘만다라 미술치료’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만다(manda)'는 참, 본질을 의미하며 '라(la)'는 소유 성취, 즉 ‘자기완성’을 뜻합니다. 만다라 그림이란 원 속에 그린 그림으로 우리의 정신 전체를 볼 수 있게 하여 지혜로 가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만다라 미술치료는 더욱 더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만다라를 통해 무언가를 검사하고, 내면을 꿰뚫고자 하는 것이 아닌 무의식에 존재하는, 나조차도 모르는 형태의 불안을 안정으로 수정시키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5197&cid=46648&categoryId=46648) 요즘은 원이 주어졌을 때, 만다라를 '만든다', 라는 부담감에 섣불리 손대지 못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미 그림으로 채워진 원을 색칠하는 식의 만다라 치료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컬러링북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어쩌면 이것도 형태가 예술의 형태일 뿐이지, 마음의 상처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림’ 또는 ‘색칠’에 몰두하는 과정이니 필자가 했었던 잠자기, 폭식하기와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필자는 왜 ‘적극적으로 병든 사회’라고 표현했을까요? 이 표현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분명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고등학생으로서 우두커니 멈춰 서거나 지하철만 타도 세상이 점점 우울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치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음원차트만 봐도 상위권은 대부분 이별 노래와 발라드가 차지하고 있고 서점의 베스트셀러 칸에도 “괜찮아”라는 말이 안 들어가는 책을 보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이별에 아파하고 누구에게라도 괜찮아, 라는 말을 꼭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만이 음악과 책을 찾아서 그런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회 속에 병들어가고 아파하는 마음이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말한 예술철학에서 근거를 들어 적극적으로 병들어가는 사회에 예술치료가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와 예술은 불가분리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이라는 개념이 더욱더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현대사회, 어쩌면 이미 우리는 일상 속에서 예술 치료를 해나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철학자 굿맨이 “모든 것이 예술이고 누구나 다 예술가다!”라고 말하며 예술의 기준과 우열기준을 없앤 것처럼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고, 어떤 형태든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이별 노래와 발라드를 들으며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을 읽으며 예술을 향유하고, SNS에 소위 ‘인스타 감성’이라고 하는 감성 사진과 글귀를 통해 자신의 기분과 상태를 표현하기도 하죠. 그것이 나만 보는 비밀 일기에 적는 것이 아닌 매체를 통해 대중에 공개함으로써 다른 누군가의 공감을 사기도 하고, 위로의 말을 받기도 하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병든 마음을 위해 어떤 처방을 내려주실 건가요? 허물어져 가는 마음에 예술치료를 통한 인테리어로 기분을 전환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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