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번역을 인공지능이 대체할수 있을까?

번역은 또 다른 문학

번역은 또 다른 문학이라고 한다. 고1 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으며 그 말이 맞는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이방인'에 대한 과거의 번역본과는 확실히 다른 새로운 번역본을 통해 그냥 유명한 작품이던 '이방인'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나의 것'으로 다가왔다. 우리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데에도 번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영국의 맨부커상을 받을 때에도 번역가의 역할이 컸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그런데, 우리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번역가라는 직업이 남아 있을까?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1순위 직업으로 번역이 꼽히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갈 때 구글 번역기를 통해 외국인과 말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게 될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

 

한 가지 실험을 해보았다. 내가 인상 깊게 읽은 카뮈의 '이방인'을 인공지능은 어떤 식으로 번역할지 전문 번역가의 작품과 비교를 해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문학작품 번역을 인공지능이 얼마만큼 대체할 수 있을지 가늠해보고 싶었다.

 

비교의 대상은 카뮈의 '이방인'이었는데, 모든 책 내용을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너무나 유명한 '이방인'의 첫 문장이 담긴 첫 문단만 비교해봤다. 인간이 번역한 작품은 내가 고1 때 읽었던 새움 출판사의 '이 정서' 번역가의 번역본을 선정했다. 인공지능의 번역은 전 세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구글 번역기의 고급 번역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구글은 꾸준히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번역 능력을 진화시켜왔는데 2016년부터는 인간의 언어 구사 방식과 유사하게 전체 문장을 하나의 번역 단위로 한 번에 번역하는 ‘구글 신경망 기계번역(Google Neural Machine Translation, GNMT)’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학습능력인데, 사람들이 검색을 하면 할수록 인공지능이 머신러닝을 통해 많은 데이터를 학습해, 갈수록 번역 능력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글 번역기를 통해 카뮈의 '이방인' 첫 문단을 번역해봤다. 우선  뮈가 쓴 프랑스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Aujourd'hui, maman est morte.
Ou peut-être hier, je ne sais pas.
J'ai reçu un télégramme de l'asile : Mère décédée. Enterrement demain. Sentiments distingués.
Cela ne veut rien dire. C'était peut-être hier.
(프랑스어 원문인용의 출처는 알베르 카뮈, 이정서 옮김(2014) '이방인' 168쪽, 새움출판사)


이러한 프랑스어 원문을 구글번역기는 이렇게 번역했다.

오늘 어머니는 죽었습니다.
어쩌면 어쩌면 모르겠다.
나는 망명에서 전보를 받았다 : 사망한 어머니. 내일 매장. 독특한 감정.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어제 였을 수도 있습니다.
(구글번역기, 2020.5.16)

 

 

솔직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 외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구글번역기는 '이방인'의 첫 문단을 제대로 번역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인간이 번역한 카뮈의 '이방인'은 다음과 같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삼가 애도함.'
그건 아무 의미가 없다. 아마 어제였을 것이다.
(번역문 인용의 출처는 알베르 카뮈, 이정서 옮김(2014) '이방인' 168쪽, 새움출판사)

확실히 문학작품의 향기가 난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았는데 오늘 돌아가신건지 어제 돌아가신건지 잘 모르는, 정신없는 주인공의 심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두 문장씩 뜯어서 비교해봤다.

작가의 원문 : Aujourd'hui, maman est morte. Ou peut-être hier, je ne sais pas.
인간의 번역 :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 번역 : 오늘 어머니는 죽었습니다. 어쩌면 어쩌면 모르겠다.

인간은 'maman'이라는 단어를 '엄마'로 번역한 반면 인공지능은 '어머니'로 번역했다. 그런데 '이방인' 책 전체를 읽어보면 주인공 뫼르소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어머니'보다는 '엄마'가 더 맞다. 어릴 때부터 같이 지냈지만 서로 미워하고 싸우기도 한 애증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큰 차이는 '문체'에 있다. 작가는 오늘(Aujourd'hui)이라는 단어 뒤에 쉼표를 찍었다. 오늘이라는 시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리고는 뒤 문장에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르겠다'로 이어진다. 어머니가 언제 돌아가셨는지 모르겠는 정신없는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간파한 인간은 그래서 '오늘'이라는 단어 뒤에 똑같이 쉼표를 찍었다. 그리고 '아니'라는 접속어를 붙여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르겠다'라는 심정을 강조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오늘' 뒤에 쉼표를 찍지 않았고, 어제(hier)라는 단어도 번역하지 못한 채 '어쩌면 어쩌면 모르겠다'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번역을 내놓았다.

작가의 원문 : J'ai reçu un télégramme de l'asile
인간의 번역 : 양로원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다.
인공지능 번역 : 나는 망명에서 전보를 받았다.

인간은 '나는'(J'ai) 이라는 주어를 생략하고 양로원에서 전보 한 통을 받았다는 뜻을 강조한 반면 인공지능은 기계적으로 '나는 어디에서 전보를 받았다'로 해석했다. 그런데 양로원( l'asile ) 이라는 단어번역을 놓친채 '망명'이라는 이상한 번역을 통해 '나는 망명에서 전보를 받았다' 라는 전혀 알 수 없는 문장을 내놓았다.

작가의 원문 : Mère décédée. Enterrement demain. Sentiments distingués.
인간의 번역 :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삼가 애도함.
인공지능 번역 : 사망한 어머니. 내일 매장. 독특한 감정.

주인공이 양로원에서 받은 전보의 내용을 요약한 부분이다. 인간은 우리가 보통 타인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에 나오는 어투로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삼가 애도함'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전보에 쓰이지 않는 문체로 단어 하나의 기계적 번역에만 집중해 이게 과연 전보에 나오는 말인지 누가 전하는 말인지 모르게 번역했다. 특히 'Sentiments distingués'에 대한 번역은 단어 하나만 뜯어보면 인공지능처럼 '독특한 감정'이라는 번역이 가능하지만 이러한 표현이 죽음을 알리는 전보에 쓰이는 사무적인 표현이라는 맥락을 알고 있는 인간은 이를 독특한 감정 대신 '삼가 애도함'으로 번역했다. 같은 단어라도 어떤 맥락과 어떤 목적으로 쓰이느냐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인데, 인공지능은 그러한 맥락적인 부분까지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많은 문단이나 책 전체를 비교해 본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첫 문단 비교만 놓고 본다면, 문학작품에 대한 번역에서 아직은 인간이 해야 할 부분이 더 많은 것 같다. 인공지능도 꾸준히 학습을 하겠지만, 일상의 언어를 학습하는 것과 문학의 언어를 학습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에, 적어도 문학의 번역은 작가의 문체와 의도를 잘 알고 있는 인간이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나는 이 실험을 통해, 문학작품에서 작가의 문체와 맥락이 얼마나 독자들에게 '읽는 느낌'을 다르게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글을 읽는 것은 단지 스토리를 파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순서, 쓰는 단어, 마침표와 쉼표의 위치에까지 숨어있는 그 작가만의 독특한 향기를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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