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윤의 EDU칼럼] 교육의 어원을 통해 '교육'을 알자

독일 교육을 통해 교육의 어원을 이해하자.

 

 

교육을 영어로 무엇이라 할까? 그렇다. Education. 그렇다면 한자로 교육은 무엇일까? 한자로는 敎育.(가르칠 교, 기를 육)이다. 이 단어들을 갑자기 왜 언급할까? 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 단어들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들어보면 굉장히 가치 있는 의미들이 담겨있다.

 

Education을 어원으로 풀어보면, E-는 밖으로, duce + ate는 이끌다 로서 ’교육하다‘ 라는 뜻이 만들어졌다. 즉, 인간 안에 존재하는 능력, 지식 등을 밖으로 끌어내는 것을 뜻하는 것.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원의 뜻대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걸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럼 이 단어를 우리나라의 교육 방식에 투영해보자. 우리나라의 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준 것을 토대로 내용을 외우고, 시험지에 써내려 정답이 있는 문제를 맞히면 점수가 올라가는 방식이다. 과연 이 교육 방식이 자신 안에 있는 창의력, 논리력을 밖으로 끌어낼 수 있는 교육일까? 단지 선생님이 가르친 내용을 뇌 속에 입력하고, 때에 맞춰 결괏값을 내는, 마치 컴퓨터와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번엔 한자 교육을 보자. 네이버 지식사전에는 이렇게 표기되어 있다.

(출처https://hanja.dict.naver.com/word?q=%E6%95%8E%E8%82%B2&cp_code=0&sound_id=0 )

  ①가르치어 지능을 가지게 하는 일

  ②개인 또는 특정한 기관이 일정한 이상 또는 가치를 지향하여 미성숙한 아이나 청년을 지도하여, 사회의 유지  와 전진을 위하여 하는 의식적인 활동

  ③개인의 전체적인 인간 형성의 사회적 과정

2번 항과 3번 항을 보면 전반적으로 인간 형성, 사회를 위한 인재를 기르는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도 우리나라의 교육방식에 투영해보자. 물론 현재 배우는 과목들이 사회에서 필요한 과목들을 배우지만 정말로 사회에 독립될 때 적용할 수 있는 활동이나 지시기들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독일의 교육을 예로 들자면 독일은 3가지의 교육을 중시한다고 한다. 성교육, 정치교육, 생태 교육이다. 성교육은 우리가 성인이 되어 바람직한 성 지식을 가지고 성생활을 하기 위한 것이고, 정치 교육은 선거권을 가지고 있거나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있을 시 비판할 수 있는 사고 능력을 기르는 교육이며, 생태 교육은 환경에 대해 교감하고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배우는 교육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에서는 이 세 가지 교육이 가장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성인이 되어 사회를 비판하거나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우리나라 청소년의 실상이다.

 

 

초, 중, 고 교육은 미성년자들이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사회 속에 스며들기 위해 국가가 주는 혜택이자 중요한 성장 과정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오로지 정답을 위해 시험을 치르고 시험지의 정답을 맞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열심히 공부하거나, 그렇지 않았더라도 20살의 문턱을 넘으면 누구나 성인이 된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서 사회를 보았을 때, 사회에 정답이라는 게 존재할까? 물론 수학 문제 같은 경우에는 역시 정답이 존재한다. 그러나 마케팅의 기술, 사람의 심리, 환경 문제 등등 사회에서 요긴하게 언급될 이런 것들에 '100%' 정답이 존재하는가?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상황에 맞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올바르고 적당한 정답을 찾을 뿐이다. 최상의 정답을 찾는 방법은 사회에서 누군가 친절히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가 이를 가르쳐주는가? 바로 교육이다. 초, 중, 고 교육을 통해 충분히 배우고 사회에 진출했을 때 비로소 그 방법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한다는 것일까?

 

Education의 어원에서 교육은 내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라 언급했다. 윗글에서 언급했던 독일의 정치 교육이 이에 해당한다. 독일의 정치 교육 같은 경우에는 선생님이 먼저 첫인사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수용하지 말고 비판하는 자세를 가지자고 이야기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정치 교육을 받으면서 비판하는 자세를 가지고 좀 더 사회에 적합하고 최상의 정답을 찾으려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를 놀라게 했던 충격적인 독일의 사건이 있었다.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초등학생들이 길거리에 나서서 시위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의 정치 교육에 경우, 배우는 것에서 한정하는 것이 아닌 현장에 나가 나의 주장을 외치고 주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점수를 살만하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초등학생들이 시위한 주장들을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인정해 준다고 한다. 이는 사회에 대한 신뢰와 나의 주장에 대한 신뢰가 동시에 높아질 기회이자 경험이 아니겠는가? 또한 이런 활동이 어린 시절에 잘 이루어진다는 점을 보았을 때 충분히 성인이 되었을 때 최상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교육이 Education의 어원에 맞게 내 안에 끌어있는 것을 밖으로 끌어낼 수 있는 굉장히 이상적인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교과서를 통해, 수업을 통해 배운다 한들 나의 주장을 많은 사람과 같은 의견을 외치고 주장한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내 안에 잠재력이 숨어있을지 몰라도 시험 기간에 묻히고 수행평가를 준비하며 그 잠재력을 꺼낼 기회가 잘 이루어지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교육이란 내 안에 존재하는 것들을 꺼내는 것, 그리고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하는 활동이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이 뭘까요? 라고 물으면 입시라고 대답하는 것이 다반사일 것이다. 교육 = 입시가 돼버린 사회에서 사회의 유지와 발전이 원활하고 청렴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또 입시 충족 조건에만 맞는 활동들을 하고 대학이 원하는 활동만 한다면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을 꺼내는 것이 아닌 내 밖을 치장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는 대학을 가기 위해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서 바람직한 성인이 되어 사회에 공헌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성인이 되기 위해 교육을 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강조하고 또 강조하지만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닌 무언가 잘못된 것은 없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듣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디어 경청의 의미 또한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만들어진 것 아닌가? 청소년들의 의견, 청소년들이 사회를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해진 현대 사회에서 교육의 의미 또한 중요하다. 답답하고 암울한 입시 교육이 아닌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이상적인 교육이 우리나라에서도 실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위 칼럼은 JTBC 방송 '차이나는 클라스' 147회 김누리 교수님의 강연을 토대로 제 생각들을 덧붙여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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