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지우 경영/전쟁 칼럼] 1.일본, 잠자는 사자의 심기를 건드리다! 진주만 공습

 

 

이 전쟁이 끝나면 일본어는 저승에서나 쓰이는 말로 만들겠다.-윌리엄 홀시 제독

 

1차 대전과 2차대전 사이 전간기의 일본은 일본 열도내의 자원 부족을 해결하고 대공황으로 만신창이가 된 산업을 다시 전쟁을 통해 부흥시키기 위해서 노구교 사건을 빌미로 중국에 침략했다. 그러나 중국의 국민당 정부는 중국 공산당과 국공합작을 진행해서 일본군을 지속적해서 소모하게 했다. 한편 서양 열강은 중국에서 아편 무역 보장받거나 중국의 영토를 조차지로 갖고 있는 등 여러 이권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중일전쟁으로 이런 이권들이 침해당하지 않을까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본의 팽창을 적극적으로 견제한 것은 미국이였다. 미국은 이미 전간기부터 일본을 태평양에서 싸워야 하는 상대로 인식하고 있었고, 이에 따른 전쟁계획도 준비하고 있었다.

 

미국은 중국에서 자국의 이권이 침해받거나, 자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과 괌이 침공당하는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동남아시아에 이권이나 식민지를 가진 영국, 네덜란드, 미국, 중국이 함께하는 ABCD 포위망 (미국, 영국, 중국, 네덜란드의 일본에 대한 철강, 고무, 석유 금수 조치)을 구성해서 일본의 전쟁 수행 능력을 급격하게 약화시켰다. 반미 감정이 치솟은 일본 군부는 미국과 전쟁을 해야 한다는 주전론이 득세했다. 그들은 미국 함대를 일거에 쓸어버린 뒤에 태평양의 군도들을 요새화시킨 뒤 미국과의 유리한 협상에 나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때 일본 해군 장관은 항공모함을 이용해 미 태평양 함대 기지인 진주만에 정박한 전함을 일거에 쓸어버리며 전쟁을 개시하자는 주장을 했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며 1941년 12월 7일 ‘도라 도라 도라’ 이라는 진주만 공습의 성공을 알리는 암호와 함께 태평양 전쟁이 개전하게 되었다.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미국은 전함 8척 중 5척이 침몰하고 3척이 대파되었고, 순양함은 3척이 침몰당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항공모함 4척이 열대 폭풍으로 인해 12월 8일에 진주만에 입항했다는 것이다.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당장에 가용할 수 있는 전함을 모두 잃게 된 미국은 단 4척의 항공모함으로 일본의 연합함대를 이겼어야 했다. (글 출처-https://namu.wiki/w/%EB%AF%B8%EB%93%9C%EC%9B%A8%EC%9D%B4%20%ED%95%B4%EC%A0%84)

 

당시 주력함을 비교해보자면 미국은 항공모함만 4척이 있는데 반면 일본은 항공모함 4척, 순양전함 2척, 전함 6척에 달하는 대함대였다. 미국은 진주만 공습에서 보존한 항공모함 4척을 어떻게든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미국 니미츠 제독은 일본 해군의 암호를 감청해서 일본의 다음 목적을 찾아내려고 용을 썼다. 찾아낸 다음 목적은 미드웨이, 니미츠 제독은 미국의 모든 군사 역량을 미드웨이에 투입했다. 이에 반해 일본은 미국과 정면승부를 한다면 압도할만한 함대를 3개로 쪼개서 1함대는 얄류샨 열도, 2함대는 미드웨이, 3함대는 싱가포르로 보내며 자체적으로 전력을 분산시켰다. 이에 반해 미국은 일본의 본 목적이 미드웨이인 것을 알고 미드웨이에 모든 가용 전력을 쏟아부었다. (글 출처-https://namu.wiki/w/%EB%AF%B8%EB%93%9C%EC%9B%A8%EC%9D%B4%20%ED%95%B4%EC%A0%84)

 

한편 미국과 일본의 회의 분위기도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야마모토의 부관과 하급 장교가 전쟁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며 일본의 계획을 점검하고 있었다. 이때 미군의 역할을 맡은 하급 장교가 일본 해군의 역할을 맡은 부관의 항공모함 3척을 격침하자 이를 받아들이기는커녕 미국이 여기에 대처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말하며 일본 항공모함의 격침을 없었던 일로 만들었다. 한마디로 수직적이고 딱딱한 위계질서로 구성되었다는 말이다. 이에 반해 미국은 암호 해독반의 능력만 뛰어나다면 겉모습에는 신경 쓰지 않고 건의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고, 하급 장교의 전략이라도 이치에만 맞는다면 함대 사령관이 이를 받아들이는 수평적인 조직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뛰어난 전략과 암호 해독, 전력의 집중을 통해서 미국은 기존의 수세적인 태평양 전쟁에서 미드웨이 해전을 통해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을 3척을 격침하며 공세적인 방향으로 틀 게 되었다. 한마디로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의 승리는 태평양 전쟁의 승리 나아가서는 한반도 독립으로 이어진 결정적인 전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드웨이 해전을 통해 우리는 2가지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사업과 전쟁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의견이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미드웨이 공습을 앞두고 야마모토 부관과 하급 장교 간의 전쟁 시뮬레이션을 생각해 보자, 전쟁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야마모토가 받아들이기만 했다면 미국의 승리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의견이라도 사건의 판도를 뒤집어 놓을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남의 의견을 수용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가장 정점에 있을 때 최악을 대비해야 한다. 유비무환이라는 유명한 고사가 있다. 미리 준비해두면 근심할 것이 없다는 뜻의 고사이다. 미국의 8척의 전함중 5척을 침몰시키고 3척을 대파시킨 일본 해군이 가장 빛나는 순간, 일본은 전쟁을 이겼다고 생각해 자만해서 다음 해전을 대비하지 못해서 미드웨이에서 패배했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미 해군은 가장 최악의 상황에서 항공 모함을 이용해 해전을 펼친다는 최선의 전략을 펼쳤기에 해전에서 승리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가장 최고의 순간에 가장 최악의 순간을 대비해야 정말 최악만은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과거의 사례를 교훈 삼아 현재에 미래를 조금씩 대비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참고한 책 및 자료 : 미국 vs 일본 태평양에서 맞붙다 - 이성주 저

https://namu.wiki/w/%EC%A7%84%EC%A3%BC%EB%A7%8C%20%EA%B3%B5%EC%8A%B5

https://ko.wikipedia.org/wiki/%EC%A7%84%EC%A3%BC%EB%A7%8C_%EA%B3%B5%EA%B2%A9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10/20191210004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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