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빈의 영화 칼럼] 겨울왕국,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

겨울왕국 : 엘사의 이중성은 어떻게 영화를 완성하는가.

겨울왕국 시리즈의 후속작 개봉 날짜가 하루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칼럼이 겨울왕국 2가 개봉한 이후에 업로드될 것을 염두에 두고서, 원고를 마무리한 날짜가 겨울왕국 2 개봉을 하루 앞둔 20일이었음을 미리 밝힌다)

 

후속작 예고편을 처음 보았을 때, 머리를 질끈 묶고 얼음이 언 바다 위를 달리는 엘사의 결연한 표정 때문인지 '왕좌의 게임 애니메이션 버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제작진들은 메인 캐릭터의 유니크하고 얼핏 혁명적으로 비춰지는 행동으로 겨울왕국 1편의 동화적인 요소가 후속편에서 거의 사라졌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었다. 제작진들이 왕좌의 게임처럼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기로 결정했다면, 겨울왕국의 판타지적 요소와 오직 왕좌의 게임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카타르시스의 결합을, 엘사가 마법으로 얼음 용을 만들어 국경을 넘어가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엘사가 겨울왕국 1편에서 뾰족한 얼음이 등에 가시처럼 박혀 있는 눈 괴물을 만들었듯이.  예고편이 워낙 무거워서, 전작과 분위기가 상이하게 달라진 사실을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동화적인 애니메이션의 틀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무겁고 진지한 예고편을 다 보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엘사가 아렌델을 떠날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여왕 자리를 내려놓고. 영화 제목이 왜 겨울왕국인지를 생각하다가, 제작진들이 겨울의 상징이었던 엘사가 마침내 아렌델을 떠나 그녀가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곳에서 왕국을 건설하는 장면으로 후속편을 끝맺을 가능성을 고려하기에 이르렀다. 엘사는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등 선한 마법사의 이미지를 고착시킨 작품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캐릭터였다. 엘사는 왕국 전체에 겨울을 불러올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졌지만, 영화 초반부에서 장갑과 망토, 아렌델의 날씨를 고려했을 때 지나치게 두꺼운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 장면이 엘사는 스스로가 가진 힘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관식 장면에서 엘사는 결국 힘을 통제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 힘이 자신의 불안한 내면 밖으로 분출되지 않게끔 억제하려고 한다. 힘을 억제하려던 시도가 역효과를 냈던 것일까. 엘사는 그러한 속박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엘사가 고의로 그녀의 왕국에 겨울을 불러온 것은 물론 아니지만, 아렌델에 갑작스럽게 겨울이 찾아오고 산봉우리마저 눈에 덮여 새하얗게 변했을 때 엘사가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다.

 

엘사는 대관식 때와 달리 환하게 웃는 얼굴로 겨울왕국 1편의 메인 테마곡인  'Let it go' 를 부른다.  엘사는 대관식 내내 긴장에 차 있었고, 안나를 포함한 아렌델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을 숨겨야 한다는 사실을 강박적으로 기억하려고 했었다. 엘사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는 억압과 통제, 자유를 향한 열망이 모두 연소된 후에, 엘사의 입에서 천천히 흘러나오는 다 잊어버리라는 뜻의 노랫말은 일견 섬뜩하기까지 하다. 엘사는 왕국에 재앙을 불러왔다. 겨울의 추위가 무방비 상태의 사람들을 덮치기 전에, 아렌델은 풍요로운 여름을 보내고 있었고 엘사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엘사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 것처럼 다 잊으라고 노래한다. 고칠 수 있다거나, 고쳐야 한다거나, 혹은 솔직해져야 한다는 내용의 노랫말이었다면 엘사가 산봉우리에 얼음으로 성을 짓는 장면이 덜 섬뜩하게 느껴졌을까. 노래가 끝나갈 무렵에, 엘사는 추위 따윈 두렵지 않다고 말하며 얼음성의 창문을 쨍 소리가 나게 닫는다.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은 엘사가 유일하다. 그러나 아렌델 사람들에게, 엘사를 제외한 아렌델 사람들에게는 추위가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자연은 그들이 저항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저항할 수 없는 대상, 애초에 상대할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렌델 사람들은 엘사가 '두려움'이라고 규정한 감정보다 더 크고 더 파괴적인 감정에 사로잡혀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겨울과 그 새하얀 풍경에 압도한다.

 

엘사는 자신이 사람들을 재앙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재앙이 재앙의 주체인 자신에게는 해방으로 작용하는 양면성을 지녔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엘사의 이러한 이중성과 엘사가 초래한 재앙의 양면성은 일맥상통한다. 엘사는 이중적인 인물, 달리 말하면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겨울왕국 후속작을 기대하는 이유는 엘사처럼 입체적이고, 스스로의 힘을 두려워한다는 매력적인 설정을 가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기 때문이 아니라 입체적인 인물이 다소 평면적인 인물과 함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애니메이션처럼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작품이 있을까- 제작했기 때문이다. 언뜻 아름다운 동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모든 동화가 우리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고, 우리가 사랑하게 될 이야기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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