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연의 시사/과학 칼럼 6] 사람의 조상은 원숭이?

진화론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

인류의 탄생을 두고 늘 대립하는 대표적인 두 개의 이론이 있다. 창조론과 진화론으로, 종교적 관점과 과학적 관점이 첨예하게 대립하곤 한다. 동시에 진화론 안에서도 여러 관점으로 해석되어 학설과 의견이 다양한 만큼 오해도 많이 생긴다. 여기에서는 진화론을 둘러싸고 잘못 알려진 사람들의 흔한 오해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 유인원이 진화하여 사람이 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유인원은 사람처럼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고, DNA 일치율도 높고, 지능도 발달했기 때문에 유인원이 진화하여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생물의 진화는 직선형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오는 과정을 반복하며 일어난다. 찰스 다윈은 그의 저서 ‘종의 기원’ 제4장에서 ‘생명의 나무’를 제시했다. 그는 모든 생물을 하나의 나무로서 나타내, 시대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가지가 뻗어 나가고 그 끝에는 현존하는 생물만이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한 공통 조상에서 여러 차례 분화한 끝에 원숭이도 있고, 침팬지도 있고, 사람도 있고, 다양한 생물들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진화의 증거로는 화석의 증거, 해부학적 증거, 진화발생학적 증거, 분자생물학적 증거가 있다. 그중 분자생물학적 증거에 따르면, 진화적으로 가까운 종일수록 DNA와 단백질이 더 유사하다. 그래서 여러 유인원과 사람의 DNA 일치율을 살펴보면 침팬지가 98.8%로 사람과 가장 가깝다. 전문가들은 약 600만 년 전 사람과 침팬지가 생명의 나무에서 갈라졌다고 한다. 사람과 유인원은 비교적 최근에 분화하여 진화적으로 가까운 유연관계에 있는 것일 뿐, 절대 유인원이 진화하여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Ⅱ. 가장 강한 종이 살아남을까?

 

그렇지 않다. 강한 종이 아닌 환경에 적합한 종이 자연 선택되어 살아남는 것이다. 적합하다는 말의 의미는 무조건 강하고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다. 진화는 환경에 적응하기 유리한 형질을 가진 개체가 경쟁에서 살아남아 더 많은 자손을 남김으로써 일어난다.

 

찰스 다윈은 ‘자연 선택설’로 이를 뒷받침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 예시로 회색가지나방이 있다. 산업혁명 이후나무들이 까맣게 변했을 때, 밝은 색깔의 나방은 줄어든 반면 어두운 색깔의 나방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대기오염 방지정책으로 나무들이 본래 색으로 돌아오자 어두운 나방의 수가 급격히 줄었다. 천적인 새의 눈에 잘 띄는 나방이 잡아먹히기 때문에, 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환경에 적합하지 않던 종이 적합한 종이 되어 개체가 줄었다가 늘어난 대표적인 자연 선택의 예시다.

<인용 출처: >

 

한편, 일부에서는 환경에 맞추어 종이 적합하게 변화한다고 말한다. 진화의 학설 중 장바티스트 라마르크가 주장한 ‘용불용설’인데, 환경에 맞추어 살아남기 위해 사용하는 기관은 점점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는 기관은 점점 퇴화하여 자손에게 유전된다는 학설이다. 그러나 후천적으로 얻은 획득 형질은 유전되지 않으므로 이 또한 오해라고 말할 수 있다.

 

 

 

Ⅲ. 진화는 진보일까?

 

그렇지 않다. 진화는 진보의 과정이 아니다. 진화의 한자를 풀이해보면 나아갈 진(進)에 변화할 화(化)이고, 진보는 나아갈 진(進)에 걸을 보(步)이다. 진화와 진보 모두 나아갈 진(進)을 쓰기 때문에 혼용되곤 한다. 그러나 개선된다는 뜻을 가진 진보와 달리 진화는 단지 환경에 적합해지도록 적응하는 과정이다. 생물은 지금도 진화의 길을 걷고 있다. 시대를 거듭할수록 달라지는 새와 곤충은 물론 상아가 작아진 코끼리도 있다. 만약 진화가 진보라면, 나중에 진화한 생물일수록 우월해야 한다. 어쩌면 사람보다 더 지능이 높고 뛰어나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퇴화도 진화의 일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퇴화를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자신의 환경에 적합해지기 위해 변한 것이므로 딱히 나빠졌다거나 좋아졌다고 함부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눈이 없는 동굴 속의 동물들이 그 예시이다. 눈은 먹잇감을 사냥하고 천적을 알아차리는 등 생존에 꼭 필요한 기관이지만, 온통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동굴에서는 쓸모가 없다. 동굴에 사는 이들에게서 눈이 나빠지는 변이가 생기고, 수백 수천 세대를 반복하며 눈은 감각기관으로서의 모습도 덜 갖추게 된다. 연결된 신경이나 수정체의 모양 등이 남아 있는 것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단지 희미한 흔적기관에 불과할 뿐이다. 개체가 자신에게 불필요한 기관 또는 기능을 진화 이전의 상태로 돌린 것이다.

 

영국의 자연사 박물관 다윈 초상화 아래에는 '세상을 뒤엎을 만한 아이디어가 있는데, 그 생각을 혼자만 간직하고 있겠는가?'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출판과 동시에 세상을 뒤집어놓았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진화론을 포함한 과학에 큰 영향을 미친 '종의 기원'을 쓴 다윈이 만약 그의 생각을 혼자만 간직했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보다는 진화생물학의 발전이 더뎠을 것이 분명하다. 과학의 발전은 물음표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물이 시작이 신이라고 믿었던 시대에서 다윈이 물음표를 던져 진화의 퍼즐을 맞추어나간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 작은 물음표를 던져보는 것이 어떨까?

 

 

<참고자료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LRgnUHYYgi0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B%8B%A4%EC%9C%88%EB%8F%84-%EB%AA%B0%EB%9E%90%EB%8D%98-%ED%98%84%EC%9E%AC-%EC%A7%84%ED%96%89%ED%98%95-%EC%A7%84%ED%9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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