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규의 인문 칼럼] 여행의 이유

 

작년 가을 시험을 마치고 경주에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시험 기간 중에는 여행 계획을 짜기에 바빴고, 더할 나위 없는 여행 계획을 짰다며 스스로 만족해했다.

첫째 날은 모든 계획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둘째 날, 우리는 경주에 위치한 놀이공원을 방문했다. 온전히 놀이기구를 좋아하는 친구를 배려해서 선택한 곳이었다. 친구의 끈질긴 요청으로 롤러코스터를 함께 탄 나는 한 시간 가까이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다음 일정까진 약 세 시간을 남겨두고 있었지만 우리는 더이상의 즐길 요소를 찾을 순 없었다.

 

무작정 밖으로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작은 정자와 연못이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과 같은 곳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잠시 쉬기로 하고 정자에 앉았다. 가을의 시원한 바람과 빼곡히 들어선 나무에서 느껴지는 냄새에, 이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철저한 계획은 내가 줄곧 추구해온 여행의 필수 요소였다. 이는 여행이 완벽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경주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우리가 계획을 버리기로 결정했을 때, 그 정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자연의 향기를 맡던 순간은 여행 중 가장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맛없는 음식을 먹게 되거나, 정보가 부족해서 돈과 시간을 날리게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여행을 미리 계획함으로써 상쇄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영상으로든, 사진으로든 집에서도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는 21세기에,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직접 그곳을 찾아 지역을 느끼는 데에 있었다. 계획대로 ‘완벽한’ 여행이 되었더라면, 그 여행이 완벽했다는 것밖엔 기억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완벽함을 추구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찾아 남들이 선망하는 삶을 누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 사회는 개인들로 하여금 ‘도전’을 주저하게 만든다. 세상을 바꾸는 변화는 바로 그 ‘실수’와 ‘개성’에서부터 출발한다. 만약 그 실수가 좋지 않은 결과를 도출했다 하더라도 그 실패를 보완하고 다시 재기할 수 있는 사회라야 한다. 구성원 개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자신에 대한 신뢰는 저버린 채 안정만을 추구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설령 완벽하지 못하면 어떠한가. 참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요 곧 삶의 목적이 아니던가. 인생이 언제나 즉흥적이기만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가끔은 나를 믿고 내가 끌리는 대로 행동해 볼 가치는 있다. 그것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고, 오락을 찾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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