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지의 세계사 칼럼] 자원의 저주, 검은황금과 사라진 손목

                        

제국주의는 강력한 군사력을 토대로 정치, 경제, 군사적 지배권을 다른 민족이나 국가로 확장시키려는 패권주의 정책을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국주의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이러한 제국주의는 식민지, 전쟁 등으로 많은 나라에 영향을 주었다. 주로 19세기 초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이러한 모습이 보인다. 우리나라도 이에 관한 영향으로 1910년부터 1945년, 35년간 일본에게 식민지 지배를 당한 시기도 있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 흔적은 아직도 여러 방면으로 보인다. 아마 다른 국가들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제국주의에 관한 내용에서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도 빠질 수 없는 내용이라 생각한다.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흔히 알고 있는 학살이고 자료가 많아 한번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얘기할 콩고 대학살은 유대인 대학살에 비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번 즈음은 생각해보기 좋은 사건이라 생각한다.

 

-콩고대학살은 무엇인가-

    

 

콩고 대학살의 시작은 1885년으로 돌아간다.

2월 5일,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Leopold II, 1835-1909)가 아프리카 서부 해안 지역을 콩고 자유국으로 선포했다. 이것이 콩고 대학살의 시작이다. 특이한 점은 세계 유일의 개인 소유 식민지였다. 탐험가 헨리 모턴 스탠리는 콩고에서 용병을 앞세워 무력으로 원주민을 광산과 고무공장으로 내몰았다. 당시 자전거와 자동차 등의 산업 발전으로 고무의 가격이 비싸 '검은 황금'이라고 불리며 품귀현상을 빚었다. 콩고는 고무나무 생산지였기 때문이다.

노동을 강제하는 방법은 콩고의 여자들을 우선 감금한 후 가족별로 할당한 고무 생산량을 채워야 여자를 풀어주는 방식으로 노동을 강제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원주민들은 처음에는 한쪽 손, 두 번쨰는 팔, 세 번째에는 목을 잘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할당량은 너무 많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당을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채우지 못한 할당량으로 한 사람의 죽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가족과 친척, 이웃에게까지 그 몫을 부과하도록 하였고 결국에는 마을 전체가 몰살당하는 것도 흔했던 일이었다. 콩고의 풍부한 자원이 축복에서 저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런 식의 방법으로 무자비하게 벌어들인 돈은 모두 레오폴드 2세 개인에게 돌아가 사치를 위해 쓰이게 된다. 그로부터 쭉 이어져온 이 학살은 일부 선교사와 선박회사에 의해 밝혀지고 1908년 콩고의 땅을 벨기에 국가에 위임하는 행동을 보였으며 1909년 레오폴드 2세가 사망하면서 콩고의 대학살도 끝나게 된다.


-왜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사진으로 보았을 때 학살의 규모는 히틀러와 비교했을 때에도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유대인 대학살을 아는 만큼 콩고 대학살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가에는 2가지 주장이 있다. 레오폴드의 학살의 대상은 당시 비주류인 아프리카가 대상이었고 히틀러의 학살은 유대인이고, 세계 2차대전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쟁과 엮여있기도 했기에 차이가 난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주장은 위대한 잊기(The Great Forgetting)이다. 이것이 과연 '위대한'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맞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위대한 잊기는 레오폴드 2세가 콩고를 반납하면서 했던 말이다. '나의 콩고를 당신들에게 반납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콩고에서 한 일을 당신들이 알 권리는 없다.' 이 위대한 잊기로 벨기에 정부는 레오폴드 2세를 자국과 콩고를 포함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발전을 주도한 인물이라 왜곡하였다고 한다. 이 운동을 진행한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저 평범한 정치인으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현재에도 벨기에 교과서에 레오폴드 2세의 학살행위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그리고 루이 미셸 벨기에 전 외무장관은 영웅으로 평가했다. 콩고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한반도가 식민통치 덕에 경제성장을 이뤘다는 일본의 논리와 닮았다. 또한, 브뤼셀에 위치한 벨기에 왕립 중앙 아프리카 박물관에서는 2005년까지도 콩고에서의 학살에 관해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2019년 8월에  박물관에서의 '아프리카 파티'도 논란이 되는 등 아직까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논란에 대한 언급은 끊이질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그 당시 열강들에 의해 콩고와 같은 피해를 겪은 많은 국가들이,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규모와 잔혹함의 정도가 레오폴드나 히틀러에 비해 작을지는 몰라도 식민지와 침탈에 대한 영향을 아직까지 남아있고 경제적, 물리적인 것 과는 별개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에 큰 상처를 주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21세기인 지금도 아직 전쟁과 분쟁이 많이 존재하지만 콩고를 비롯한 여러 학살처럼 피해가 크지 않고 금방 회복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다시는 이와 같은 끔찍한 학살이 일어나질 않기를 바란다.

 

참고자료)

1)https://namu.wiki/w/%EB%A0%88%EC%98%A4%ED%8F%B4%EB%93%9C%202%EC%84%B8

2)https://blog.naver.com/spirited-away/221324850213

3)https://joonho1202.blog.me/221714417776
4)https://blog.naver.com/nonepapa/220933645254

5)https://www.youtube.com/watch?v=EMfh4EscUmU

6)https://www.youtube.com/watch?v=n29GEJmRdk8

7)http://www.newsis.com/view/?id=NISX20190809_0000736997&cID=10101&pID=10100

8)https://ko.wikipedia.org/wiki/%ED%97%A8%EB%A6%AC_%EB%AA%A8%ED%84%B4_%EC%8A%A4%ED%83%A0%EB%A6%AC

9)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28435&cid=43667&categoryId=43667

10)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48535&cid=47307&categoryId=47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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