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유의 학생자치칼럼3] “학생다움”을 넘어선 민주시민으로서의 학생을 보다

민주시민역량을 중심으로 본 학생과 청소년의 역할

 

“인권 존중은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누구의 인권이든 언제 어디서든 존중되어야 한다.”라는 인권의 명언에 비추어 ‘우리가 하루를 보내는 학교에서 학생인권이 잘 지켜지고 있나’라고 물어본다면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학교공동체 3주체에 해당하는 학생의 인권향상 이야기만 나오면 사회에서는 교권침해와 학습 분위기 붕괴 등의 내용을 들어 격렬하게 반대한다. 교육을 직접 받고 있는 사람으로서, 청소년이자 학생으로서, 정말 이해가 어려울 때가 많다.

 

우리의 “학생다움”은 어디에서 왔나?
조희연 서울특별시교육감이 2018년 9월 27일에 “서울학생 두발 자유화 선언”을 했다. 주된 내용은 말 그대로 머리카락의 길이뿐만 아니라 두발 상태를 자유화해서 학생들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선언이 발표되자마자 기사에는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지면서 “역시 진보”라는 정치색까지 나올 정도였다. 공감하기 어려운 발언들이 많았다. 진보이기 때문에 학생들을 망친다는 댓글에, 당연히 지켜져야 할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선언의 기본취지는 무색해지고, 심지어 여기에 몇몇 사람은 “학생다움”을 강요했다. 


우리 사회의 “학생다움”은 여러 가지를 학생에게 요구한다. “학생답게 자세와 태도를 단정하게 유지할 것”, “파마·염색하지 말 것”, “정치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말 것”, “공부에 집중해서 학업능력을 많이 키울 것”, “교사에게 무조건적으로 순응할 것” 등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여러 학생다움이 당연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의 이야기를 더 하고자 한다.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일이 작년에 일어났다. 이 사건은 청소년이 “물불 안 가리는 폭력적 행동”을 일삼는다는 낙인을 찍었다. 이후 사회여론은 소년법 폐지와 함께 청소년을 엄정히 처벌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고, 국회의원들은 ‘소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할 정도로 사태의 심각성은 부각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의문을 표한다. 하태경 의원이 대표발의한 ‘소년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제안이유를 살펴보면, “현재 중·고등학생의 육체적 발육 상태와 정신적 성장 상태는 성인과 차이가 없으며, 오히려 성인을 능가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보호”보다 자기통제력을 키울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위와 같이, 우리 사회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직시하지 못하고, 청소년 보호라는 미명 아래에 학생에게 “학생다움”을 요구한다. 이는 어른에게 순종적 태도를 보일 것을 강요하는 것이며, 우리 사회는 학생 인권 향상에 있어 부정적 태도를 보여 왔던 것이다.

 

정말로 학생인권의 향상은 교실의 붕괴를 불러올까?
학교에서의 학생인권 논쟁은 ‘휴대전화 소지’부터 ‘염색·파마’, ‘소지품 검사’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러한 논쟁들은 헌법에 나와 있는 권리에 위반됨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특수성”이라는 이유 아래에 합리화 되어 왔다. 학생다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 교육의 특수성은 무엇일까? 바로, 교사의 수업할 권리인 교권과 타 학생의 학습권 등을 말한다. 결국, 교육이 청소년의 탈선을 부추기고, 도덕성·학습관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명목 아래에 학생인권의 향상은 더디게 이루어져 왔다. 이 바탕에도 학생다움이라는 시선은 기초가 된다. 
교권과 학습권 침해는 사실 청소년의 탈선이 과도하게 일반화된 경우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교권침해의 경우에는 대다수의 학생이 그렇지 않을뿐더러, 위에서 서술한 것과 같이 정신적 성장이 매우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대입의 관문 아래에서 실질적으로 갑과 을의 관계에 있는 사제관계에서 교사에게 밉보일 수 있는 행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일들은 근본적으로 수업의 변화를 비롯해 학원과 학교가 거꾸로 뒤바뀐 '현재의 공교육'의 정상화를 통해 학생들의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수업 참여태도를 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일이지, 학생인권을 반대하는 논거로 사용되면 안 된다. 교권과 함께 대두되고 있는 학습권의 침해도 마찬가지다.

 

청소년의 개성을 살리는 것을 탈선으로 보는 시각 자체가 문제
애초에 화장과 파마, 염색 등과 같이 청소년 본인의 개성을 살리고자 하는 행동을 “학생다움”에 비추어 이것을 “탈선”으로 규정짓는 시각 자체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문제들에 있어서 학습권 침해와 탈선 등의 악영향을 이야기 하는데, 학생들이 파마나 염색을 한다고 해서 학업에 영향, 탈선을 유도한다는 것은 매우 동의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단지, 개성을 살리고 싶었을 뿐인데, “공부를 놓은 아이”, “학생다워야지” 등의 시선이 결국 학생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같이 다 같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집단지성과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되돌아보는 회복적 정의가 중시되는 “자아성찰식 교육”이 중시되는 상황에서 학생의 개성 표현이 탈선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맥락적으로 볼 때 매우 말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탈선은 흡연, 음주 등 심각한 상황에서 규정되어야 할 문제이지, 단순한 청소년의 개성표현이 ‘탈선’으로 이어진다는 시각은 시대상황에 비추어볼 때 매우 구시대적인 착오라고 봐야 한다.

 

학생의 인권향상과 더불어 교권도 지키는 방법, 학생자치활동

하지만, 여전히 많은 교사들은 학생들의 학습태도와 탈선과 관련해 학생지도를 힘들어 하고 있고, 심한 교권침해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들은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까? 그 답은 바로 학생자치활동에 있다. 이에 대한 예로 2010년 전후로 일선 학교들에 배포되기 시작한 학생자치법정이 있다. 이 학생자치법정은 세계적으로 이미 효과가 입증되었고, 학생이 학생에게 직접 결정을 내린다는 점에서 회복적 정의에 입각한 좋은 제도로 알려져 있다. 위와 같은 사례처럼 학생자치활동은 학생들의 학업역량과 탈선을 좋게 해결할 중요한 제도로서의 첫 걸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교육의 일선에서 학생자치활동은 겨우 얼굴만 내밀고 있는 상황이다. 담당 교사나 학생자치회 임원의 역량과 예산 지원, 교사들의 인식에 따른 지원에 따라 학생자치회와 학생자치활동은 학교별로 매우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격차를 줄여 학생들이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절차에 따라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준수해 나가려는 “자발적 준수의지”를 드러낸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라고 생각된다.

 

“더 많은 기회는, 더 많은 권리와 의무를 부여한다.”
학생의 인권향상은 자연스럽게 학생에게 많은 권리와 의무를 부여한다.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는” 학생과 청소년이 아닌, 의무를 가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게 사회적 제도와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청소년도 충분히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을 다 해나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이 청소년에게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 “학생다움”으로 학생을 억압하는 것은 결국, 어른에게 순종하는 태도를 심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사회에서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을 다하지 못하고 지난 세대가 했던 과오들을 다시 반복할 것이다. 더 많은 기회는, 더 많은 권리와 의무를 부여한다. 이제 청소년들도 인간으로서의 권리, 사람으로서의 권리인 ‘인권’을 존중받고, 행복한 삶을 추구해 나갈 수 있도록 기성세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칼럼 소개

기존의 학생자치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관심이 있어도 직접 보살펴주는, 생각해주는 어른도 없었습니다. 우리의 학생자치는 각자 보이지 않는 길을 헤쳐 가야 했습니다. "학생 스스로가 학생자치의 길에서 답을 찾다, '한지유의 학생자치칼럼'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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