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빈의 영화 칼럼] 이토록 쓸쓸한 소년이라니

[최수빈의 영화 칼럼] 영화로 보는 세상 이야기-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

어벤져스 시리즈를 통틀어 유일하게 극장에서 관람한 영화가 바로 엔드게임이었다. 어벤져스 1이 개봉했을 때에는 그들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고, 이후에 개봉한 시리즈 역시 개봉일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에, '뒷북'을 치며 텔레비전 화면으로(아무래도 극장의 스크린에 비하면 화질이 떨어지는 감이 있다) 보았다. 원년멤버라고 불리는 캡틴 아메리카(일명 미국대장)와 토르, 아이언맨(아이언맨 시리즈 이후 그는 치즈버거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을 스크린으로 보는 것은 감회가 남달랐다. 하지만 내가 엔드게임에서 가장 주목했던 인물은 호크아이도, 헐크도 아닌 스파이더맨이었다. 어벤져스를 세대로 구분한다면, 아마도 후세대에 속할, 나이 어린 히어로. 스파이더맨처럼 어린 히어로는 드물었고,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스파이더맨' 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스파이더맨 : 홈커밍은 물론,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를 다섯 번도 넘게 본 덕분에 마블 시리즈에 대한 배경지식과는 별개로 '인피니티 워'에서 그가 블립을 경험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언맨이 타노스의 '핑거스냅' 에 의해 블립되었다가 5년, 무려 5년 만에 돌아온 스파이더맨을 포옹할 때, 히어로 영화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부성애를 느낄 수 있었다. 배트맨은 총기를 소지한 강도에게 부모님을 잃었고, 조커는 어떤 종류의 애정이든 애정에 대한 경험이 전무해 보였고, 저스티스 리그의 플래시는 아버지가 감옥에 수감되는 바람에 홀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으므로.  결국 아이언맨이 건틀렛을 착용한 채로 손가락을 튕기고, 인피니티 스톤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천천히 죽어갈 때, 서둘러 달려온 소년의 얼굴이 한없이 어려 보였다. 제 나이보다 더 어리게, 소년보다 더 소년 같아 보이는 얼굴이 화면을 가득 메웠을 때 잠깐 동안 소년의 눈동자 안에 100분의 1로 축소된 우주가 담겨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눈동자 안에 우주의 축소판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아주 슬픈 일을 겪은 사람이라고, 그래서 눈동자에 별이 박히고 궤도를 이탈한 행성이 동공 속을 자맥질해도 내색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겨우 열여섯 살이 된 소년에게, 열여섯의 소년에게 태곳적의 심장 박동처럼 맹렬하게 몰아치는 슬픔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없다. 관객이 영화에 공감하도록 만들기 위해 피터 파커가 슬퍼할 필요는 없다. 소년에게 '몰빵된' 슬픔은 오히려 공감을 저어한다. 스파이더맨 캐릭터를 십대 소년으로 설정했다면, 십대의 발랄함과 하이틴 무비스러운 연출로 공감을 부추기는 것 역시 하나의 영화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피터 파커가 보여주는 발랄함은 하이틴 무비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때로는 연출조차 그를 '미숙한 소년 히어로'로 보여주기에 급급한 듯 여겨진다. 피터 파커의 러브라인 역시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스파이더맨에게 왜 여자 친구가 필요한지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은 전작인 홈커밍에서, '리즈'라는 캐릭터와 '썸'을 타는 피터 파커를 보았을 때 러브라인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납득이 가지 않는 러브라인에서 잉태되었다. 스파이더맨에게 여자 친구란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아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슈퍼 히어로의 연인이다. 물론 간혹 '원더우먼'의 트레버나, '캡틴 아메리카 : 퍼스트 어벤져'의 페기처럼 슈퍼 히어로의 영웅적인 서사에 크게 기여하는 연인 캐릭터가 존재하지만, 스파이더맨의 서사에는 연인 캐릭터가 끼어들 공간이 없어 보였고 토니 스타크와 메이 숙모, 네드를 제외하면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인물도 전무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초반부에서, 피터가 네드에게 MJ를 사랑한다고, '진짜' 좋아한다고 털어놓았을 때,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러브라인이 분명하게 제시되었음에도 하이틴 무비의 간질간질함, '설렘'을 느끼지 못했다. 이제는 사랑을 하는구나. 싶었을 뿐. 소년이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닭이 달걀을 낳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으므로.

 

 

네드와 해피, 메이 숙모처럼 영화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매력적인 조연들에 비하면 피터 파커는 너무나 평면적이다. 전작 홈커밍에서 피터 파커가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파 프롬 홈에서도 피터는 친절하고, 순수하며, 어리숙한 소년이라는 것을 영화 전반에 걸쳐 관객들에게 주입시킨다. 피터는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었다. 홈커밍에서, 자신의 수트에 내장된 즉살 모드를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피터 파커가, 엔드게임을 겪은 뒤에 현실적인 히어로로 거듭날 수도 있었다. 파 프롬 홈에서 피터는 누군가를 죽이거나, 다치게 할 수 있었다. 그편이 오히려 설득력 있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 누군가는 미스테리오가 될 수도 있었고, 유럽의 사람들이 될 수도 있었고, 심지어는 피터 파커 자신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피터 파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미스테리오를 죽일 수 있었지만, 즉살 모드를 켜고 미스테리오에게 맞서는 대신 기차에 치이는 것을 선택했다. 기차가 들이받은 그의 신체는, 방사능 거미에 물리면서 얻게 된 슈퍼파워인 힐링팩터 덕분에 빠르게 회복되었지만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피터 파커가 벡을 막지 못했다는 데 죄책감을 가졌던 것처럼  피터 파커를 무력한 소년으로 그려낸 데 뭐라 말할 수 없는 찝찝함을 느낀다. 피터 파커는 전작인 홈커밍에 이어 파 프롬 홈에서도 누군가를 죽일 수 없는 캐릭터로 등장하며, 윤리적 딜레마는 물론 A와 B 둘 중에서 누구를 살리는 것이 옳은가? 처럼 상식선을 침범하는 의문조차 가져본 적이 없다. 이쯤 되면 시빌 워에 이어 인피니티 워를 겪는 동안 어째서 피터 파커라는 캐릭터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전혀 성장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토니 스타크조차도 아이언맨 시리즈를 거듭하며 플레이보이 기질이 있는 데다 오만하기 그지없는 그가 정신적으로 조금씩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아이언맨 시리즈는 공감할 수 있는 히어로 영화, 친숙한 히어로 영화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고 토니 스타크가 어벤져스 : 엔드게임에서 가장 프랜차이즈 영화 주인공다운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했을 때, 관객들은 그 억지스러움을 개탄하는 대신 죽음에의 찬란함에 탄복했다. 피터 파커는, '방사능 거미에 물리면서 초인적인 신체 능력과 손에서 거미줄이 발사되는 능력을 우연히 얻게 된 과학고등학교 학생'이라는 사실 이외에 별다른 특징이 없다. 때문에 어벤져스 : 엔드게임에서 피터 파커가 토니 스타크를 대신해서 타노스에 맞서거나,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에서 벡의 손에 죽임당하는 식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더라도, 토니 스타크의 '영화적인' 죽음에 동요했던 것만큼 피터 파커의 '영웅적인' 죽음에 감명을 받지는 않았을 것 같다.

 

피터 파커는 이미 너무 많은 상실을 겪었다. 영화는 불행으로 점철된 피터 파커의 삶을 정중하게 연출했어야 했다. 불행을 스파이더맨의 캐릭터적 특성으로 부과하면서, 스파이더맨이 타고난 불행을 피상적이고  흔해빠진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모순이다. 피터 파커에게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토니 스타크의 죽음이다. 엔드게임에서 묘사한 토니 스타크의 죽음은, 당연하게도 프랜차이즈 영화답다. 엔드게임은 마침내 아버지가 된 플레이보이 캐릭터의 죽음을 한 인간의 생애에서,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토니 스타크는 아이언맨 수트를 제작한 순간부터 엔드게임에서 장엄한 최후를 맞이하기까지 늘 히어로였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히어로의 정의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엔드게임의 후반부에서였다. 그가 그래? 난 아이언맨이야. 라고 말하며 손가락을 튕겼을 때, '나는 필연적인 존재다.' 라고 주장하는 타노스에게서 명예롭게 죽을 권리를 앗아갔을 때. 비로소 3000만큼 사랑해, 가 엔드게임의 명대사로 회자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언맨은 3000만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였다. 그러나 피터 파커는 우리가 생각하는 히어로의 정의에 부합하지도, 배트맨 시리즈가 '다크 히어로'의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완전히 새로운 히어로로 재등장하지도 않았다. 피터 파커는 엔드게임에서 엄청난 일을 겪었으므로, 파 프롬 홈에서는 최소한 스타일의 변화라도 보여주었어야 했다. 가령 피터 파커가 갑자기 펑크족처럼 옷을 입기 시작했다면, 어처구니없더라도 그의 '일탈'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피터 파커의 러브라인에는 상당히 급진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전작의 러브라인과 비교해서 특별히 다른 점이 있지도 않은 데다,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로서 MJ의 위치를 '스파이더맨의 여자친구'로 끌어내렸다. 스파이더맨의 러브라인은 이렇듯 납득하기 어려운 수순을 밟아 가며, 피터 파커와 MJ의 캐릭터성을 훼손한다.

 

피터 파커는 너무 순진하다. 벡이 그에게 '바보 같아 보인다'고 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피터 파커의 서사는 피터가 이디스를 벡에게 양도하는 바로 그 장면에서 무너졌다. 시빌 워에서 피터 파커는, 그가 히어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도 전에 토니 스타크에 의해서 전장에 내던져진, 그야말로 내던져진 어린 소년이었다. 인피니티 워에서 피터 파커는, 그가 이미 한 번의 전쟁을 겪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어리고, 미성숙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엔드게임에서는, 그가 소년이라는 사실을, 어리고 겁 많은 소년이라는 사실을 그냥 인정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순진한 모습이었다. 우주적 스케일의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피터 파커는 혼자서 주말 예능 프로그램 스타일의-비장함이 느껴지지 않는, 소년다움을 강조한- 액션을 펼치고 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만신창이가 된 캡틴 아메리카가 기운을 끌어모아 어벤져스 어셈블!을 외쳤을 때, 토르가 '천둥의 신 토르'로 돌아왔을 때, 그리고 닥터 스트레인지에 의해 포탈이 열리며 블랙 팬서를 필두로 '사라졌었던' 히어로들이 재등장했을 때.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던 반면 피터 파커의 경우는 단독 샷에서조차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그냥, 아기거미라는 별명이 딱 어울리는 귀엽고 순진한 소년이었을 뿐이다. 소년을 반드시 극한으로 몰아넣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싸움터에서 피터 파커만이 소년처럼, '히어로 소년'이 아닌 '평범한 소년' 처럼 영화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어벤져스 어셈블! 을 외치며 전장으로 뛰어들었다면, 뭐라도 했다는 생각과 더불어 소년의 성장을 기특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피터 파커는 관객에게 자신의 성장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벤져스는 방탈출 테마의 카페처럼, 관객이 스스로 피터 파커가 성장했다는 증거를 찾아내길 바랐다.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최소한의 힌트도 제공하지 않은, 피터 파커의 등장조차 어색하게 느껴지는 영화에서 성장의 증거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피터 파커가 MJ에게 블랙 달리아 목걸이의 파편을 건네주는 장면에서, 한국적인 줄거리의 영화에서 흔히 묘사하는 '너절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실감했다. 꼭 주고 싶었던 것을 온전하게 전해 주지 못하고, 펜던트의 조각 일부를-체인은 어디론가 달아나고 꽃 모양이었던 펜던트는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부서진- MJ에게 건네는 장면은 피터 파커의 '불행한' 삶을 환기한다. 그가 MJ를 향한 사랑을 고백하면서 주려고 했던 목걸이는 너무 심하게 망가진 나머지 목걸이는 커녕 팔찌처럼도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피터 파커의 망가진 육신이, 목걸이보다 더 처참하게 망가진 육신이 MJ의 곁으로 돌아오게 될까. 이 장면에 비극의 암시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에서 피터 파커의 불행을 묘사하는 방식이 우선은 너무나 저열하고, 영화의 비극성을 심화시키는 대신 스파이더맨 캐릭터의 미숙함과 투박함을 강조하는 데 충실했기 때문에 모든 장면이 다음 비극의 복선처럼 여겨진다.

 

 

파 프롬 홈에서 피터 파커는 사랑 때문에 가슴을 앓는 소년이지만, 시민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있는 히어로이기도 하다. 아기 거미이건 어른 거미이건, 토니 스타크가 말했던 대로 '수트 없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더욱 가져선 안 되는' 수트를 입은 히어로이다. 히어로야말로 시민들이 의지할 대상이다. 피터 파커는, 쓸쓸한 소년은, 히어로이기를 선택한 이상 히어로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그의 순수함과 소년으로서의 순진함이 못내 아쉽다. 순수함, 그리고 순진함은 히어로가 반드시 버려야 할 것, 언젠가는 버리게 될 것이기에. 피터 파커가 특유의 순수함을, 아이다움을 탈피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도 그 날이 정말 올까봐 두려운 마음을 저어할 수가 없다. 나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를, 은연중에 무척 좋아하고 있었나 보다.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스파이더맨을 제외하면 십대 히어로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에 골이 났고, 그러던 중에 스파이더맨이 홈커밍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는,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을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위에서 나열한 단점들을 거론하며 이런데도 스파이더맨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좋다고 대답할 확률이 '67%쯤' 된다.(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에서의 MJ 대사 인용. "난 67% 정도 확신하고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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