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도현의 정치/시사 칼럼 5] 사랑에 관하여

 

 

‘爱애’, ‘あい’, ‘Amor’, ‘Liebe’, ‘L'amour’, 모두 ‘사랑’이라는 하나의 개념을 표현하는 여러 언어의 형태이다. 이처럼 사랑이라는 개념은 지역과 국가를 막론하고 누구나 느끼고, 공유한다. 그렇다면 과연 ‘사랑’이란 무엇인가? 동서고금 할 것 없이 지속되어 온 사랑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2500년 전 사상가인 공자는 평생을 유랑하면서 ‘仁인’의 중요성을 설파하였다. ‘仁인’은 사랑을 뜻하는데, 그 형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人인’과 ‘二이’가 결합하여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즉, 두 사람 간의 사랑을 의미한다. 고대 중국의 갑골문자를 따라 ‘仁인’의 유래를 좇다보면 원래의 의미는 ‘임신한 여성이 태아를 사랑하는 마음’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 ‘자식 사랑’이라는 마음이 발전하여 ‘인간애’의 개념으로 확장된 것이 공자의 ‘仁인’이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는 242년 동안 483번의 전쟁이 발발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급변하는 사회의 흐름 속에서 공자는 인간애를 통해 갈등을 딛고 도덕적 이상사회인 대동사회를 이룩하려 한 것이다.

 

공자는 가족, 친척과 같은 작은 범위에서 출발한 사랑을 주장한 반면, 묵자는 공자의 사랑을 비판하게 된다. 묵자는 공자의 사랑을 ‘별애(한정적인 사랑)’라 부르며 전쟁과 도둑질, 살인과 투쟁 등 천하의 가장 큰 화근이라 주장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는, 우리와 너희를 차별하지 않는 ‘겸애’를 실천하는 것만이 각종 사회의 병폐와 문제를 바로잡고, 궁극적인 태평성대를 이룩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즉, 묵자의 사랑은 모든 이를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었다.

 

한편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은 초월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불교의 ‘자비’나 기독교의 ‘박애’ 등은 인간 간의 세속적인 사랑을 초월하여 구속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부처가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 듯이 중생 사이에서 상호간의 자비가 이루어져서 인간을 넘어 생명을 가진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기독교에서는 죄에 빠진 인간들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신 스스로가 희생하는 것, 그리고 이를 본받아 신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 안에서 서로 희생하고 배려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종교적 의미에서의 사랑은 보다 초월적이고 신앙적인 의미를 띠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여러 의미의 사랑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공자와 묵자의 사랑, 불교와 기독교의 사랑에서 하나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랑은 지금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라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증오, 다툼과 갈등과 같이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쌓게 되는 여러 과오들을 씻어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이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의 여러 형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자 가르침이다.

 

뉴스를 듣거나 신문을 읽다 보면, 각처에서 발생한 사건, 사고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건, 사고를 접하면서 끝없는 한탄에 빠지게 될 때가 있다. 범죄는 나날이 잔인해지고, 극악무도해지며 사람들 간의 신뢰나 결속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잊혀질 즈음 다시 발생하는 층간 소음 문제나 사소한 다툼이 번져 심각한 사건이 된 이웃 간의 갈등과 같은 사례들을 바라볼 때면 흐려진 화합과 결속에 암울해진다. 사회를 하나로 묶어주었던 '정'이라는 가치가 완전히 소실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지금이 바로 사랑을 실천해야 할 때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한없는 욕망을 극복하고, 다툼이나 갈등을 딛고 화합하기 위해서 ‘사랑’을 행동할 것을 고대하며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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